넷째, 시대가 원하는 것은 지적능력이 아니라 창의력이다.
키 160센티미터인 사람이 프로 농구선수가 될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얼마나 될까? 솔직히 희박하다. 적어도 180센티미터나 190센티미터는 되어야 하고, 다른 조건이 비슷하다면 190센티미터보다는 2미터인 편이 낫다. 그러나 특정 지점을 지나면 키는 더 이상 관건이 되지 않는다. 2미터인 선수가 그보다 5센티미터 작은 선수보다 저절로 더 뛰어난 선수가 되는 것은 아니다. 농구선수는 그저 충분할 만큼 키가 크면 된다. 이것은 지능도 마찬가지다.
긴 세월 학원을 운영하면서 유난히 지능에 집착하는 부모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 지능이 얼마니까 우리 자녀의 지능도 얼마쯤은 되겠지.”, “애 아빠가 어릴 적 지능이 높았다니까 우리 자녀도 지능이 높겠지.” 우선은 학업능력과 지능이 무관한 것은 아니지만 절대적은 아니라는 사실을 밝혀둔다. 그리고 상기의 예처럼 지능이라는 것은 일정 수준을 지니면 그 차이가 무색해진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게다가 근래 우리 자녀들을 살펴보면 놀랄 만큼 지적 능력이 뛰어나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학부모들이 어릴 적에 하던 과목 별 각 단원들이 점점 하위 학년으로 편성되고 있으며, 학부모들이 어릴 적에 하던 학습량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의 양을 소화하고 있다. 따라서 거의 대다수의 학생들이 우리보다 뛰어난 지능을 갖고 있는 지금, 지능이 아닌 그 무언가에 의해 학업능력이 좌우된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들의 자녀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다음 물건의 쓰임새에 대해 최대한 많이 적어보라.
1.벽돌
2.담요
상기의 문제는 ‘말콤 글래드웰’이 지은 「아웃라이어」에 소개된 ‘다이버전스(divergence)’ 테스트를 예로 든 것이다. 이 다이버전스 테스트에서는 단 하나의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다. 실험자가 보는 것은 피실험자의 답변의 개수와 그 각각의 창의성이다. 곧 이 테스트에서 측정하는 것은 분석적인 지능과는 다른, 즉 창의성에 가까운 그 무엇이라고 한다. 그럼 이 테스트의 일화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은 무엇일까? 책의 내용을 살펴보면 영국의 우수한 고등학교에 다니는 두 명의 테스트 결과를 비교하고 있다. ‘폴’이라는 학생은 상대적으로 다른 학생보다 상대적으로 IQ가 적음에도 두 가지의 물건의 이용 방법을 고정시키지 않고 매우 실용적인 분야까지 마구 넘나들어 약 10여 가지의 쓰임새를 기재했다. 이에 비해 ‘폴’보다 IQ가 높은 ‘플로렌스’라는 학생은 6가지 정도로 지극히 일반적이고 기능적인 사용법만 적은 다음 그냥 멈추어버렸다. 그럼 누가 더 창의적이고 기발한 생각을 하는 사람일까? 당연히 ‘폴’이라는 학생이 창의적이며 성공의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성공하는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어느 특정 분야의 개척자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기존의 것을 학습하더라도 때에 따라서 파괴하고 창의적으로 변용 또는 새롭게 생성한다. 우리 자녀들이 성공하는 사람들이 되려면 역시나 마찬가지의 과정을 겪어야만 한다는 것이 본 원장의 생각이다. 기존의 지식을 제대로 습득하되 습득하는 데에 머물지 않고 새롭게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이 있을 때, 그들은 성공하는 사람들이 될 수 있다. 따라서 학업능력을 채우기 위해 그리고 창의성과 성공의 가능성을 갖추기 위해서 창의적 수업이 반드시 필요하다.
다섯 째, 학생들을 위하는 길이다.
40분에서 50분 동안의 수업 시간 동안 우리 자녀는 얼마나 그 수업 내용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보통의 성인들은 90분 동안은 이해를 하면서 들을 수 있지만 오직 20분만을 기억하면서 듣는다고 한다. 그러면 우리의 자녀들은 어떨까? 집중력이 부족한 아이들을 대상으로 듣지도 않는 수업 내용을 계속 진행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단순히 200리터 컵에 1.5리터의 물을 들이붓는 것과 같이 학생들은 받아드릴 수 없어 결국 넘쳐서 다 젖어버리는 결과가 발생하는 것은 아닐까? 창의적 수업에 한해서는 어떤 교육 단위도 90분을 넘지 않고, 20분마다 변화를 주며 8분마다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고 한다. 그러므로 철저히 학생 중심의 수업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학생의 참여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학생들의 주의력은 극대화된다. 또한 주변 동료 학생의 발표를 듣고 생각하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가르침을 받는 것보다 주변 동료들을 통해서 더 많은 양의 지식을 습득하게 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창의적 수업은 종전의 주입식 교육과 같이 단순 진도를 빼고자 했던 일방통행 식 수업보다 더 많은 효율성을 갖고 있다.
“창의적 수업? 좋지. 그러나 우리와는 안 맞아!!”
“그래. 진도 빼는 것도 힘든데 언제 애들 의견을 듣고 있어?”
본 원장은 이처럼 교육적 효과가 뛰어난 창의적 수업을 진행하기위해 근래 이 분야의 교육전문가를 초빙하여 워크숍을 진행하였다. 참가자 대부분이 상기와 같이 반신반의하는 태도로 임했으나 결국은 이러한 학생 참여중심의 창의적 수업이 필요하다는 데 대부분 공감하고 이후에 자신의 수업 스타일에 접목시키고자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시대가 변하고 있다는 것을, 교육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나마 인식하게된 것이다.
? 변화된 시대에 맞는 미래지향적 교육, 그것을 창의적 수업, 창의적 학습법이라고 감히 말해본다. 우리 학부모들 역시 마찬가지다. 기존의 관점에서 벗어나 다소나마 파격의 수업이 현 시대에 맞는 학습이 될 수 있음을 인정하고 인식하자. 그래야 내 자녀가 더욱 커진다. 내 자녀의 성공도 보장된다. 늦지 않았다. 내 자녀는 무한한 가능성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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