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에 이기고도 계약금을 돌려준 사람

지역내일 2010-01-08
원래 계약금은 위약금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매매 계약을 체결하면서 매수인으로부터 계약금을 받고, 중도금까지는 지급 받았는데 잔금을 지급하지 않고 자꾸 계약에 없는 내용을 트집 잡았다. 매수인은 매도인이 매매 토지의 진입로를 내 주기로 약속을 하고도 이를 어기고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억지 주장을 했다. 급기야 매수인은 매도인이 약속을 지키지 않아 계약을 파기하겠다는 내용 증명을 보냈다. 얼마 후 법원에서 계약금의 배액과 중도금을 돌려달라는 소장이 왔다.

매도인은 진입로 개설에 필요한 농지 전용 허가를 받았고 도로도 개설해 주었다는 증거를 제출했다. 물론 1심 재판에서 매도인이 이겼다. 매도인은 재판 도중 중도금도 공탁을 해서 돌려주었다. 판결은 매도인이 잘못한 것이 없음에도 매수인이 계약을 이행하지 않았으므로 계약금을 위약금으로 몰취하고 돌려줄 필요가 없다는 내용이었다. 다만 중도금은 받은 날로부터 공탁한 날까지 연 5%의 이자 약 130만원을 추가로 돌려주라고 하였다.

매수인은 즉시 항소하였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매도인이 사무실로 전화를 해서 “재판을 더 이상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냥 계약금을 돌려주고 재판을 끝내고 싶습니다”고 했다. 매도인은 계약금도 모두 돌려주고 중도금 이자도 다 돌려주겠다고 해서 다시 잘 생각해 보시라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며칠 후 다시 매도인이 전화를 했다. 이미 계약금과 중도금에 대한 이자를 다 돌려주고 끝내기로 했다고 하였다. 그래서 1심에서 쓴 변호사 비용은 상대방에게 청구할 수 있는데 어떻게 할 것이냐고 하니 그냥 포기하겠다고 하면서 이미 상대방에게 비용 청구도 안한다는 포기서도 써 주었다고 했다.

“정말 잘 생각하셨습니다. 잘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속은 편하지 못했다. 그 동안 억지를 쓰던 상대방에게 모든 것은 그냥 순순히 양보하고 다 돌려주다니 무슨 이유가 있을까 궁금했다.

“저는 몇 년 전 직장암 수술을 했습니다. 상대방이 1심 판결이 났는데도 마을에 와서 자신이 이긴다고 큰소리 치고, 대법원까지 가더라도 끝까지 재판을 하겠다고 공연히 떠들고 다녀요. 이 재판 때문에 1년 이상 신경 썼어요. 요즘에는 잠도 잘 오지 않고 며칠 전부터는 밥맛이 없어 식사도 할 수 없을 만큼 예민해 졌어요. 몸이 좋지 않으니 직장암이 다시 도질 것 같아요. 계약금도 내 돈이 아니었는데 내가 가지고 쓰고 싶은 생각도 없어요. 그냥 다 돌려주고 맘 편하게 살래요”

이재구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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