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일꿈> 어머니의 ‘정부정책에 거꾸로’ 농사 전략

지역내일 2010-01-08
김유숙
중소기업청 해외시장과장

25년 전 갓 결혼해서 시댁에 혼자 내려가서 며칠 머무를 때의 일이다.
서울서 나고 자란 새댁눈에 지독히도 가난한 산골마을에서 변변히 가진 재산도 없이 어떻게 자식들을 서울로 보내고 대학 교육을 시킬 수 있었는지 정말 긍금해서 시어머니에게 여쭈어 보았다.
물론 그 당시 대부분 농촌의 부모들처럼 농사에 부업으로 돼지까지 키우며 안 먹고 안 입고 닥치는 대로 죽어라 일만 하기도 했지만 어머니는 그런 가운데서도 약간의 전략이 있었다고 하셨다.
놀랍게도 학교는 근처에도 못 가본 당신이지만 나름대로 터득한 그 전략이란 것이 한 마디로 하면 ''정부 정책에 거꾸로’였다는 것이다. 시골에서 농사지으며 무슨 반정부 운동을 한 것도 아니고 정부 정책에 ‘거꾸로’ 라니 더 궁금해진 나는 자세히 여쭤 보았다.

정부 정책 반대로 해 수익 창출
알고 보니 어머니가 말하는 ‘정부’란 당시 농가 소득 증대를 위해서 지역에서 농사를 지도하는 기관이거나 면사무소 정도를 칭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머니의 ‘거꾸로’ 전략이란 것이 이 기관들이 올해 양파를 심으라고 권하면 양파대신 쪽파를 심는 것이었으며, 돼지를 많이 키우라고 권장하면 돼지 수를 늘이는 것이 아니라 갖고 있는 새끼 돼지를 얼른 내다 파는 것 이었다.
이유는 간단해서 정부가 지도하는 대로 모두 다 양파를 심게 되면 수확철에 양파가격은 폭락할 테고, 사육 돼지수가 많아지면 사료까지 먹여 애써 다 키워 놓은 돼지가격이 폭락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라는 아주 당연한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당시에 그 기관들의 지도를 따른 사람들은 나중에 실제로 가격이 폭락해서 본전은 커녕 비료나 사료 값도 못 건지고 많은 손해를 본데 반하여, 우리 어머니는 거꾸로 하여 전보다 수익을 더 올렸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돼지를 키우려고 새끼돼지를 찾을 때 새끼돼지를 아주 좋은 가격에 팔았으며, 모두 양파를 심는 바람에 나중에 귀해진 쪽파를 비싼 가격에 팔 수 있었다고 하는데 한마디로 요즘 말하는 틈새시장 전략이라 할 수 있다.

정책 신뢰를 위한 교훈
이를 위해서 일까. 며칠 지켜본 어머니는 연속극은 안 봐도 TV뉴스에는 항상 귀를 기울이고 궁금한 것은 이리저리 문의하시며 당시 갓 결혼한 며느리인 내게 이것저것 생활의 지혜를 일러 주셨다. 물론 정부 정책도 잘 살펴보고 따라야 한다는 교훈과 함께.
이제는 연로하셔서 더 이상 농사를 지으실 수 없는 어머니의 이런 전략이 당시에는 몰라도 아직도 통하는지 알 수 없지만, 공무원이 되어 정책을 입안하는 역할을 하게 된 지금의 나는 오래전 어머니의 성공담을 가끔씩 떠올리곤 한다.
혹시 우리가 만드는 정책들 중에 이렇게 신뢰를 잃어버리고 오히려 거꾸로 가는 것이 도움이 되는 정책이 있지나 않은지, 아니 그보다도 정부를 믿고 정책을 잘 따른 이들이 나중에 낭패를 보는 일은 없는지.
신년초라 하루가 멀다 하고 매일같이 쏟아지는 정책의 홍수 속에서 어머니의 교훈과 성공담은 두고 두고 나로 하여금 긴장의 끈을 늦추지 못하게 하는 좋은(?) 본보기이자 안전장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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