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밤새워 책을 읽으며 서글프게 울어본 기억이 있다. 주인공의 처지가 너무 안쓰럽기도 했지만 그 시절의 나와 비슷해 공감하고 연민하며 스스로를 위로한 것이다. 책은 그렇다. 길지 않은 삶에서 갖은 경험을 하게 해주며 아무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은 숨겨진 상처를 꺼내 무의식의 나와 화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여기 “책은 인생이며 구원자”라고 말하며, 마음이 아픈 사람들에게 책을 건네는 이가 있다. 행복한독서치유학교의 김영아(41) 교장. 그는 “책을 매개로 상처받은 영혼들을 달래주고, 그들이 숨겨놓은 가슴 속 희망을 찾아주는 것이 내 역할”이라며, “내담자들이 주는 피드백으로 내가 기운을 얻는 것을 보면, 상담사는 바로 나의 천직”이라고 말한다.
아이들의 아픔,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김영아 교장은 처음부터 전문 상담사는 아니었다. 결혼 전에는 국문학을 전공한 잘나가는 논술 강사였고, 남편이 공부를 시작하면서 일을 다시 하기까지는 그저 평범한 주부였다.
생계를 위해 다시 뛰어든 교육 현장, 헌데 여기서 만난 많은 아이들은 정서적 불안, 우울증에 시달리며 괴로워하고 방황하고 있었다. 그는 인생의 선배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고민이 많아졌다. 그러면서 아이들에게 인생의 지침서가 될 만한 책을 권했고, 책을 읽으며 편안해하는 아이들을 발견했다.
“아이들은 상처가 있어도 쉽게 이야기를 털어놓을 만한 사람이 없어요. 과외 선생인 내게 이야기 하는 것만으로도 편안해하는 것을 보고 공감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리고 삶의 존재감을 느낄 수 있는 책을 권하고 읽으면서, 막연하지만 독서는 치유 효과가 있다고 느꼈지요.”
김영아 교장이 아이들의 손을 잡아주고 함께 아파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역시 많은 아픔이 있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달리는 기차에서 떨어져 머리를 서른 바늘 이상 꿰매고, 척추를 맞춰야하는 큰 수술을 받고 나서 몸이 힘들어 좌절했던 기억, 경제적 어려움으로 하고 싶은 것을 참아야했던 맏이의 고통 등으로 그는 무척이나 우울한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자신을 일으켜 세운 건 책과 어머니의 희생이었다고 회상한다.
“저의 원래 기질은 일을 많이 만들어 빠릿빠릿하게 처리하는 스타일이지만, 사고로 인해 좀 더 조용해지고 신중해진 것 같아요. 동적인 사람이 정적인 사람으로 변했다고 할까요. 시를 쓰고 싶어 국문학을 전공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에요.”
상담 전문가로 재탄생…그리고 자기 성찰
남편을 대신했던 가장의 짐을 내려놓았을 때 남편은 그에게 다시 공부할 것을 권했다. 그가 선택한 것은 상담심리학. 10여 년간의 현장 경험을 이론과 접목해 아이들의 아픈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싶었다. 그는 5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심리 상담을 시작했고, 지난 2월에는 일산에 행복한독서치유학교(www.happyhealingschool.com)를 열었다.
“독서 치유는 상담 치료 방법 중 하나로, 책을 통해 내담자의 상황을 보다 객관적으로 들여다 볼 수 있어 효과적이죠. 나를 드러내지 않으려는 어른들 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스스로 표현하지 못하는 감정들을 읽을 수 있고 해결하는 방법을 제시해줄 수 있어요.”
이곳을 찾아오는 사람들은 학생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많다. 실제로 김영아 교장이 저술한 <아픈 영혼,="" 책을="" 만나다="">를 읽고 공감해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자신들의 이야기를 어떤 편견 없이 들어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리라.
“심리 상담을 시작한 첫해는 상담 성공률이 높았어요. 저 스스로도 잘 맞는다, 직관력이 뛰어나다고 느꼈죠. 하지만 그 후로는 여러 번 중간에 상담을 그만두는 일이 생기면서 다시 한 번 저를 돌아보게 됐어요. 저도 모르게 자만하면서 내담자의 아픔을 속단하거나 단정짓고 있으니 내담자가 그만두는 것이지요. 그래서 내담자를 만날 때는 어떤 비슷한 경우에도 끼워 맞추려하지 않고 항상 새로운 경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김영아 교장은 항상 자신에게 되묻는다. ‘나는 바른가?’ ‘그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가’ ‘열린 마음으로 조절할 수 있는가’ 하고 끊임없이 자기 성찰의 시간을 갖고 있다.
“엄마의 정신이 건강해야 아이도 건강히 자랄 수 있어요”
요즘 김영아 교장이 관심을 두는 분야는 주부들이다. 양육의 정점에 있는 주부들은 짐짓 ‘내가 무슨 문제가 있어?’ 하면서 자신 안의 슬픔이나 고통을 인지하지 못하고 도리어 아이들에게 화를 전이하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저 역시 두 아이의 엄마로 살면서, 나의 미숙한 감정 때문에 아이들이 힘들어하는 것을 경험했어요. 엄마의 정신 건강이 아이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첫째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원형탈모가 생긴 것을 보고, 지금까지의 교육방법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됐어요. 남편은 공부하면서 성장하는데, 나는 열등하다고 스스로 자학하면서 모든 에너지를 아이에게 풀어냈던 거죠. 아이의 결과물이 나의 것인양 착각하면서 결과에 집중하고 엄하게 키웠어요. 아이가 원한 건 사랑과 관심이 전부였는데 말이죠.”
다른 엄마들과 비슷한 경험을 한 탓인지 그는 엄마들의 고민과 상처를 잘 보듬어주는 듯했다. 그는 엄마들에게 “애썼다, 장하다”라며 힘을 북돋아주며, 엄마 본인의 이름으로 살아갈 것을 강조한다.
현재 김영아 교장은 행복한독서치유학교에서 뿐만 아니라 군부대, 초·중·고에 파견을 나가 상담을 하기도 하고, 박사과정 준비와 후진 양성을 위한 강의, 부모 교육도 열정적으로 진행중이다. 또한 그는 다문화가정의 여성과 성피해 여성들의 무료 상담 계획도 가지고 있다.
“주위 사람들은 몸도 안 좋으면서 살인적인 스케줄을 어떻게 감당하느냐고 물어요. 왜 봉사하는 사람들이 시간, 돈, 에너지를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것 같지만, 봉사자들이 오히려 더 큰 것을 얻잖아요. 저도 사람들을 만나면서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의미있는 삶을 살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에 더 행복해요.”
김영미 리포터 ymnkt7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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