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들은 ‘공부보다 올곧은 사람이 되는 게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부모님의 소망이 뭔지 아느냐고 물으면 ‘공부 잘하는 것’이라고 대답하지 않을까요? 분명 부모들은 타인에게 상처를 줘도 공부만 잘하면 용서가 된다거나, 사제 간 도리가 곤두박질쳐도 일류 대학만 가면 된다고 가르치진 않을 텐데, 요즘 아이들의 도덕 불감증은 부모들의 마음을 덜컥 내려앉게 만듭니다. 소중한 내 아이의 삶의 얼개를 튼튼하게 해주는 인성 교육, 어쩌면 어른들의 자화상일 수 있는 요즘 아이들의 일탈을 진단하고 처방을 내려봤습니다.
설상가상, 점입가경
일탈 수위 높아지는 우리 아이들
요즘 엄마들 사이에서는 ‘아이가 초등학생 때는 서울우유나 연세우유를, 중·고등학생 때는 매일우유를 먹인다’는 우스갯소리가 오간다. 아이가 어릴 때는 누구나 명문대를 꿈꿔볼 정도로 거는 기대가 크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매일매일 아무 탈 없이 자라만 줘도 감지덕지라는 부모들의 바람을 표현한 씁쓸한 이야기다. 과연 부모들의 바람처럼 우리 아이들의 하루하루는 괜찮은 걸까? 심각해지는 요즘 아이들의 일탈 행위와 이 때문에 애간장이 녹는다는 부모들의 안타까운 사연들을 모아봤다.
Case 1 말끝마다 ‘욕’, 심지어 부모와 선생님 앞에서도?
중학교 1학년 규성이는 어려서는 소심하다 싶을 정도로 얌전하고 착한 아이였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친구나 여동생에게 가끔 심한 욕을 하곤 했지만, 규성이 엄마는 ‘요즘 아이들이 다 그러려니’ 하고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중학생이 된 후 규성이의 욕설은 날로 심해졌다. 친구와 통화할 때도 욕으로 시작해 욕으로 마무리하는 일이 다반사, 그야말로 말끝마다 ‘욕’을 달고 사는 아이가 된 것.
한번은 규성이 엄마가 “좋은 말 놔두고 왜 그렇게 욕을 하느냐”고 타일렀더니 밥을 먹다가 수저를 놓으며 “에잇, ×나 재수 없어. 밥맛 떨어지게 잔소리는…” 하며 방문을 꽝 닫고 들어가더란다. 손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화가 났지만, 야단치면 오히려 아이를 더 자극할까 봐 대화로 풀어야겠다고 생각해 며칠 뒤 아들을 앉혀놓고 이것저것 물어보던 규성이 엄마. 또 한번 실망스러운 아들의 모습과 맞닥뜨렸다.
“아이의 요즘 학교생활을 물어보았더니 ‘친구들은 다 쪼×리가 있는데 나만 없다’고 하는 거예요. 그게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네가 그렇게 필요하면 엄마가 사줄게’했지 뭐예요. 근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게 여자 친구를 뜻하는 은어더라고요. 세상에 기가 막혀서….”
규성이 엄마는 “집 분위기나 경제적으로나 규성이를 힘들게 하는 게 없는데 무슨 불만이 있어 저러는지 모르겠다”며 “남편과 이런 일들을 의논하고 싶어도 욱하는 성미 때문에 규성이가 더 엇나가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한다.
초등학교 6학년 담임을 맡고 있는 ㅅ초등학교 염아무개 교사도 “요즘 아이들 70~80퍼센트가 비속어를 사용한다”며 “욕을 못 하거나 안 하면 오히려 왕따를 당하는 지경”이라고 설명한다.
Case 2 그냥 재미 삼아 훔쳤어요, ‘절도’
중학교 2학년 딸을 둔 김아무개(40·해운대구 좌동)씨. 며칠 전 담임교사에게서 면담하자는 연락을 받았다. 그동안 바빠서 선생님을 제대로 찾아뵌 적도 없고 해서 잘 됐다는 생각으로 학교에 갔는데, 딸아이가 친구들과 함께 편의점에서 물건을 훔쳤다는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다른 아이들이 물건을 훔치는 동안 망을 봐줬고, 이번이 처음이라는 점을 감안해 ‘교내 봉사’라는 비교적 가벼운 처벌을 받았지만 앞으로 이런 일이 없도록 집에서도 신경을 써달라는 교사에게 김씨는 “죄송하다”는 말만 100번도 넘게 하고 돌아왔다고.
그때의 놀란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용돈을 적게 주는 것도 아닌데 왜 그랬느냐”는 물음에 “그냥 친구들과 재미 삼아 해봤다”는 딸아이의 답변에 할 말을 잃었다. 김씨는 “그 친구들과는 다시는 어울리지 않겠다는 딸의 다짐을 받았지만 24시간 아이를 따라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고, 무엇보다 남의 물건을 훔치고도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 반성도 후회도 하지 않는 것 같은 딸아이가 앞으로 더 나쁜 길로 빠지지 않을까 염려된다”고 말한다.
중학교 3학년 재범이 엄마 박아무개(44·남구 대연동)씨도 몇 달 전 놀라움을 금치 못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평소 호기심도 많고 성격도 밝은 아이가 웬일인지 며칠 동안 깊은 생각에 빠져 멍하니 있지를 않나, 옆에 다가가 이름을 불러도 알아차리지 못할 때가 많고 전화벨만 울리면 잔뜩 겁을 집어먹은 표정으로 불안해하더라고. 좌불안석인 아들을 붙들고 이유를 물어보니 “사실 그동안 고등학교 선배들과 어울려 오토바이를 훔쳐서 팔아왔다”는 충격적인 고백을 한 것. 박씨는 “그만두고 싶어도 친구들과 선배들 때문에 쉽게 그만둘 수 없다고 말하는 아들을 보며 당장 전학이라도 시켜야 하는 건 아닌가 고민된다”며 복잡한 심경을 털어놓는다.
Case 3 10등이 아니라 25등이라고?! ‘성적표 조작’
선영이는 중학교 1학년 1학기 첫 시험에서 전교 250등을 했다. 초등학생 때는 성적표가 나오지 않아 딸의 실력을 제대로 알지 못했던 선영의 부모에게도 전교생 500명 중 딱 반타작을 한 딸의 성적은 적잖이 충격적이었다. 당장 과외 교사를 구해 공부를 시켰고, 성적이 오르면 최신 휴대폰을 사주겠노라는 약속도 했다. 과외가 효과가 있었던 걸까? 1학기 기말고사는 전교 160등으로 성적이 제법 올랐고, 선영의 부모는 기특한 마음에 다음 시험에도 성적이 오르면 평소 사달라고 노래를 부르던 MP3플레이어를 사주겠다며 또 하나의 ‘당근’을 제시했다. 한데 놀랍게도 1학년 2학기 중간고사는 전교 100등, 반 등수는 10등까지 올리며 선전한 것. 선영이 부모는 놀랍고 기뻤지만 한편으로는 성적이 너무 빠르게 오르는 것과, 평균 점수에 비해 등수가 높은 게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고.
설마설마 하는 마음으로 ‘나이스 학부모 서비스’ 홈페이지에 들어가 확인해본 선영이의 성적은 40명 중에 25등, 전교 등수는 중학교 들어와 본 첫 시험보다 오히려 떨어진 실정이었다. 딸아이를 다그쳐 물으니 그동안 자신의 성적표 중 전교 등수와 반 등수 부분만 오리고 그 밑에 성적이 좋은 친구의 성적표를 붙여 그대로 복사하는 식으로 성적표를 조작해왔다는 것. 선영이 엄마는 “무엇보다 화가 나는 건 조작 성적표를 내밀면서도 조금도 떨지 않고 오히려 ‘빨리 MP3플레이어 사러 가자’고 떼쓰던 딸아이의 태도”라며 “공부하는데 동기부여가 될까 싶어 이것저것 사준다고 한 게 이런 부작용을 낳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말한다.
Case 4 ‘빵 셔틀’을 아시나요?
초등학교 5학년 담임을 맡고 있는 신아무개 교사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 약자에 대한 배려가 없는 것이 요즘 아이들의 가장 큰 문제”라고 꼬집는다. 신종 플루 때문에 하는 발열 검사도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아이가 앞에서 열 체크를 하면 뒤에 남은 아이들은 그 학생이 사용한 체온계 사용을 거부한다는 것.
경기도 소재 ㅍ중학교 조아무개 교사는 “초등학교에 ‘왕따’라는 학교 폭력이 있다면, 중·고등학교에는 또 다른 형태의 폭력 ‘빵 셔틀’이 있다”고 말한다. 빵 셔틀은 교내에서 힘이 센 소위 ‘일진’에게 빵을 사다주거나 온갖 심부름까지 도맡아 하는 학생을 가리키는 은어다.
어른들은 잘 모르지만 학생들 사이에서는 일반화되었으며, 교실에 하나씩은 꼭 있다는 빵 셔틀. 심부름의 종류에 따라 ‘싸움 셔틀’ ‘체육복 셔틀’ ‘가방 셔틀’ 등 셔틀의 이름이 달라지는데, 고등학교 1학년 경애는 ‘숙제 셔틀’이었다. 경애 엄마는 “분명히 좀 전에 다했다고 한 미술 숙제를 똑같이 하나 더 그리는 아이에게 그 이유를 물어봤더니 학급 ‘짱’의 숙제를 몇 개월째 도맡아 하고 있다”는 놀라운 얘기를 들었다고. 안 해 가면 그 친구가 가만 있지 않을 거라며 불안해하는 딸이 “엄마 속상할까 봐 그동안 얘기를 못 했다”고 울먹이는데 가슴이 미어지더라고.
정주연 리포터 missingu93@naver.com
전문가들의 리얼 어드바이스
“상식, 원칙은 확인시키되 보듬어주기 먼저”
“엄마가 성적 얘기 안 해도 충분히 스트레스 받고 있어요. 수업 시간마다 선생님이 들어오고 나가지만 내게 눈길 한 번 주는 분이 없죠. 왜냐고요? 난 잘나가는 아이가 아니라 엇나가는 아이거든요.” 입시 위주의 교육 속에서 열등감에 빠진 채 엇나가는 아이들이 비빌 언덕은 가정밖에 없다. 교육 전문가들은 “마음 둘 곳 없는 아이를 무조건 보듬어주고 얘기를 들어주다 보면 그 속에 답이 있다”고 한목소리로 말한다.
Chapter 1
‘공부 잘하는 게 우선’ 성적 지상주의
사회가 경쟁화되고 역할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지면서 어른들의 경우는 경제적 능력이나 연줄 등이 중요시되는 반면, 중·고등학교 청소년들은 학업 스트레스가 심해지면서 학습 부진이나 가정불화 등 정서적 측면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늘고 있다. 전문가들은 학교나 집 모두 좋은 성적만을 강요하는 현실 속에서 아이들의 성적에 대한 강박관념은 일련의 엇나가는 행동들을 유발하는 베이스가 되고 있다고 말한다.
성적 조작하는 아이 뒤엔 문제 부모 있어
특목고 원서를 쓰려고 학교에 왔다가, 대학 입시를 앞두고 수시 원서를 접수하려고 담임교사와 상담하다가 아이가 성적을 조작한 사실을 안 부모들. 모두 집안 형편도 좋고 뭐 하나 부족한 것 없이 지원해주는 부모를 둔 아이들이어서 교사들은 당황해한다.
서울 오금고등학교 조영혜 교사는 “이런 아이들을 진단해보면 부모의 과도한 욕심이 아이의 성적 조작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많이 배운 부모일수록 “우리 집안은 모두 명문대 출신인데, 네가 대학 못 가면 엄마 아빠는 이혼이야”라고 말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기도 한다고. 대학 입시에 실패해 의기소침한 아이에게 “그곳도 대학이라고 떨어졌니?”와 같은 부모의 말이 성적을 조작해서라도 인정받고 싶다는 강박관념을 낳는 것.
세은심리상담센터 송은화 상담원은 “아이를 위해서라고 말하지만 결국 부모 자신의 무언가를 위해 아이에게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겉으로는 자율적으로 키운다면서 아이의 생각보다 부모가 목적의식을 갖고 끌고 가려는 측면이 있다”면서 “아이에게 문제가 있다기보다 부모의 양육 태도가 진실되지 못한 부분이 상당하다”고 전한다.
Chapter 2
관심 가져주는 한 사람만 있어도 아이는 변한다
이처럼 예측 불가능한 요즘 아이들을 위해 서울 휘문중학교에서 생활지도를 담당하는 주춘화 교사는 “아이의 수면 아래 있는 상황을 파악할 것”을 요구했다. 앞선 사례에서처럼 아이가 절도를 했을 경우 단순한 호기심에서 비롯됐는지, 누군가에게 상납하려고 한 것인지 아니면 상납 받는 것인지 모든 얘기를 들어주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 그 다음에 벌점이든 징계 등 선처 방식을 택해 처리하면 90퍼센트 이상 제자리로 돌아온다고 조언한다.
간혹 소득 수준이 높은 부모들의 경우, 아이의 엇나간 행동을 교사가 문제 삼으면 가만 있지 않겠다는 식으로 항의하기도 한단다. 이 같은 자식에 대한 부모의 비뚤어진 사랑은 문제를 더 심각하게 만든다. 부모가 고개를 숙여야 아이도 반성하는데, 눈앞의 상황을 덮으려고만 하면 아이들은 죄의식을 느끼지 못해 더 엇나가는 악순환을 초래하기 때문.
적절한 절제 가이드해주지 않으면 친구에게 쏠려
늦게까지 자영업이나 가게를 운영하는 맞벌이 부부의 경우는 아이들의 자유 시간이 늘면서 관리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 엇나가는 행위에 쉽게 노출되기도 한다.
사춘기에는 부모가 절제와 조화를 균형 있게 해주어야 하는데, 이를 소홀히 하면 친구들에게 쏠려 엇나가는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고. 이에 대한 송은화 상담원의 분석을 들어보자.
“사춘기에는 현실적으로 부모에게 의존하지만, 정신적으로는 독립하려는 경향이 있어 부모와 관계에서는 갈등하고 친구인 또래 집단의 영향력이 커져요. 또래 집단에서 인정받는 것이 중요하기에 부화뇌동하는 모양새를 보이는 거죠. 하지만 기본적으로 자아가 튼튼하고 부모와 관계가 안정적인 아이는 선택과 결정에 있어 친구들의 의견을 참조할 뿐이에요. 부모들이 흔히 잘못된 친구 관계를 문제 삼는데 그 속으로 들어가 보면 친구들에게 쏠리는 것은 드러난 현상이고, 엇나가는 아이의 중심에 부모와 관계가 안정적이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Chapter 3
엇나가는 행동 확인시 화는 금물
그렇다면 엇나가는 아이들의 행동을 목격했을 때 부모들이 아이에게 취할 수 있는 행동은 무엇일까?
“나가!” “내가 왜 널 낳았는지 모르겠다”는 식의 극단적인 말은 삼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조영혜 교사는 “요즘 아이들은 사이버 게임 등의 영향으로 굉장히 충동적이다. 아이들이 엇나갈 때 그 자리에서 반응하지 말고 부모 나름의 행동 양식으로 참고 지켜보는 것이 우선이다. 아이니까 강박관념에 성적 조작 등의 실수도 할 수 있다고 이해하려고 노력도 해보고, 성적 좋고 착한 다른 형제와 비교도 하지 말 것이며, 관심을 갖고 지켜보면서 적절한 계기를 통해 아이의 기질에 맞춰 풀어나가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조 교사 자신도 중학생 시절까지 우수한 성적을 유지하던 딸이 고1 때 학교가 싫다며 백지 답안지를 내고 나와 많이 힘들었다고 고백한다. 마음을 비우고 3년을 기다리며 지켜보는 과정에서 아이를 이해하려고 노력하자, 아이가 더 단단해지고 여유 있는 모습으로 돌아왔다고. 훗날 “백지 답안지 냈을 때 엄마가 때리지도 않고 오히려 편안하게 얘기해서 가슴이 더 옥죄었다”고 얘기하더란다.
욱하는 아빠, 아이는 더 비뚤어져
엄마들이 아이의 엇나가는 행동을 발견하더라도 남편과 상의 못하는 집이 많다. 아빠의 욱하는 성미 때문에 아이가 더 엇나갈까 봐 걱정해서다. 실제 중학교 3년 내내 엄마와 아이가 아빠에게 성적을 속이다 고입을 앞두고 밝혀진 사례도 종종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엄마의 이러한 태도는 아이와 아빠의 관계를 더 악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경고한다. 엄마가 자꾸 아이를 감싸주면 아이는 엄마와 아빠의 양육 태도가 다르다는 점을 이용해 엇나가는 행동을 하고, 엄마를 적절하게 통제하려 든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녀 교육에 대한 부모의 생각이 다르면 상호 설득 과정을 통해서라도 서로 공유하려는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사춘기를 겪는 중학생 시기에 가장 엇나가는 사례가 많은 것 같다는 설연희 교사는 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홍혜경 리포터 hkhong11@naver.com
설상가상, 점입가경
일탈 수위 높아지는 우리 아이들
요즘 엄마들 사이에서는 ‘아이가 초등학생 때는 서울우유나 연세우유를, 중·고등학생 때는 매일우유를 먹인다’는 우스갯소리가 오간다. 아이가 어릴 때는 누구나 명문대를 꿈꿔볼 정도로 거는 기대가 크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매일매일 아무 탈 없이 자라만 줘도 감지덕지라는 부모들의 바람을 표현한 씁쓸한 이야기다. 과연 부모들의 바람처럼 우리 아이들의 하루하루는 괜찮은 걸까? 심각해지는 요즘 아이들의 일탈 행위와 이 때문에 애간장이 녹는다는 부모들의 안타까운 사연들을 모아봤다.
Case 1 말끝마다 ‘욕’, 심지어 부모와 선생님 앞에서도?
중학교 1학년 규성이는 어려서는 소심하다 싶을 정도로 얌전하고 착한 아이였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친구나 여동생에게 가끔 심한 욕을 하곤 했지만, 규성이 엄마는 ‘요즘 아이들이 다 그러려니’ 하고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중학생이 된 후 규성이의 욕설은 날로 심해졌다. 친구와 통화할 때도 욕으로 시작해 욕으로 마무리하는 일이 다반사, 그야말로 말끝마다 ‘욕’을 달고 사는 아이가 된 것.
한번은 규성이 엄마가 “좋은 말 놔두고 왜 그렇게 욕을 하느냐”고 타일렀더니 밥을 먹다가 수저를 놓으며 “에잇, ×나 재수 없어. 밥맛 떨어지게 잔소리는…” 하며 방문을 꽝 닫고 들어가더란다. 손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화가 났지만, 야단치면 오히려 아이를 더 자극할까 봐 대화로 풀어야겠다고 생각해 며칠 뒤 아들을 앉혀놓고 이것저것 물어보던 규성이 엄마. 또 한번 실망스러운 아들의 모습과 맞닥뜨렸다.
“아이의 요즘 학교생활을 물어보았더니 ‘친구들은 다 쪼×리가 있는데 나만 없다’고 하는 거예요. 그게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네가 그렇게 필요하면 엄마가 사줄게’했지 뭐예요. 근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게 여자 친구를 뜻하는 은어더라고요. 세상에 기가 막혀서….”
규성이 엄마는 “집 분위기나 경제적으로나 규성이를 힘들게 하는 게 없는데 무슨 불만이 있어 저러는지 모르겠다”며 “남편과 이런 일들을 의논하고 싶어도 욱하는 성미 때문에 규성이가 더 엇나가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한다.
초등학교 6학년 담임을 맡고 있는 ㅅ초등학교 염아무개 교사도 “요즘 아이들 70~80퍼센트가 비속어를 사용한다”며 “욕을 못 하거나 안 하면 오히려 왕따를 당하는 지경”이라고 설명한다.
Case 2 그냥 재미 삼아 훔쳤어요, ‘절도’
중학교 2학년 딸을 둔 김아무개(40·해운대구 좌동)씨. 며칠 전 담임교사에게서 면담하자는 연락을 받았다. 그동안 바빠서 선생님을 제대로 찾아뵌 적도 없고 해서 잘 됐다는 생각으로 학교에 갔는데, 딸아이가 친구들과 함께 편의점에서 물건을 훔쳤다는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다른 아이들이 물건을 훔치는 동안 망을 봐줬고, 이번이 처음이라는 점을 감안해 ‘교내 봉사’라는 비교적 가벼운 처벌을 받았지만 앞으로 이런 일이 없도록 집에서도 신경을 써달라는 교사에게 김씨는 “죄송하다”는 말만 100번도 넘게 하고 돌아왔다고.
그때의 놀란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용돈을 적게 주는 것도 아닌데 왜 그랬느냐”는 물음에 “그냥 친구들과 재미 삼아 해봤다”는 딸아이의 답변에 할 말을 잃었다. 김씨는 “그 친구들과는 다시는 어울리지 않겠다는 딸의 다짐을 받았지만 24시간 아이를 따라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고, 무엇보다 남의 물건을 훔치고도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 반성도 후회도 하지 않는 것 같은 딸아이가 앞으로 더 나쁜 길로 빠지지 않을까 염려된다”고 말한다.
중학교 3학년 재범이 엄마 박아무개(44·남구 대연동)씨도 몇 달 전 놀라움을 금치 못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평소 호기심도 많고 성격도 밝은 아이가 웬일인지 며칠 동안 깊은 생각에 빠져 멍하니 있지를 않나, 옆에 다가가 이름을 불러도 알아차리지 못할 때가 많고 전화벨만 울리면 잔뜩 겁을 집어먹은 표정으로 불안해하더라고. 좌불안석인 아들을 붙들고 이유를 물어보니 “사실 그동안 고등학교 선배들과 어울려 오토바이를 훔쳐서 팔아왔다”는 충격적인 고백을 한 것. 박씨는 “그만두고 싶어도 친구들과 선배들 때문에 쉽게 그만둘 수 없다고 말하는 아들을 보며 당장 전학이라도 시켜야 하는 건 아닌가 고민된다”며 복잡한 심경을 털어놓는다.
Case 3 10등이 아니라 25등이라고?! ‘성적표 조작’
선영이는 중학교 1학년 1학기 첫 시험에서 전교 250등을 했다. 초등학생 때는 성적표가 나오지 않아 딸의 실력을 제대로 알지 못했던 선영의 부모에게도 전교생 500명 중 딱 반타작을 한 딸의 성적은 적잖이 충격적이었다. 당장 과외 교사를 구해 공부를 시켰고, 성적이 오르면 최신 휴대폰을 사주겠노라는 약속도 했다. 과외가 효과가 있었던 걸까? 1학기 기말고사는 전교 160등으로 성적이 제법 올랐고, 선영의 부모는 기특한 마음에 다음 시험에도 성적이 오르면 평소 사달라고 노래를 부르던 MP3플레이어를 사주겠다며 또 하나의 ‘당근’을 제시했다. 한데 놀랍게도 1학년 2학기 중간고사는 전교 100등, 반 등수는 10등까지 올리며 선전한 것. 선영이 부모는 놀랍고 기뻤지만 한편으로는 성적이 너무 빠르게 오르는 것과, 평균 점수에 비해 등수가 높은 게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고.
설마설마 하는 마음으로 ‘나이스 학부모 서비스’ 홈페이지에 들어가 확인해본 선영이의 성적은 40명 중에 25등, 전교 등수는 중학교 들어와 본 첫 시험보다 오히려 떨어진 실정이었다. 딸아이를 다그쳐 물으니 그동안 자신의 성적표 중 전교 등수와 반 등수 부분만 오리고 그 밑에 성적이 좋은 친구의 성적표를 붙여 그대로 복사하는 식으로 성적표를 조작해왔다는 것. 선영이 엄마는 “무엇보다 화가 나는 건 조작 성적표를 내밀면서도 조금도 떨지 않고 오히려 ‘빨리 MP3플레이어 사러 가자’고 떼쓰던 딸아이의 태도”라며 “공부하는데 동기부여가 될까 싶어 이것저것 사준다고 한 게 이런 부작용을 낳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말한다.
Case 4 ‘빵 셔틀’을 아시나요?
초등학교 5학년 담임을 맡고 있는 신아무개 교사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 약자에 대한 배려가 없는 것이 요즘 아이들의 가장 큰 문제”라고 꼬집는다. 신종 플루 때문에 하는 발열 검사도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아이가 앞에서 열 체크를 하면 뒤에 남은 아이들은 그 학생이 사용한 체온계 사용을 거부한다는 것.
경기도 소재 ㅍ중학교 조아무개 교사는 “초등학교에 ‘왕따’라는 학교 폭력이 있다면, 중·고등학교에는 또 다른 형태의 폭력 ‘빵 셔틀’이 있다”고 말한다. 빵 셔틀은 교내에서 힘이 센 소위 ‘일진’에게 빵을 사다주거나 온갖 심부름까지 도맡아 하는 학생을 가리키는 은어다.
어른들은 잘 모르지만 학생들 사이에서는 일반화되었으며, 교실에 하나씩은 꼭 있다는 빵 셔틀. 심부름의 종류에 따라 ‘싸움 셔틀’ ‘체육복 셔틀’ ‘가방 셔틀’ 등 셔틀의 이름이 달라지는데, 고등학교 1학년 경애는 ‘숙제 셔틀’이었다. 경애 엄마는 “분명히 좀 전에 다했다고 한 미술 숙제를 똑같이 하나 더 그리는 아이에게 그 이유를 물어봤더니 학급 ‘짱’의 숙제를 몇 개월째 도맡아 하고 있다”는 놀라운 얘기를 들었다고. 안 해 가면 그 친구가 가만 있지 않을 거라며 불안해하는 딸이 “엄마 속상할까 봐 그동안 얘기를 못 했다”고 울먹이는데 가슴이 미어지더라고.
정주연 리포터 missingu93@naver.com
전문가들의 리얼 어드바이스
“상식, 원칙은 확인시키되 보듬어주기 먼저”
“엄마가 성적 얘기 안 해도 충분히 스트레스 받고 있어요. 수업 시간마다 선생님이 들어오고 나가지만 내게 눈길 한 번 주는 분이 없죠. 왜냐고요? 난 잘나가는 아이가 아니라 엇나가는 아이거든요.” 입시 위주의 교육 속에서 열등감에 빠진 채 엇나가는 아이들이 비빌 언덕은 가정밖에 없다. 교육 전문가들은 “마음 둘 곳 없는 아이를 무조건 보듬어주고 얘기를 들어주다 보면 그 속에 답이 있다”고 한목소리로 말한다.
Chapter 1
‘공부 잘하는 게 우선’ 성적 지상주의
사회가 경쟁화되고 역할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지면서 어른들의 경우는 경제적 능력이나 연줄 등이 중요시되는 반면, 중·고등학교 청소년들은 학업 스트레스가 심해지면서 학습 부진이나 가정불화 등 정서적 측면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늘고 있다. 전문가들은 학교나 집 모두 좋은 성적만을 강요하는 현실 속에서 아이들의 성적에 대한 강박관념은 일련의 엇나가는 행동들을 유발하는 베이스가 되고 있다고 말한다.
성적 조작하는 아이 뒤엔 문제 부모 있어
특목고 원서를 쓰려고 학교에 왔다가, 대학 입시를 앞두고 수시 원서를 접수하려고 담임교사와 상담하다가 아이가 성적을 조작한 사실을 안 부모들. 모두 집안 형편도 좋고 뭐 하나 부족한 것 없이 지원해주는 부모를 둔 아이들이어서 교사들은 당황해한다.
서울 오금고등학교 조영혜 교사는 “이런 아이들을 진단해보면 부모의 과도한 욕심이 아이의 성적 조작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많이 배운 부모일수록 “우리 집안은 모두 명문대 출신인데, 네가 대학 못 가면 엄마 아빠는 이혼이야”라고 말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기도 한다고. 대학 입시에 실패해 의기소침한 아이에게 “그곳도 대학이라고 떨어졌니?”와 같은 부모의 말이 성적을 조작해서라도 인정받고 싶다는 강박관념을 낳는 것.
세은심리상담센터 송은화 상담원은 “아이를 위해서라고 말하지만 결국 부모 자신의 무언가를 위해 아이에게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겉으로는 자율적으로 키운다면서 아이의 생각보다 부모가 목적의식을 갖고 끌고 가려는 측면이 있다”면서 “아이에게 문제가 있다기보다 부모의 양육 태도가 진실되지 못한 부분이 상당하다”고 전한다.
Chapter 2
관심 가져주는 한 사람만 있어도 아이는 변한다
이처럼 예측 불가능한 요즘 아이들을 위해 서울 휘문중학교에서 생활지도를 담당하는 주춘화 교사는 “아이의 수면 아래 있는 상황을 파악할 것”을 요구했다. 앞선 사례에서처럼 아이가 절도를 했을 경우 단순한 호기심에서 비롯됐는지, 누군가에게 상납하려고 한 것인지 아니면 상납 받는 것인지 모든 얘기를 들어주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 그 다음에 벌점이든 징계 등 선처 방식을 택해 처리하면 90퍼센트 이상 제자리로 돌아온다고 조언한다.
간혹 소득 수준이 높은 부모들의 경우, 아이의 엇나간 행동을 교사가 문제 삼으면 가만 있지 않겠다는 식으로 항의하기도 한단다. 이 같은 자식에 대한 부모의 비뚤어진 사랑은 문제를 더 심각하게 만든다. 부모가 고개를 숙여야 아이도 반성하는데, 눈앞의 상황을 덮으려고만 하면 아이들은 죄의식을 느끼지 못해 더 엇나가는 악순환을 초래하기 때문.
적절한 절제 가이드해주지 않으면 친구에게 쏠려
늦게까지 자영업이나 가게를 운영하는 맞벌이 부부의 경우는 아이들의 자유 시간이 늘면서 관리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 엇나가는 행위에 쉽게 노출되기도 한다.
사춘기에는 부모가 절제와 조화를 균형 있게 해주어야 하는데, 이를 소홀히 하면 친구들에게 쏠려 엇나가는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고. 이에 대한 송은화 상담원의 분석을 들어보자.
“사춘기에는 현실적으로 부모에게 의존하지만, 정신적으로는 독립하려는 경향이 있어 부모와 관계에서는 갈등하고 친구인 또래 집단의 영향력이 커져요. 또래 집단에서 인정받는 것이 중요하기에 부화뇌동하는 모양새를 보이는 거죠. 하지만 기본적으로 자아가 튼튼하고 부모와 관계가 안정적인 아이는 선택과 결정에 있어 친구들의 의견을 참조할 뿐이에요. 부모들이 흔히 잘못된 친구 관계를 문제 삼는데 그 속으로 들어가 보면 친구들에게 쏠리는 것은 드러난 현상이고, 엇나가는 아이의 중심에 부모와 관계가 안정적이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Chapter 3
엇나가는 행동 확인시 화는 금물
그렇다면 엇나가는 아이들의 행동을 목격했을 때 부모들이 아이에게 취할 수 있는 행동은 무엇일까?
“나가!” “내가 왜 널 낳았는지 모르겠다”는 식의 극단적인 말은 삼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조영혜 교사는 “요즘 아이들은 사이버 게임 등의 영향으로 굉장히 충동적이다. 아이들이 엇나갈 때 그 자리에서 반응하지 말고 부모 나름의 행동 양식으로 참고 지켜보는 것이 우선이다. 아이니까 강박관념에 성적 조작 등의 실수도 할 수 있다고 이해하려고 노력도 해보고, 성적 좋고 착한 다른 형제와 비교도 하지 말 것이며, 관심을 갖고 지켜보면서 적절한 계기를 통해 아이의 기질에 맞춰 풀어나가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조 교사 자신도 중학생 시절까지 우수한 성적을 유지하던 딸이 고1 때 학교가 싫다며 백지 답안지를 내고 나와 많이 힘들었다고 고백한다. 마음을 비우고 3년을 기다리며 지켜보는 과정에서 아이를 이해하려고 노력하자, 아이가 더 단단해지고 여유 있는 모습으로 돌아왔다고. 훗날 “백지 답안지 냈을 때 엄마가 때리지도 않고 오히려 편안하게 얘기해서 가슴이 더 옥죄었다”고 얘기하더란다.
욱하는 아빠, 아이는 더 비뚤어져
엄마들이 아이의 엇나가는 행동을 발견하더라도 남편과 상의 못하는 집이 많다. 아빠의 욱하는 성미 때문에 아이가 더 엇나갈까 봐 걱정해서다. 실제 중학교 3년 내내 엄마와 아이가 아빠에게 성적을 속이다 고입을 앞두고 밝혀진 사례도 종종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엄마의 이러한 태도는 아이와 아빠의 관계를 더 악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경고한다. 엄마가 자꾸 아이를 감싸주면 아이는 엄마와 아빠의 양육 태도가 다르다는 점을 이용해 엇나가는 행동을 하고, 엄마를 적절하게 통제하려 든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녀 교육에 대한 부모의 생각이 다르면 상호 설득 과정을 통해서라도 서로 공유하려는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사춘기를 겪는 중학생 시기에 가장 엇나가는 사례가 많은 것 같다는 설연희 교사는 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홍혜경 리포터 hkhong1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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