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호선 원당역에서 7호선 뚝섬유원지까지 지하철을 이용하려고 한다. 이 때 최단거리 경로로 검색했을 때, 총 소요시간과 총 정차역의 개수는 몇 개인지 검색하시오.’
최근 개최된 ‘2009년 고양시청 시민 정보화능력 경진대회’의 실버부문 문제 중 하나다. 이 문제를 쉽게 푼 사람들 중에는 김재걸(62)씨가 있다. 김씨는 양손으로 한글을 1분에 200타씩 치고, 엑셀로 고객 관리를 하며, 파워포인트로 ‘음악이 흐르는 호수공원 영상집’을 만드는 것이 취미다. 하지만, 10년 전만 해도 그 역시 컴퓨터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는 ‘컴맹’이었다.
자동차 엑셀, 컴퓨터 엑셀
“회사에서 관리자 생활만 하다 보니, 컴퓨터는 자료를 열람해서 보는 정도지, 직접 다룰 필요가 없었어요.”
그는 우스갯소리로 젊은 사람들이 ‘엑셀, 엑셀’ 할 때, ‘현대차 엑셀은 옛날에 나왔는데 왜 그걸 지금 얘기하나?’고 생각했단다. 그런데 2001년 다니던 회사를 퇴직하고 잠시 다른 곳에서 고객관리 하는 일을 하게 되면서 ‘엑셀’과 제대로 만났다. 엑셀 프로그램으로 고객 관련 정보를 일일이 컴퓨터에 입력해야 했던 것이다. 그는 일단 ‘이찬진 책’부터 사서 독학에 돌입했다. 그런데 집에서 공부한 것을 사무실에서 인용하려니 실수투성이였다. 젊은 직원들에게 일일이 물어가며 2~3개월을 하니까 그제야 묻지 않아도 혼자서 1000명의 고객 자료를 관리할 수 있게 되었다. 일단 한번만 해 놓으면 데이터 변동 사항을 추가만 하면 되니 엑셀만큼 편한 것도 없었다. 이 직장에서 2년 전에 나오면서 그의 엑셀 실력은 가족, 친지, 친구의 생일, 연락처를 정리해 놓는 작업에 활용되고 있다.
요즘 김씨가 푹 빠져 있는 것은 호수공원의 아름다운 풍광을 사진으로 기록하는 것과 그것을 음악이 흐르는 아름다운 영상집으로 화려하게 부활시키는 것이다.
“올 초에 일산동구청에서 무료로 가르쳐주는 ‘파워 포인트’ 교육을 2주 받았어요. 근데 의외로 재밌는 거야. ‘그래, 나 혼자 한번 해 보자. 이벤트 할 때 써 먹자’ 그런 생각이 들어서 호수공원에 카메라 들고 나갔어요. 사진 40~50장으로 ‘호수공원 영상집’을 만들었더니 선생님이 놀라더라고요. 지금도 교육생들한테 제 자료를 보여주는 것 같아요.”
그의 영상집은 총 2개. ‘봄편’과 ‘가을편’이 있다. 일반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호수공원의 봄은 그야말로 푸른 신록 그 자체다. 가장 고운 모습만 잡아내서인지 외국에 있는 ‘청정’ 호반도시 같기도 하다. 최근 DSRL 카메라를 구입해서 찍은 가을 편은 청아한 호수가 가을 하늘과 구분이 안 될 정도로 맑고 푸르다. 예순 해의 삶이 자연을 바라보는 눈에도 고스란히 묻어나 한 장 한 장 정감이 넘친다.
실버를 위한 초·중·고급 컴퓨터 수업 많아지길
“지금 제가 동구청에서 스위시를 배우는데요. 왜 거 있잖아요, 인터넷에 보면 빗방울이 진짜처럼 뚝뚝 떨어지고, 새가 날아가면서 자연스럽게 파다닥거리는 것 말예요. 그런데 그 수업에 처음 들어갔을 때 제가 깜짝 놀랐어요. 70대가 그리 많을 줄 몰랐거든요. 저는 당연히 40~50대가 많을 줄 알았는데, 거기서는 내가 나이가 적은 편인 거예요. 그 중에 한 분한테 물어봤어요. 어렵지 않으냐고. 그 분 말이 ‘재밌어요. 집에 가서 하면 시간도 잘 가고, 하나 알면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어요’ 이러는 거예요. ‘아, 이렇게 나이든 분이 열심히 배우는데 나도 끝이 아니다. 좀 더 해도 되겠다’ 이런 용기가 생기더군요.”
새로운 컴퓨터 프로그램을 배울 때마다 그가 컴퓨터 앞에 있는 시간은 길어진다. 그래서 아내와 자식들에게 늘 “컴퓨터 조금만 하시라”는 지청구를 듣는단다. 그래도 한번 불붙은 학구열은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아서 눈에 안약을 넣어가면서까지 작업을 한다고. 이런 할아버지의 작업은 손주들의 돌, 생일 때 어김없이 CD로 굽혀서 나오고, 아내의 생일에는 가족과 부부가 같이 한 시간이 아름다운 영상집으로 전해진다. 고된 작업이 헛되지 않은 것은 가족들에게서 감동어린 감사의 문자를 받고, 손주들이 CD를 보면서 까르륵대고 좋아하는 것을 볼 수 있어서다.
“우리가 ‘인터넷을 모르는 세대’잖아요. 아마 50대 후반부터는 컴퓨터나 인터넷을 잘 모를 겁니다. 그래서 저는 만나는 분들에게 ‘컴퓨터 배우십시오’, ‘인터넷부터 배우십시오’ 하고 말해요. 특히 인터넷을 해야 정보를 알게 됩니다. 살아가는 방법, 새로운 것도 배울 수 있고, 건강관리하는 법, 길 모를 때 찾아가는 법도 알 수 있어요. 여기서 잠실역까지 지하철 몇 번 홈에서 타면 개찰구 몇 번으로 바로 나온다는 것을 전화로 물으면 누가 가르쳐 주나요? 또, 노후에는 즐길 수도 있어야 하는데, 갈비는 어디가 잘 하더라, 파주 장단콩 축제는 어디서 하고 가면 뭐뭐 한다더라 다 알 수 있잖아요. 처음부터 잘 하는 사람이 있나요? 독수리 타법으로 하다 보면 잘 하게 되는 거죠.”
김재걸씨는 컴퓨터 관련 수업이 더 늘어나서, 포토샵, 스위시, 고급 인터넷을 더 배울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랬다.
서지혜 리포터 sergilove00@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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