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 사람 다 아는데

엄마만 모르는 내 자식 이야기

지역내일 2009-12-16 (수정 2009-12-16 오후 1:48:15)



배 아파 낳은 자식이지만 제 자식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모르는 엄마들이 있다. 기대가 커서인지 사랑에 눈이 멀어서인지주변 사람들 눈에는 다 보이는 아이의 문제점이 왜 엄마에게만 안 보이는지. 반면 아이의 특별한 재능이나 바른 인성, 마음 씀씀이를 모르는 엄마들도 있다. 주변 사람들 다 칭찬하는데 엄마만 칭찬에 인색하고, 자식의 마음 그릇이 얼마나 큰지 모른 채 무시하는 엄마들. 엄마만 모르고 주변 사람들은 다 아는 자식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보자. 
재능 많고 아이디어 풍부한데 엄마만 모르네 
중학교 2학년 경아는 포부가 크다. 글로벌 사업가로 성공하고 싶다. 사업 아이템은 캐릭터 디자인. 한국형 캐릭터를 만들어서 디즈니랜드에 대적하는 캐릭터 랜드를 만들 생각이다. 틈틈이 그린 습작 노트도 여러 권 있다. 스무 살이 되면 대학에 다니며 사업을 시작해볼 구상도 해두었다. 선생님들이나 친구들 모두 경아의 능력을 아는데 엄마만 모른다. 엄마는 “경아가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낭비한다”고 말한다. 공부하기 싫으니 잡념에 빠져 만화 그리는 흉내를 내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디자인은 미술에 재능 있는 아이들이 하는 것이며, 사업은 더군다나 경아 성격에는 힘들다고 말한다.
중학교 2학년 동호는 누가 봐도 운동에 소질이 있다. 달리기는 물론 농구, 축구 못하는 운동이 없다. 순발력이 뛰어나고 배드민턴, 테니스도 기본기만 익히면 웬만큼 배운 어른과 게임을 해도 뒤지지 않는다. 태권도도 유단자다. 학교 체육대회는 동호의 독무대다. 어느 종목이든 반 대표로 뽑힌다. 동호는 체육학과에 진학하고 싶다. 운동 전문가가 되어 스포츠센터를 운영하고 싶다. 하지만 엄마는 동호의 꿈을 가볍게 무시한다. 운동에 소질이 없다는 것이다. 어린시절부터 몸이 약해서 체력을 보강하기 위해 운동을 꾸준히 시켰기에 지금 잘하는 것처럼 보이지 실제로는 운동신경이 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운동은 공부할 체력을 만들기 위해 시킨 것이니 공부에 전념하라고 말한다. 동호가 공부보다 운동을 훨씬 잘한다는 것도, 공부를 열심히 하는 이유도 서울대 체육학과에 가기 위해서라는 것을 엄마만 모른다.


남 보기엔 문제인데, 엄마만 ‘그럴 리 없어!’
초등학교 4학년 경준이는 오늘 선생님에게 꾸중을 들었다. 친구에게 욕을 하고 수업 시간에 상관없는 이야기로 수업 분위기를 망쳐서다. 반성문 쓰기가 오늘로 여덟 번째. 경준이에 대한 고충을 토로하는 담임선생님에게 엄마가 건넨 말은 “그럴 리가요?”였다. 부모에게 존대를 쓰는 것은 기본이고, 큰소리로 대드는 법도 없는 아이가 욕을 할 리 없다는 것. “어려서도 식당을 돌아다닌 적도 없고, 예절에 관한 한 부모가 엄격히 가르치고 있으며, 부모 가르침대로 잘 따르는 아이가 수업 시간에 까불었을 리 만무하다”는 이야기다. “선생님이 뭔가 오해한 것 아니냐”고 오히려 반문을 하니 몰라도 너무 모르는 엄마의 태도에 담임선생님도 당황스러웠다.
평소 신경질을 잘 내고 예민하게 굴어서 ‘까칠이’로 불리는 초등학교 5학년 우진이. 친구들이 실수로 건드리기만 해도 한 대 때려줘야 직성이 풀리는 우진이는 친구가 발을 걸어 넘어지는 바람에 무릎에 상처가 나자 가위로 친구 손을 긁었다. 친구들 말 한마디에도 화를 내며 반응하고, 건드리는 걸 참지 못하니 공격적인 성향을 좀 고칠 필요가 있지 않겠냐는 담임선생님의 조언에 우진 엄마는 “친구들이 건드리지만 않으면 별일 없다”고 했다. “워낙 규칙을 잘 지키고 모범적인데다 조용한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라서 잘못하는 친구를 보기 어려웠을 것이다”라며 주변 친구들을 탓했다. 이웃 엄마들에게 선생님 욕을 하니 우진이에 대해 아는 엄마들이 “그 나이 또래에 있을 수 있는 친구들의 장난에도 민감하니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고 한번 생각해보라”고 조언하자 버럭 화를 냈다.


“내가 봐도 문제가 좀 있어 보여요. 너무 공격적이고 신경질적인 데다 산만한 구석도 있거든요.” “처음 보기엔 말수도 없고 똑똑해 보이는데 조금만 오래 있어보면 애가 다혈질인 게 느껴져요.” 주변 엄마들이 우진이에 대해 하는 말이다. 우진 엄마만 “아이가 마음이 여려 애 같고 조용한데 친구들이 건드린다. 머리가 비범해서 하는 행동을 다른 아이들이 이해를 못 한다”고 말한다.


내 딸이 소심하다고? 대범해!… 엄마만 모르는 아이의 인성
정필이 엄마에게 “아유, 어쩜 아이가 그렇게 속이 깊어요. 어린아이가 짐도 들어주고. 참 잘 키우셨네요.” “이 아이가 아들이에요? 내가 엘리베이터 탈 때마다 버튼 누르고 기다려줘요. 정말 기특해요”라는 이야기를 건네는 사람이 많다. 초등학교 4학년 정필이는 누가 봐도 참 의젓한 아이다. 동네 어른을 보면 몇 번이고 인사를 하고, 엘리베이터에 타면 누가 더 타는지 주위를 살핀다. 길을 가다 쓰레기를 보면 줍고, 교실 청소도 열심히 한다. 준비물 안 가져온 친구에게 본인 것을 기꺼이 나누며, 선생님에게도 공손하고, 친구들도 잘 도와줘서 인기가 많다. 누가 봐도 참 잘 자란 어린이다. 주변 사람들이 그렇게 칭찬을 하는데 엄마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그래요? 집에선 동생하고 싸우기도 잘 하는데 밖에선 아닌가 보죠”라고 말한다. 심지어 아들에게 “너 칭찬하는 것 맞니? 밖에서 그러니?”라고 묻기도 한다. 속 깊고 의젓한 정필이를 엄마가 너무 몰라서 가르쳐주고 싶다고 이웃들은 이야기한다.
반대로 지우는 외향적이다. 말도 많다. 친구들과 너무 웃고 떠들어서 지적을 받을 정도다. 친구들 사이에서 재미있는 말을 많이 하는 아이로 불린다. 그러나 엄마는 지우가 과묵한 아이라고 생각한다. 묻는 말에나 답을 할 정도니 그럴 수밖에 없다. 지우는 엄마가 자신에 대해 모르는 이유를 안다. 집에서는 거의 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우는 엄마가 모든 문제를 늘 엄마 입장에서만 바라본다고 생각한다. 질문을 해도 마음 상태가 아니라 ‘학교에서 뭐 공부했니? 숙제는 했니?’ 등 공부와 관련한 것만 물어봐서 싫다. 엄마에게는 정신적인 위로를 받고 싶은데, 엄마는 성적에만 관심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엄마 앞에서는 자꾸 짜증을 내고 말도 잘 안한다. 엄마가 지우에 대해 모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유병아 리포터 bayou8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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