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세 할아버지 “17년째 어린이 위해 매일 교통 봉사”

지역내일 2009-12-15 (수정 2009-12-15 오전 9:24:58)
17년째 교통봉사 하는 91세 독거노인 최인송씨
“아이들 보고 싶어 매일 나가”
월수입, 정부지원 35만원이 고작 … 지도 시작 후 사고 없어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오냐. 뛰지 말고 건너라.”
매일 오전 8시. 서울 노원구 중계동 용동초등학교 정문 앞 횡단보도.
눈에 잘 띄는 노란 옷을 입은 최인송(91) 할아버지는 17년째 이곳에서 초등학생들의 등굣길을 책임지고 있다. 최 할아버지는 깃발도 없이 수신호로 교통지도를 한다. 오랜 시간 이곳에 있다 보니 이젠 교통경찰이 다 됐다.
최 할아버지는 “처음 이곳에 이사를 와 보니 횡단보도에서 어린이들이 신호를 지키지 않고 뛰어다녀 너무 위험했다”면서 “아침이면 아파트 단지에서 인근 초·중고등학생 대학생들과 직장인들이 쏟아져 나온다”고 말했다. 최 할아버지가 자율적으로 교통봉사를 시작한 지 며칠 후 노원경찰서는 녹색어머니회 복장을 지급하며 지원했다.
노원경찰서 당현지구대에 따르면 최 할아버지가 교통지도를 하기 전에는 종종 횡단보도 사고가 나곤 했다. 혼잡한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봉사하는 최 할아버지 덕에 교통사고는 한 건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것이 최 할아버지의 자랑이기도 하다.
엄재칠 노원경찰서 하계1치안센터 민원담당관은 “2~3년 전부터 당현지구대원들도 함께 교통지도를 하는데 할아버지의 열의는 따르기 힘들다”며 고마워했다.
17년 동안 이곳에 있다 보니 최 할아버지와 어린이들은 정이 듬뿍 들었다.
어린이들은 매일 보는 최 할아버지에게 꼭 인사한다. 개구쟁이들은 도로가 떠나가라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며 정문으로 뛰어가고 수줍어하는 어린이들은 고사리 손을 내밀어 할아버지 손을 쥐고 지나간다. 최 할아버지는 “어린이들을 보러 매일 나간다”면서 “몸이 안 좋아 겨우 나갈 때도 있는데 이상하게 옷을 입고 나서면 몸이 좋아진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최 할아버지는 이젠 지역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다. 학생 학부모 주민들은 그가 지나가면 알아보고 인사한다. 최 할아버지는 “그 길을 지나가는 택시 운전사들도 나를 알아보고 손을 흔든다”며 즐거워했다.
최 할아버지는 인근 영구임대아파트에 살고 있는 독거노인이다. 월수입은 정부에서 기초생활수급자에게 지급하는 35만원이 전부. 월세, 관리비, 전기세, 난방비 등을 내고 나면 10만원도 채 안 남는다. 최 할아버지는 식비를 조금이라도 아끼기 위해 하루에 두 끼를 먹은 지 오래다. 인근 복지관에서 점심 때 가져다주는 도시락을 두 번으로 나눠 먹는다.
할아버지가 혼자 살기 시작한 지는 5년여 됐다. 그 이전에는 며느리, 손녀 2명과 함께 살았지만 손녀들이 자라 20대가 되면서 집이 좁아 내보냈다. 택시운전을 하던 아들은 안타깝게도 간경화가 악화돼 10년 전에 세상을 떴다.
최 할아버지는 “아직도 벽에 아들 사진을 걸어두고 있다”면서 “손녀들은 죽은 아빠 사진을 떼라고 하지만 보고 싶을 때가 있다”며 눈물을 훔쳤다.
최 할아버지의 바람은 하나다. 건강하게 교통봉사를 계속 하는 것이다. 최 할아버지는 “몸이 지금만 같으면 내년까지는 끄떡없이 교통봉사를 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욕심을 좀 더 내면 손녀들이 결혼할 때까지 살고 싶다”며 환하게 웃었다.
송현경 기자 funnyso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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