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신문이 만난 사람들-안정철

20여 년간 수원의 역사를 지켜온 터줏대감

오복서점 대표 안정철

지역내일 2009-12-10
역사가 깊을수록 문화가 진할수록 그 나라를 대표할만한 고서점이, 혹은 고서점 거리가 한군데쯤 자리 잡고 있다. 역사가 깊은 수원에도 남문 근처에 몇 개의 유명한 고서점이 자리하고 있다. 그 중에 오복서점은 20년간 자리를 지켜온 수원의 헌책방중 터줏대감 격이다.
오복서점을 경영하는 안정철 씨(51)를 찾아갔을 때, 같은 또래인 50대 초반의 중후한 남성 두 분과 친구처럼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바로 10여년 이상 단골로 오가던 손님들이다. ‘그저 먹고 살기 위해’ 하는 장사라고 말하는 안정철 씨. 그러나 고서점에 대한 그의 철학은 확실하다. ‘헌책방 주인은 물건으로 이야기하고, 책은 필요한 사람이 갖고 가야 한다’는 것. 소장가치가 있는 서적을 꾸준히 매입하지만 언제나 욕심 없는 가격으로 판매한다. 스스로 소장할 욕심을 부리지도 않고, 시간을 묵혀 값이 더 오르기를 바라는 마음도 없다. <동인전집>(홍인출판사)은 연구자나 수집가들이 찾는 것으로 10만원이라는 비싸지 않은 가격을 매겨두었다. 일반 손님들한테도 내용을 보려면 비싸지 않은 다른 판본을 보라고 권한다. 매장이 지하에 있지만 유독 깔끔하고 책장 사이를 널찍하게 해 두어 손님들이 편하게 책을 읽도록 배려하기도 했다. “일본의 왕비에게 하루 동안 자유롭게 시간을 보낼 수 있으면 뭘 하겠냐고 했더니, 헌책방 거리 진보초에서 종일 책을 읽고 싶다고 했답니다. 책을 사고 싶은 게 아니라 읽고 싶은 곳. 그게 헌책방을 드나드는 제 맛이지요.”
1975년 대학촌 문명서점에서 8년 정도 책방 일을 배운 안정철 씨는 여러 서점을 전전하다가 친구가 하던 청량리 책방을 끝으로 서울 살이를 접었다. 1990년 지금 자리에서 100미터 떨어진 곳에서 8평으로 오복서점을 냈다. 행궁을 복원하면서 그 자리가 헐려 4년 전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 인터넷사이트(www.obookstore.co.kr)도 열었다. 오복서점의 사이트 이름이 오북서점이 되었냐 물으니까 “오복서점이 촌스러워서”라며 웃는다.
백혈병이었던 단골손님이, 1960년대 일간지에 연재되었던 와룡생의 무협소설 <천애협려>를 찾았던 일이 가장 마음 아팠다는 안정철 씨. 오복서점에 가면 언제나 그를 볼 수 있다. 직원도 없고 일요일도 없이 한결같이 한자리를 지킨다. 형편은 어려워지는 게 사실. 시작할 때 10여 곳이던 헌책방이 오복을 포함해 네 곳만 남았다. “헌책방만 어렵나요. 전반적으로 서점 자체가 다 어렵습니다. 적게 벌어 적게 쓰면 그만이지요.”
서점의 책이 곧 자기라고 믿는 안정철 씨의 얼굴에는 소박한 기품이 있었다.

김윤희 리포터 eunee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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