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국가가 내밀한 사적 영역의 행위 제한은 부당”
평등원칙 위배 … ‘개인주의·성개방적’ 시대상 반영
헌법재판소는 국가가 혼인빙자간음행위를 처벌하는 것에 대해 26일 위헌 결정을 내렸다.
혼인빙자간음죄는 2002년 재판관 7(합헌) 대 2(위헌) 의견으로 합헌 결정이 내려졌으나 7년 만에 재판관 6(위헌) 대 3(합헌) 의견으로 결과가 바뀌었다.
이번 결정은 형법 본조문에 내려진 최초의 위헌 결정으로, 혼인빙자간음죄 등으로 유죄판결을 받고 수감 중인 임 모씨와 같은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양 모씨가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면서 이뤄졌다.
위헌으로 결정된 부분은 ‘혼인을 빙자하여 음행의 상습없는 부녀를 기망하여 간음한 자”로 아직 유효한 ‘다른 위계로써’의 부분이 남아있지만 사실상 다른 위계로 기소되는 경우가 없기 때문에 사문화된 셈이다.
◆평등 원칙·사생활 비밀 등 위반 = 재판부는 이 법조항이 “여성을 보호한다는 미명 아래 사실상 국가가 여성을 유아시함으로써 여성의 성적자기결정권을 부인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여성이 혼전 성관계를 요구하는 남자와 성관계를 가지기로 결정해 놓고 차후에 자기 결정이 착오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남성의 처벌을 요구하는 것은 여성 스스로가 자신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부인하는 행위라고 본 것이다.
여성부도 이 법률 조항이 여성을 성적 의사결정의 자유도 제대로 행사할 수 없는 존재로 비하하고 있다는 이유로 남녀 평등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하여 위헌의견을 개진했었다.
혼인빙자간음죄는 여성뿐 아니라 남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제한하는 측면도 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헌법에 보장된 개인의 인격권·행복추구권에는 개인의 자기운명결정권이 전제되어 있고 이 자기운명결정권에는 성행위 여부 및 그 상대방을 결정할 수 있는 성적 자기 결정권이 포함돼 있다”며 “혼인빙자간음행위를 형사처벌하는 것은 남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제한하며 내밀한 사적 생활영역의 행위를 제한하므로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역시 제한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남성이 여성을 매매의 대상이나 흥정의 미끼로 삼는 등 해악적 문제를 수반하지 않는 방법으로 여성을 유혹하는 성적행위에 대해 국가가 개입하는 것은 억제되어야 한다고 판시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국민 법감정 변화 = 혼인빙자간음죄는 ‘음행의 상습 없는 부녀’만을 보호 대상으로 삼아 ‘성매매 여성’이나 같은 시기에 다수의 남성과 성관계를 맺는 여성은 보호대상에서 제외했다. 이 때문에 다수의 남성과 성관계를 맺는 여성을 ‘음행의 상습 있는 부녀’로 낙인찍는 결과를 가져왔고 보호대상을 ‘음행의 상습 없는 부녀’로 한정해 여성에 대한 고전적 정조관념에 기초한 가부장적·도덕주의적 성 이데올로기를 강요하는 셈이 됐다.
결국 보호대상이 여성의 성적자기결정권이라기 보다는 여성의 경건하고 정숙한 혼인생활에 맞춰져 있고 이 바탕에는 남성우월의 고전적인 정조관념이 깔려있었던 것이다. 재판부는 “최근 우리 사회는 급속한 개인주의적·성개방적인 사고의 확산에 따라 성과 사랑은 법으로 통제할 사항이 아닌 사적인 문제라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며 “전통적 성도덕의 유지라는 사회적 법익 못지않게 성적자기결정권의 자유로운 행사라는 개인적 법익이 더 한층 중요시되는 사회로 변해가고 있다”고 판시했다.
혼전 성관계가 여성에게 곧 결혼을 의미하는 성풍속이 존재한다거나 한번의 경솔한 혼전성관계도 여성에게는 정상적인 결혼이나 사회생활을 가로막는 결정적 장애라는 사회적 인식이 존재한다는 것이 전제되면 이 법이 존속돼야 할 의미가 있지만 지금 그 필요성이 미미해졌다는 뜻이다.
게다가 최근 5년동안 혼인빙자간음행위 중 고소되는 사건의 건수는 1년에 500건~700건에 불과하고 그 중 기소되는 사건은 연 평균 30건 미만이며 고소 이후에도 수사나 재판과정에서 고소가 취소돼 종결되는 사건이 상당수여서 형벌로서 처단기능이 약화한 것도 위헌 결정에 한 몫 했다.
한편 헌법재판소법에 따라 형법 조항은 소급해서 효력을 상실하기 때문에 혼인빙자간음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들은 재심을 청구할 수 있다.
박소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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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원칙 위배 … ‘개인주의·성개방적’ 시대상 반영
헌법재판소는 국가가 혼인빙자간음행위를 처벌하는 것에 대해 26일 위헌 결정을 내렸다.
혼인빙자간음죄는 2002년 재판관 7(합헌) 대 2(위헌) 의견으로 합헌 결정이 내려졌으나 7년 만에 재판관 6(위헌) 대 3(합헌) 의견으로 결과가 바뀌었다.
이번 결정은 형법 본조문에 내려진 최초의 위헌 결정으로, 혼인빙자간음죄 등으로 유죄판결을 받고 수감 중인 임 모씨와 같은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양 모씨가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면서 이뤄졌다.
위헌으로 결정된 부분은 ‘혼인을 빙자하여 음행의 상습없는 부녀를 기망하여 간음한 자”로 아직 유효한 ‘다른 위계로써’의 부분이 남아있지만 사실상 다른 위계로 기소되는 경우가 없기 때문에 사문화된 셈이다.
◆평등 원칙·사생활 비밀 등 위반 = 재판부는 이 법조항이 “여성을 보호한다는 미명 아래 사실상 국가가 여성을 유아시함으로써 여성의 성적자기결정권을 부인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여성이 혼전 성관계를 요구하는 남자와 성관계를 가지기로 결정해 놓고 차후에 자기 결정이 착오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남성의 처벌을 요구하는 것은 여성 스스로가 자신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부인하는 행위라고 본 것이다.
여성부도 이 법률 조항이 여성을 성적 의사결정의 자유도 제대로 행사할 수 없는 존재로 비하하고 있다는 이유로 남녀 평등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하여 위헌의견을 개진했었다.
혼인빙자간음죄는 여성뿐 아니라 남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제한하는 측면도 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헌법에 보장된 개인의 인격권·행복추구권에는 개인의 자기운명결정권이 전제되어 있고 이 자기운명결정권에는 성행위 여부 및 그 상대방을 결정할 수 있는 성적 자기 결정권이 포함돼 있다”며 “혼인빙자간음행위를 형사처벌하는 것은 남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제한하며 내밀한 사적 생활영역의 행위를 제한하므로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역시 제한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남성이 여성을 매매의 대상이나 흥정의 미끼로 삼는 등 해악적 문제를 수반하지 않는 방법으로 여성을 유혹하는 성적행위에 대해 국가가 개입하는 것은 억제되어야 한다고 판시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국민 법감정 변화 = 혼인빙자간음죄는 ‘음행의 상습 없는 부녀’만을 보호 대상으로 삼아 ‘성매매 여성’이나 같은 시기에 다수의 남성과 성관계를 맺는 여성은 보호대상에서 제외했다. 이 때문에 다수의 남성과 성관계를 맺는 여성을 ‘음행의 상습 있는 부녀’로 낙인찍는 결과를 가져왔고 보호대상을 ‘음행의 상습 없는 부녀’로 한정해 여성에 대한 고전적 정조관념에 기초한 가부장적·도덕주의적 성 이데올로기를 강요하는 셈이 됐다.
결국 보호대상이 여성의 성적자기결정권이라기 보다는 여성의 경건하고 정숙한 혼인생활에 맞춰져 있고 이 바탕에는 남성우월의 고전적인 정조관념이 깔려있었던 것이다. 재판부는 “최근 우리 사회는 급속한 개인주의적·성개방적인 사고의 확산에 따라 성과 사랑은 법으로 통제할 사항이 아닌 사적인 문제라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며 “전통적 성도덕의 유지라는 사회적 법익 못지않게 성적자기결정권의 자유로운 행사라는 개인적 법익이 더 한층 중요시되는 사회로 변해가고 있다”고 판시했다.
혼전 성관계가 여성에게 곧 결혼을 의미하는 성풍속이 존재한다거나 한번의 경솔한 혼전성관계도 여성에게는 정상적인 결혼이나 사회생활을 가로막는 결정적 장애라는 사회적 인식이 존재한다는 것이 전제되면 이 법이 존속돼야 할 의미가 있지만 지금 그 필요성이 미미해졌다는 뜻이다.
게다가 최근 5년동안 혼인빙자간음행위 중 고소되는 사건의 건수는 1년에 500건~700건에 불과하고 그 중 기소되는 사건은 연 평균 30건 미만이며 고소 이후에도 수사나 재판과정에서 고소가 취소돼 종결되는 사건이 상당수여서 형벌로서 처단기능이 약화한 것도 위헌 결정에 한 몫 했다.
한편 헌법재판소법에 따라 형법 조항은 소급해서 효력을 상실하기 때문에 혼인빙자간음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들은 재심을 청구할 수 있다.
박소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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