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일반계 고등학교에서 미술 교과는 1학년 때 스치듯 배우고 만다. 만약 일반계 고교생이 미대를 가고 싶다면 방법은 하나, 입시 미술 전문 학원을 통해서다.
10년 전, 중산고에 미술부 동아리가 생긴 것은 그림 그리기를 포기하지 않은 학생 5명을 전 미술담당 양승만 교사가 도우면서였다. 학교에서 선생님과 아이들이 한데 뭉쳐 준비한 미대 입시에서 예상 밖의 ‘전원 합격’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청개구리’ 동아리의 활약이 알려지면서 중산고는 2004년부터 경기도 교육청의 ‘미술교과특기자 육성학교’가 되었고, 이제는 인문계 고등학교로서는 드물게 미대 입시 명문 학교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일반고 속의 예고’, 공교육에서 대입 미술교육과 진학 성공이 가능함을 보여주는 중산고 ‘청개구리’ 미술부. 수채화처럼 맑은 그들을 만나보았다.
‘청개구리’ 미술부의 10년
어스름이 깔린 초겨울 저녁, 중산고의 미술반은 눈부시게 환한 불빛을 쏟아내고 있다. 교실 세 개를 합친 널찍한 실기 작업실은 조용하기 그지없다. ‘사락사락~’ 들리는 것은 도화지에 연필 닿는 소리뿐. 뚫어지게 정물을 응시하는 학생, 종이 위 사과에 맑은 색을 입히는 여학생, 디자인 도안을 머릿속에 새기듯 뚫어지게 바라보는 남학생이 집중을 넘어 몰입하고 있다. 교실은 가운데를 선으로 그은 듯 앞쪽은 수채화반, 뒤쪽은 디자인반 학생들이 모여 있었다.
“동아리라 하기에는 규격화되어 있고, 그렇다고 따로 반 편성이 돼 있는 것도 아닌, 그 중간의 모습이라 생각하면 좋을 거예요”
지난해부터 중산고 미술부를 담당하고 있는 이상선 교사는 ‘청개구리’의 위치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학생들은 학교 정규 수업을 모두 받고, 방과후에 미술반에 모여 실기 및 미술공부를 한다. 더불어 미술부의 날, 여름 캠프, 가을 전시회를 통해 선후배 관계를 돈독히 하고, 교사 및 강사와 친밀도를 높이는 동아리 활동도 한다.
하지만, 이 학생들은 모두 시험을 보고 합격해서 들어온 재원들. 매년 11월에 1차 시험과 다음 해 2월 2차 시험이 있는데, 1차는 관내 중학생이라면 누구든 지원할 수 있지만, 2차는 중산고에 배정된 학생에 국한해 지원할 수 있다. 최다솔(2학년)양의 경우 덕양구 화정중학교에 다니면서 지원한 경우다. 중산고에 근무했던 교사가 ‘청개구리’ 미술부를 추천해 줘서 알게 되고 시험도 보았다. 그래서 미술부 학생들 중에는 원거리 통학생들이 유난히 많다.
차별화된 미술 수업과 특별활동
다양한 미술활동 중 누드 크로키는 미술대학 회화과에서나 하는 고급 과정이지만, 청개구리 학생들은 10년째 하는 전통 프로그램이다. 제혜윤(2학년)양은 “처음에는 저희도 남자모델, 여자모델을 보고 놀랐어요. 조금 당황하다가 익숙해지니깐 손만 돌아가요. 나중에는 3분 내지 7분 안에 포즈를 바꾸니까 순간적으로 그리는 힘이 생겼어요. 인체가 제일 그리기 힘들다던데, 비례가 약간만 틀려도 바로 티가 나서 그런 것 같습니다”라고 말한다. 처음에는 머뭇대던 학생들도 나중에는 정해진 시간 안에 많은 양을 뽑아내려고 치열해진다는 이야기.
이 외에도 공교육에서 시도도 못 한 활동은 더 있다. 1학년 겨울방학 때 떠나는 해외 미술관 견학도 그 중 하나. 지난해는 일본 도쿄를 갔는데, 국내 미술교수의 추천을 받은 코스로 다니면서 일본 미대생들이 주로 찾는 미술관, 디자인 숍을 선별해서 둘러보았다. 양질의 공교육 커리큘럼은 사진 촬영 기법, 국내 전시회 및 대학 탐방, 연 1회 갤러리 전시회 실시, 여름방학 미술캠프로 계속 이어진다. 미술부 반장 이정아(2학년) 양은 “총인원이 70명이나 되니, 서로 친해질 기회가 없다가 이렇게 행사를 한번 씩 하면서 팀워크도 다지고 서로를 더 잘 챙겨주는 분위기가 생긴다. 그것이 경쟁만 하는 학원과 우리의 다른 점”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실기수업과 특별 활동을 하기 위해 학생들은 매 달 얼마씩 낼까? 9명 강사 비용을 수익자 부담으로 계산해서 내는 20만원이 전부다. 그 외 특별활동비, 재료비 등 나머지 부분은 교육청에서 지원하는 돈으로 운영해 나가기 때문에 안정적인 교육 활동은 계속 이어질 수 있다.
공교육에서도 미대 입시 명문 가능하다
청개구리 미술부는 입학부터 대학 전공에 맞춰 실습을 준비한다. 입학 당시의 실력 차이도 3년이라는 시간이 메워지면 ‘실기는 걱정하지 않는 단계’에 이르게 된다. 실기 실력이 이 정도니 미술학원이 끼어들 여지는 전혀 없다. 그렇게 3년간 학생 한명이 절감하는 사교육 비용은 1500만원.
공교육에서 양질의 미술교육을 실시할 때 학생들에게 돌아오는 혜택은 대학 진학 실적에도 드러난다. 1999년부터 2006년까지는 한국종합예술대학, 홍익대, 이화여대, 경희대, 한양대 등에 전원 합격시킨 신화부터 2007년부터는 대학의 과 수석, 장학생이 나오기 시작했고, 지난해는 서울대학교 디자인학부 수시 합격생이 배출되기도 했다. 평균 중산고 미술부 3학년생의 절반 정도가 서울권 대학에 꾸준히 합격하고 있다.
이상선 교사는 미술반 학생들이 더 없이 자랑스럽지만 한편으로 걱정도 있다. “솔직히 우리 중산고 미술부가 아니면 화가, 디자이너의 꿈을 포기해야 하는 학생들도 있어요. 그런 학생들까지 공교육에서 끌어안고 갈 수 있다는 것을 지금껏 보여 왔고, 앞으로도 보여드리고 싶어요. 그런데 내년부터는 예산이 줄어들 거라고 해서 학생들에게 부담이 될까 그것이 걱정입니다.”
척박한 일반계 고교에서 싹을 틔운 미술 동아리 ‘청개구리’. 앞으로 우리 공교육의 청색 비전을 위해 거침없는 도약을 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서지혜 리포터 sergilove00@daum.net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10년 전, 중산고에 미술부 동아리가 생긴 것은 그림 그리기를 포기하지 않은 학생 5명을 전 미술담당 양승만 교사가 도우면서였다. 학교에서 선생님과 아이들이 한데 뭉쳐 준비한 미대 입시에서 예상 밖의 ‘전원 합격’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청개구리’ 동아리의 활약이 알려지면서 중산고는 2004년부터 경기도 교육청의 ‘미술교과특기자 육성학교’가 되었고, 이제는 인문계 고등학교로서는 드물게 미대 입시 명문 학교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일반고 속의 예고’, 공교육에서 대입 미술교육과 진학 성공이 가능함을 보여주는 중산고 ‘청개구리’ 미술부. 수채화처럼 맑은 그들을 만나보았다.
‘청개구리’ 미술부의 10년
어스름이 깔린 초겨울 저녁, 중산고의 미술반은 눈부시게 환한 불빛을 쏟아내고 있다. 교실 세 개를 합친 널찍한 실기 작업실은 조용하기 그지없다. ‘사락사락~’ 들리는 것은 도화지에 연필 닿는 소리뿐. 뚫어지게 정물을 응시하는 학생, 종이 위 사과에 맑은 색을 입히는 여학생, 디자인 도안을 머릿속에 새기듯 뚫어지게 바라보는 남학생이 집중을 넘어 몰입하고 있다. 교실은 가운데를 선으로 그은 듯 앞쪽은 수채화반, 뒤쪽은 디자인반 학생들이 모여 있었다.
“동아리라 하기에는 규격화되어 있고, 그렇다고 따로 반 편성이 돼 있는 것도 아닌, 그 중간의 모습이라 생각하면 좋을 거예요”
지난해부터 중산고 미술부를 담당하고 있는 이상선 교사는 ‘청개구리’의 위치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학생들은 학교 정규 수업을 모두 받고, 방과후에 미술반에 모여 실기 및 미술공부를 한다. 더불어 미술부의 날, 여름 캠프, 가을 전시회를 통해 선후배 관계를 돈독히 하고, 교사 및 강사와 친밀도를 높이는 동아리 활동도 한다.
하지만, 이 학생들은 모두 시험을 보고 합격해서 들어온 재원들. 매년 11월에 1차 시험과 다음 해 2월 2차 시험이 있는데, 1차는 관내 중학생이라면 누구든 지원할 수 있지만, 2차는 중산고에 배정된 학생에 국한해 지원할 수 있다. 최다솔(2학년)양의 경우 덕양구 화정중학교에 다니면서 지원한 경우다. 중산고에 근무했던 교사가 ‘청개구리’ 미술부를 추천해 줘서 알게 되고 시험도 보았다. 그래서 미술부 학생들 중에는 원거리 통학생들이 유난히 많다.
차별화된 미술 수업과 특별활동
다양한 미술활동 중 누드 크로키는 미술대학 회화과에서나 하는 고급 과정이지만, 청개구리 학생들은 10년째 하는 전통 프로그램이다. 제혜윤(2학년)양은 “처음에는 저희도 남자모델, 여자모델을 보고 놀랐어요. 조금 당황하다가 익숙해지니깐 손만 돌아가요. 나중에는 3분 내지 7분 안에 포즈를 바꾸니까 순간적으로 그리는 힘이 생겼어요. 인체가 제일 그리기 힘들다던데, 비례가 약간만 틀려도 바로 티가 나서 그런 것 같습니다”라고 말한다. 처음에는 머뭇대던 학생들도 나중에는 정해진 시간 안에 많은 양을 뽑아내려고 치열해진다는 이야기.
이 외에도 공교육에서 시도도 못 한 활동은 더 있다. 1학년 겨울방학 때 떠나는 해외 미술관 견학도 그 중 하나. 지난해는 일본 도쿄를 갔는데, 국내 미술교수의 추천을 받은 코스로 다니면서 일본 미대생들이 주로 찾는 미술관, 디자인 숍을 선별해서 둘러보았다. 양질의 공교육 커리큘럼은 사진 촬영 기법, 국내 전시회 및 대학 탐방, 연 1회 갤러리 전시회 실시, 여름방학 미술캠프로 계속 이어진다. 미술부 반장 이정아(2학년) 양은 “총인원이 70명이나 되니, 서로 친해질 기회가 없다가 이렇게 행사를 한번 씩 하면서 팀워크도 다지고 서로를 더 잘 챙겨주는 분위기가 생긴다. 그것이 경쟁만 하는 학원과 우리의 다른 점”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실기수업과 특별 활동을 하기 위해 학생들은 매 달 얼마씩 낼까? 9명 강사 비용을 수익자 부담으로 계산해서 내는 20만원이 전부다. 그 외 특별활동비, 재료비 등 나머지 부분은 교육청에서 지원하는 돈으로 운영해 나가기 때문에 안정적인 교육 활동은 계속 이어질 수 있다.
공교육에서도 미대 입시 명문 가능하다
청개구리 미술부는 입학부터 대학 전공에 맞춰 실습을 준비한다. 입학 당시의 실력 차이도 3년이라는 시간이 메워지면 ‘실기는 걱정하지 않는 단계’에 이르게 된다. 실기 실력이 이 정도니 미술학원이 끼어들 여지는 전혀 없다. 그렇게 3년간 학생 한명이 절감하는 사교육 비용은 1500만원.
공교육에서 양질의 미술교육을 실시할 때 학생들에게 돌아오는 혜택은 대학 진학 실적에도 드러난다. 1999년부터 2006년까지는 한국종합예술대학, 홍익대, 이화여대, 경희대, 한양대 등에 전원 합격시킨 신화부터 2007년부터는 대학의 과 수석, 장학생이 나오기 시작했고, 지난해는 서울대학교 디자인학부 수시 합격생이 배출되기도 했다. 평균 중산고 미술부 3학년생의 절반 정도가 서울권 대학에 꾸준히 합격하고 있다.
이상선 교사는 미술반 학생들이 더 없이 자랑스럽지만 한편으로 걱정도 있다. “솔직히 우리 중산고 미술부가 아니면 화가, 디자이너의 꿈을 포기해야 하는 학생들도 있어요. 그런 학생들까지 공교육에서 끌어안고 갈 수 있다는 것을 지금껏 보여 왔고, 앞으로도 보여드리고 싶어요. 그런데 내년부터는 예산이 줄어들 거라고 해서 학생들에게 부담이 될까 그것이 걱정입니다.”
척박한 일반계 고교에서 싹을 틔운 미술 동아리 ‘청개구리’. 앞으로 우리 공교육의 청색 비전을 위해 거침없는 도약을 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서지혜 리포터 sergilove00@daum.net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