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 만난 사람- 3대째 가업 잇는 대장장이 강영기 씨

"정교한 내 물건의 진가 아는 단골 많지"

지역내일 2009-10-25 (수정 2009-10-25 오후 1:14:21)

땀 흘려 번 돈으로 자식 양육, 집 마련…나에게는 천직 



민속촌이나 가야 구경할 수 있는 대장간이 우리 지역에 있다. 천호동 로데오거리와 천호시장 인근에 있는 동명대장간이 그곳이다. 주상복합 건물과 옷가게들이 즐비한 시가지 한복판에 과거의 모습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는 대장간이 숨 쉬고 있다니 무척 흥미로운 대목. 사실 가게 밖에 걸린 대장간 간판을 발견하지 못하면 이곳은 그저 일반적인 철물점 분위기만 풍길 뿐이다. 하지만 가게 안으로 들어서면 책이나 TV로 접해본 대장간의 모습이 재현된 듯 신기한 광경이 펼쳐진다. 마치 문 하나를 사이로 과거로 시간여행이라도 떠난 기분이다.

아버지 가업 이어 70년째 한 자리 지켜
동명대장간을 꾸리는 강영기 씨(59‧천호3동)는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 70년 가까이 이곳을 지키고 있다. 여기서 만들어지는 것은 호미, 낫 등 농기구에서부터 각종 공구들. 2000도가 넘는 화로에서 달궈진 쇠는 늘어지고 잘리고 매질을 당하면서 각종 공구와 부품으로 태어난다.
“대장간 일을 하게 된 이유가 뭐 특별하게 있겠어. 아버지가 일하는 모습을 늘 옆에서 봐오다보니 이게 가장 쉬운 일이겠다 생각됐고…별다르게 배운 것이 없으니까 계속하고 있는 거지.”
어렸을 때는 쇠에 매질을 제대로 못한다며 아버지로부터 매도 많이 맞았다. 잠깐 방심하면 사고가 나거나 연장이 제 모양을 잃어버리기 때문에 작업할 때는 항상 긴장을 놓지 말라는 의도가 담겨있었던 셈.
그러나 모든 과정이 수작업으로 이루어지다보니 애꿎은 손이 희생양이 되는 경우가 빈번하다. 쇠망치로 매질을 하다 찧은 손가락은 단단해져 잘 구부려지지 않는다. 강 씨는 “처음에는 불에 데고 손가락을 찧는 일은 보통 이었다”면서 “하지만 옛날 방식으로 두드리고 자르다보면 다치는 일이 줄어들고 사고의 강도도 세지 않다”고 얘기했다. 오히려 편리하게 작업하려고 기계를 사용하다보면 사고의 위험이 늘 있다는 것.

일감 밀려 밤 새가며 일하기도 해
강 씨의 대장간에는 제대로 된 연장, 공구를 구하러 멀리서 오는 사람들이 많다. 두세 달 전에는 미국에 들어가는 단골손님이 농기구를 여러 자루씩 사가기도 했다. 한 자리를 오랫동안 지키고 있는데다 그의 공구를 써본 사람들은 강 씨가 만든 물건의 진가를 알고 그 만을 찾아오기 때문이다. 더구나 동명대장간은 송파구와 강남구, 강동구를 통틀어 유일하게 남아있는 대장간이다.
“내 물건은 손님 마음에 들게끔 원하는 대로 만들어 준다는 점이 좋지. 중국산이나 기계로 찍어낸 것들이 많지만 내 것은 훨씬 정교하고 그것들에 비교할 수가 없어. 쓰다 망가진 것들도 고쳐주고...”
예전에 비하면 일감이 현저하게 줄어든 요즘, 강 씨는 공장이나 건축업을 하는 사람들이 쓰는 공구와 부품을 주로 만든다. 그는 “옛날에는 호미, 낫 등 농기구를 많이 만들었어. 이 동네가 옛날에는 다 논, 밭이었잖아. 땅이 질퍽거려서 장화 없으면 돌아다니기 힘들 정도 였다”면서 “88올림픽이후 5년 동안은 건설경기가 일어나면서 나도 일감이 참 많았다. 그때는 직원도 있고 우리 집사람까지 쉴 틈 없이 일했으니까. 한 때는 수출도 했었다”며 전성기를 회상했다.
IMF 경제위기 이후 건축경기가 꺾이면서 그의 일감도 많이 줄었다. 일반주택보다 아파트 건설에 열을 올리는 건설흐름이나 주거형태의 변화도 영향을 줬다.
“옛날에는 서울시내에도 대장간이 많이 있었어. 일이 워낙 고되고 일감이 줄어들다보니 문 닫는 곳이 많아져서 지금이야 생소한 곳이 됐지만…”

대장간 일, 먹고 사는데 문제없어
강 씨의 대장간에는 서른에 접어든 아들이 함께 하고 있다. 그는 “아들이 대장간 일을 해 보겠다 해서 처음에는 반대도 많이 했지. 워낙 힘드니까 다른 일을 찾았으면 하는 것이 부모심정이잖아”라고 얘기했다. 하지만 아들의 생각과 계획을 듣고 5년 전부터 기술도 알려주면서 하루 종일 함께 호흡한다. 그래도 옆에서 묵묵히 일하는 아들을 보고 있노라면 안쓰럽기도 하면서 고마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대장간에서 땀 흘려 번 돈으로 자식도 가르치고 집도 사고했으니 나한테는 소중한 곳이야. 노력한 만큼 돈도 벌 수 있고… 일이 줄었다 해도 먹고 살기는 괜찮아.”
한평생 대장장이로 살아온 강 씨의 얼굴은 유난히 검다. 매일 뜨거운 불 앞에서 쇠를 다루다보니 피부색이 검게 그을린 것이다. 강건한 쇠를 다뤄서 일까. 그의 표정과 말에도 진솔함과 우직함이 풍긴다.
“건설경기가 좋아져서 일거리가 많아지면 좋겠어. 그리고 아파트 말고 일반 주택들도 지어서 두루두루 잘 살 수 있었음 해. 요즘 석사, 박사 실업자들도 많다고 하던데 나는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생각해. 헛된 꿈 안 꾸고 내가 먹고 살만큼 벌면서 내 자리에서 열심히 일하면 그게 최고 아니겠어.”

김소정 리포터 bee4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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