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엄마의 장롱 속엔 보물이 많다. 타임머신을 타고 유년의 기억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오래된 물건들, 그 중에서도 아직 진솔로 곱게 간직되어 있는 어머니의 한복을 대할 때면 주름진 어머니의 얼굴 위로 젊은 시절 한복테 고왔던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어릴 적 어머니가 늘 쪽을 지고 한복을 입으셨어요. 어린 기억 속에서도 그런 어머니의 모습이 무척 좋았어요.” 비슷한 향수를 가졌지만 좋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일에 열정적으로 빠져들어 인정받는 한복디자이너로 자리잡은 ‘조옥란 한복’ 조옥란(49) 대표를 만났다.
유년의 기억 속 한복 입은 어머니, 그 단아함에 매료되다
색감이 화려하지도 않고 그저 최고의 호사래야 목수를 놓은 한복이었지만 어린 그의 눈에 ‘한복’은 참 아름다운 옷으로 각인되었다. 우리 옷에 대한 것을 생각할 수 있게 만든 계기는 고등학교 2학년 때, 학교 대표로 강릉 사임당 교육원에서 전통문화와 예절교육을 받게 되면서. 3박 4일 내내 잘 때를 제외한 시간 늘 한복을 입고 생활해야했지만 “의외로 한복이 불편하지 않고 참 편안하다”고 느꼈단다. 하지만 전공은 경영학 관련, 한복에 대한 그의 남다른 사랑(?)도 그냥 그렇게 끝나는 듯 했다. “손재주도 좀 있었던 것 같아요. 결혼 후에도 조물락 조물락 바느질 재주를 부려 뭘 만들기 잘했는데 어느 날 우연히 지인이 한복 한 번 만들어보지 않겠느냐고 하더군요.” 한복 짓기가 필연이었을까. 지인의 제안이 단초가 되어 첫 딸이 생후 8개월 때부터 학원에서 한복을 배우기 시작했다.
배울수록 어렵고 우리 것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이 커진다
학원에서 한복을 배우는 것만으론 그의 성에 안찼다. “막연하게 좋아하던 것에서 배우고 보니 점점 더 빠져들게 하는 매력이 있었어요. 그래서 구혜자 선생님 등 인간문화재 두 분에게서 사사를 하였고 성균관대학에서 궁중복식을 본격적으로 공부했어요. 그때 궁중복식연구회 1기로 활동하면서 성균관대 교수진과 함께 점점 잊혀져가는 우리 궁중 옷을 재현하는 등 제가 생각해도 깊이 빠져 들었죠.”
‘조옥란 한복’ 대표로 또 미국이민 100주년 기념 대사관 초청 한복문화학회, 몽고대통령 초청 패션쇼 겸 전시회, 북경대 초청 중국복식전문가와 함께 한 패션쇼 겸 전시회, 일본대사관 초청 전시회 등과 지난 8월 5~24일 국립민속박관에서 열린 ‘우리 할머니의 회혼례 전’ 등 국내외 한복 패션쇼 및 전시회에 참가하는 등 한복디자이너로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바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매진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행복하다. 하지만 우리 것을 재현하고 연구할수록 안타까움 또한 크다.
“우리 옷을 재현하는 데 우리나라엔 자료가 없고 중요한 자료들이 거의 일본에 있어요. 거꾸로 일본에 가서 사정사정해 자료를 볼 수 있다니 너무 억울하죠. 그렇게 어려운 과정을 거쳐 우리 궁중 옷을 재현해내는 보람도 크지만 안타까움도 커요.”
그는 지금까지 흔히 보여진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 조복이나 심지어 수의까지 우리 전통 옷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너무 모르고 있는 것이 안타깝고, 그럴수록 하나라도 더 많은 이들에게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이 생긴단다.
색동에 숨은 조화의 미에 빠지다
‘조옥란’ 하면 색동옷을 떠올릴 정도로 그는 색동옷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도대체 색동의 어떤 매력이 그를 붙들고 있는 걸까? “색동에는 음양오행을 기본으로 상생의 우주철학이 깃들어 있습니다. 아름다운 색에 오묘하게 깃들여 있는 의미들이 더욱 신비롭지요.” 색동이 무척 화려한 것인 줄 알고 있지만 사실 삼국시대의 사료들을 들춰보면 오히려 자연스러운 빛깔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자연에서 온 염색기법이 자연스러운 색, 즉 화려하면서도 고상한 빛을 뿜어내는 것. 색동의 매력은 다양한 색이 서로 동일한 비율의 공간을 차지하면서 충돌하지 않고 어울리며 어떤 정제되고 품격 있는 리듬을 만들어 낸다는 데에 있다. 규칙적으로 보이는 것들에서 색채적 율동과 화합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재미가 대단하다는 그는 개인의 얼굴색에 맞는 색동옷으로 우아하면서도 화려한 멋을 한껏 드러나게 해준다. “보통 얼굴이 흰 경우는 밝은 컬러에 연두, 빨강, 남색 패턴의 색동이 잘 어울리지요. 반면 하늘색, 붉은색, 보라색 패턴인 한복은 까무잡잡한 피부에 굉장히 고급스러운 느낌을 준답니다.” 그가 내보이는 색동저고리의 미학이 참으로 기품 있고 우아하다.
한복 디자이너 ‘조옥란’, 남편·아이들 함께 만들어
그의 한복은 꼼꼼한 바느질은 물론 색감이 남다르기로 소문이 났다. 지금의 일산 현대아이스페이스에 자리 잡기 이전 양지마을 단독주택가에 ‘조옥란 한복’을 냈을 때부터 쇼윈도에 걸린 그의 한복은 지나는 이의 발길을 붙잡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렇게 한복과 함께 한 시간이 20년, 때론 밤을 꼬박 새우며 한복 짓기에 매달리며 쉼 없이 달려오는 동안 엄마와 아내란 자리에 소홀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또 일을 하느라 귀중한 것을 잃은 아픈 기억도 있다. 두 번째 아이를 가졌을 때 오랜 시간 앉아서 작업하다보니 그만 유산이 되고 만 것. 그 때 “일을 그만두어야 하나”하는 고민으로 가장 힘들었다고 토로한다. “그 것 뿐인가요, 어디. 학교며 인간문화재 선생님을 찾아다니면서 학문적인 공부도 해야 하고, 한복이란 것이 배울수록 끝이 없어 누비, 매듭, 염색, 다도 등 우리 복식과 전통문화에 관한 모든 것들을 두루 공부해야 해요. 그런 아내를 싫다 한 마디 하지 않고 묵묵히 지원해 준 남편이 가장 고맙죠.” 한때 “엄마가 일을 그만두면 안 되겠느냐”고 투정(?)을 부리던 아들, 그리고 아기 때부터 엄마의 바느질과 함께 자란 딸까지 한복디자이너 ‘조옥란’이란 이름은 가족이 함께 만든 소중한 이름이다. 앞으로 그의 꿈은 전통 복식을 비롯한 우리 문화 전반을 체험할 수 있는 문화원을 만드는 것. 경제적인 이득보다는 이제 우리 문화를 제대로 알리고 계승시키는데 자신의 역할이 분명 있다고 믿기 때문이란다. 솜씨만큼 마음씨도 참 예쁘다.
이난숙 리포터 success6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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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의 기억 속 한복 입은 어머니, 그 단아함에 매료되다
색감이 화려하지도 않고 그저 최고의 호사래야 목수를 놓은 한복이었지만 어린 그의 눈에 ‘한복’은 참 아름다운 옷으로 각인되었다. 우리 옷에 대한 것을 생각할 수 있게 만든 계기는 고등학교 2학년 때, 학교 대표로 강릉 사임당 교육원에서 전통문화와 예절교육을 받게 되면서. 3박 4일 내내 잘 때를 제외한 시간 늘 한복을 입고 생활해야했지만 “의외로 한복이 불편하지 않고 참 편안하다”고 느꼈단다. 하지만 전공은 경영학 관련, 한복에 대한 그의 남다른 사랑(?)도 그냥 그렇게 끝나는 듯 했다. “손재주도 좀 있었던 것 같아요. 결혼 후에도 조물락 조물락 바느질 재주를 부려 뭘 만들기 잘했는데 어느 날 우연히 지인이 한복 한 번 만들어보지 않겠느냐고 하더군요.” 한복 짓기가 필연이었을까. 지인의 제안이 단초가 되어 첫 딸이 생후 8개월 때부터 학원에서 한복을 배우기 시작했다.
배울수록 어렵고 우리 것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이 커진다
학원에서 한복을 배우는 것만으론 그의 성에 안찼다. “막연하게 좋아하던 것에서 배우고 보니 점점 더 빠져들게 하는 매력이 있었어요. 그래서 구혜자 선생님 등 인간문화재 두 분에게서 사사를 하였고 성균관대학에서 궁중복식을 본격적으로 공부했어요. 그때 궁중복식연구회 1기로 활동하면서 성균관대 교수진과 함께 점점 잊혀져가는 우리 궁중 옷을 재현하는 등 제가 생각해도 깊이 빠져 들었죠.”
‘조옥란 한복’ 대표로 또 미국이민 100주년 기념 대사관 초청 한복문화학회, 몽고대통령 초청 패션쇼 겸 전시회, 북경대 초청 중국복식전문가와 함께 한 패션쇼 겸 전시회, 일본대사관 초청 전시회 등과 지난 8월 5~24일 국립민속박관에서 열린 ‘우리 할머니의 회혼례 전’ 등 국내외 한복 패션쇼 및 전시회에 참가하는 등 한복디자이너로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바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매진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행복하다. 하지만 우리 것을 재현하고 연구할수록 안타까움 또한 크다.
“우리 옷을 재현하는 데 우리나라엔 자료가 없고 중요한 자료들이 거의 일본에 있어요. 거꾸로 일본에 가서 사정사정해 자료를 볼 수 있다니 너무 억울하죠. 그렇게 어려운 과정을 거쳐 우리 궁중 옷을 재현해내는 보람도 크지만 안타까움도 커요.”
그는 지금까지 흔히 보여진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 조복이나 심지어 수의까지 우리 전통 옷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너무 모르고 있는 것이 안타깝고, 그럴수록 하나라도 더 많은 이들에게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이 생긴단다.
색동에 숨은 조화의 미에 빠지다
‘조옥란’ 하면 색동옷을 떠올릴 정도로 그는 색동옷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도대체 색동의 어떤 매력이 그를 붙들고 있는 걸까? “색동에는 음양오행을 기본으로 상생의 우주철학이 깃들어 있습니다. 아름다운 색에 오묘하게 깃들여 있는 의미들이 더욱 신비롭지요.” 색동이 무척 화려한 것인 줄 알고 있지만 사실 삼국시대의 사료들을 들춰보면 오히려 자연스러운 빛깔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자연에서 온 염색기법이 자연스러운 색, 즉 화려하면서도 고상한 빛을 뿜어내는 것. 색동의 매력은 다양한 색이 서로 동일한 비율의 공간을 차지하면서 충돌하지 않고 어울리며 어떤 정제되고 품격 있는 리듬을 만들어 낸다는 데에 있다. 규칙적으로 보이는 것들에서 색채적 율동과 화합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재미가 대단하다는 그는 개인의 얼굴색에 맞는 색동옷으로 우아하면서도 화려한 멋을 한껏 드러나게 해준다. “보통 얼굴이 흰 경우는 밝은 컬러에 연두, 빨강, 남색 패턴의 색동이 잘 어울리지요. 반면 하늘색, 붉은색, 보라색 패턴인 한복은 까무잡잡한 피부에 굉장히 고급스러운 느낌을 준답니다.” 그가 내보이는 색동저고리의 미학이 참으로 기품 있고 우아하다.
한복 디자이너 ‘조옥란’, 남편·아이들 함께 만들어
그의 한복은 꼼꼼한 바느질은 물론 색감이 남다르기로 소문이 났다. 지금의 일산 현대아이스페이스에 자리 잡기 이전 양지마을 단독주택가에 ‘조옥란 한복’을 냈을 때부터 쇼윈도에 걸린 그의 한복은 지나는 이의 발길을 붙잡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렇게 한복과 함께 한 시간이 20년, 때론 밤을 꼬박 새우며 한복 짓기에 매달리며 쉼 없이 달려오는 동안 엄마와 아내란 자리에 소홀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또 일을 하느라 귀중한 것을 잃은 아픈 기억도 있다. 두 번째 아이를 가졌을 때 오랜 시간 앉아서 작업하다보니 그만 유산이 되고 만 것. 그 때 “일을 그만두어야 하나”하는 고민으로 가장 힘들었다고 토로한다. “그 것 뿐인가요, 어디. 학교며 인간문화재 선생님을 찾아다니면서 학문적인 공부도 해야 하고, 한복이란 것이 배울수록 끝이 없어 누비, 매듭, 염색, 다도 등 우리 복식과 전통문화에 관한 모든 것들을 두루 공부해야 해요. 그런 아내를 싫다 한 마디 하지 않고 묵묵히 지원해 준 남편이 가장 고맙죠.” 한때 “엄마가 일을 그만두면 안 되겠느냐”고 투정(?)을 부리던 아들, 그리고 아기 때부터 엄마의 바느질과 함께 자란 딸까지 한복디자이너 ‘조옥란’이란 이름은 가족이 함께 만든 소중한 이름이다. 앞으로 그의 꿈은 전통 복식을 비롯한 우리 문화 전반을 체험할 수 있는 문화원을 만드는 것. 경제적인 이득보다는 이제 우리 문화를 제대로 알리고 계승시키는데 자신의 역할이 분명 있다고 믿기 때문이란다. 솜씨만큼 마음씨도 참 예쁘다.
이난숙 리포터 success6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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