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남의 말을 잘 안 들을까?

지역내일 2009-10-21
회복을 도와주려는 사람들은 과음의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참 남의 말을 잘 안 듣는다는 것을 이내 알게 된다. 배우자와 가족들이 흔히 겪는 초기의 좌절감이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다. 그들은 왜 남의 말을 안 들을까?
겉으로만 보면 그들은 남의 말을 잘 듣는 것처럼 보이는 수도 많다. 흔히 상대방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부터 고개를 끄덕이며 “예, 예” 하여, 충분히 수긍하고 전폭적으로 수용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수가 많다. 그렇지만 얼마간 시간이 지나고 나서 보면 그가 아무 것도 받아들이지 않았고 전혀 달라진 것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아연해 하는 수가 있다.
그들은 왜 도와주려는 사람의 말을 잘 안 듣는가? 무엇보다 먼저 자신이 놓인 상황에 대한 정확한 평가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과음하면 현실을 제대로 분별할 수 없을 뿐더러 근거 없는 낙관주의나 만능감에 빠져, 전혀 위기로 느끼지 못한데다 자신감에 차 있어 남의 조언을 들으려 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그들은 굳이 경쟁하고 승패를 가를 일이 아닐 때조차 경쟁의식을 갖고 늘 비교하고 승부를 가르려 하면서 절대 지지 않으려 한다. 사소한 게임이나 내기 시합에도 전력을 쏟아 부으려 한다. 따라서 재미로 시작한 것일지라도 결국 피로하고 스트레스만 쌓일 뿐이다. 그들에게 평소 즐겨하는 오락과 유희가 없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이런 성향은 남의 충고나 조언의 수용을 상대방이 자신보다 월등히 우월하다고 자인하는 셈이라 견디기 어렵다.
인간에 대한 기본적 신뢰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는 출생 후 한 살까지 발달하는 가장 초기의 정신적 과업이다. 전적으로 양육자를 믿고 맡기는 동안 상대로부터 전폭적인 관심과 충분히 적절한 돌봄을 받아 인간은 세상에 대한 신뢰가 생긴다. 이 기본적 신뢰에 문제가 있다면 상대의 말을 그대로 믿고 따르기란 어렵다.
마지막으로 자아상의 문제이다. 과음의 문제가 있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본다. 또 확고하고 안정적인 자아상을 갖지 못한 수가 많다. 그래서 주위 사람들의 반응이나 평가에 민감하고 쉽게 휘둘려 불안정해진다. 남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다 보면 자신만의 고유의 생각이나 느낌이 바로 침해를 받아 없어져버린 듯이 여겨진다. 그러다 보면 결국 자신이 해체되어 없어져버리지나 않나 하는 불안이 견딜 수 없다. 그들이 흔히 자율성이나 독립성을 훼손당하는 것에 매우 민감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강원알콜상담센터 신정호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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