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없는 세상 만들기,

이번엔 달라질까?

지역내일 2009-10-20 (수정 2009-10-20 오후 12:07:32)



이번엔 달라질까? 추석 직전 일명 ‘조두순 사건’이 전국을 강타, 국민들을 공분케 했다. 차마 입에 담기도 어려운, 호러 영화보다 끔직한 짓을 저지르고도 모자라 감형을 위해 항소했다는 조두순의 만행, 그걸 술 마셔서 심신이 미약하다는 이유로 12년형을 선고한 사법기관, 게다가 아이는 학교 가는 길에 끌려가 이런 일을 당했다고 한다. 밤늦은 시간도 아니고, 외진 곳도 아니고, 멀쩡하게 학교 가겠다고 나선 아이에게 이런 끔찍한 일이 생겼다니 도대체 이 나라에서 안전한 곳이 어딘가. 성폭력 피해 후 증거 채취를 위해 병원에 갔다 거절당하고 이틀 뒤에 간신히 검사를 받았는데 시간이 경과해 중요한 증거인 DNA를 확보하지 못한 대구 여성 사건, 지적 장애 모녀가 동네 사람들에게 지속적으로 성폭력과 성추행을 당했음에도 증거가 불충분하다고 처벌하지 않는 현실에 분노해 글을 올린 선생님을 보아도 우리 사회가 성폭력 범죄에 취약함을 알 수 있다.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 입장에선 불안하기만 하다.

성 범죄자들이 아이들을 노리는 이유 
용산 초등생 성추행 살해 사건, 혜진이·예슬이 사건 등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분노했고 여러 가지 대책이 쏟아졌다. 그러나 그때뿐 법과 제도를 보완해도 실제로 사건을 접수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기도 하고, 힘들게 유죄를 입증하면 솜방망이 처벌로 피해자를 또 한 번 힘들게 했다.
성폭력 상담을 하다 보면 친부, 의붓아버지, 인터넷에서 만난 아저씨, 친척 아저씨 등에게  피해를 당한 많은 나영이·은지(가명)와 같은 아이들을 만난다. 한 번에 끝나지 않고 지속적으로 성폭행을 일삼기도 한다. 이들이 아이들을 노리는 이유는 만만하기 때문이다. 약하고, 깨끗(?)하고, 협박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아 들킬 위험이 적고, 아이들을 보호해줄 부모가 없거나 약하다 싶으면 더 쉽게 생각해 범행이 계속된다.
지속적으로 피해를 당한 아이는 자존감을 잃고, 삶의 의지도 약해진다. 심지어 판단력이 흐려지고,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몸을 함부로 하기도 한다. 큰맘 먹고 경찰에 고소하려 하면 증거가 없다, 진술에 일관성이 없다면서 피해자의 의지를 꺾어놓기도 한다. 그럴 때면 가해자는 더욱 기고만장해진다.

저항, 음주 여부가 판결에 영향? 한마디로 난센스!
뿐만 아니라 성인 여성과 똑같이 저항 여부가 판결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열한 살 된 장애 초등학생을 성폭행한 남성에게 폭력이 수반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징역 2년이 선고됐다. 이런 논리라면 초등학생이 저항하지 않고 성관계에 응한 것이 정상 참작된다면 우리는 아이들에게 목숨 걸고 저항하라고 가르쳐야 한다는 뜻이다. 성폭력 예방을 위해 아이들에게 ‘낯선 사람을 쫓아가지 마라’고 하지만 아이가 낯선 사람의 개념을 잘 알까? 누군가 성추행하려고 하면 “안 돼요, 싫어요”라고 이야기하라고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납치해 끌고 간다면 아이에게 계속 반항하라고 할 것인가? 반항하다 오히려 가해자를 자극한다면 그 다음은 어떻게 할 것인가?
술 마시고 성폭력하면 심신 미약으로 감형하고, 저항하지 않았기 때문에 폭력이 수반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감형하고, 이런 저런 이유로 아이들에게 성폭력에 관대해지는 판결은 사라져야 한다. 폭력이 있었건 없었건 초등학생을, 그것도 장애가 있는 아이에게 성관계를 시도했다는 것만으로도 중죄가 선고되어야 한다.

성범죄 취약한
사회 시스템 대폭 손질돼야
이번 기회에 아동 대상 성범죄에서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미비했던 사회 시스템이 대폭 손질되기 바란다. 음주 여부가 성폭력 범죄의 감형 사유가 되지 않아야 하고, 유기징역을 15년으로 제한한 것도 손질하자는 의견도 나온다.
배상명령제도에 강간도 포함되어야한다는 의견도 있다. 성폭력 가해자에 의해 상해를 입어도 배상명령제도에서 성폭력이 제외되어 가해자에게 치료비를 물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은 불합리하다. 치료비를 청구하려면 가해자와 합의를 봐야 하는데, 합의를 보려면 가해자의 감형을 감수해야 한다.
이번 조두순 사건 역시 배상명령을 청구했으나 ‘강간상해죄는 형법 제25조 제1항에서 규정하고 있는 배상명령을 명할 수 있는 범죄가 아니고, 같은 법 제25조 제2항의 규정에 따라 손해배상금에 대하여 합의된 바도 없을 뿐만 아니라, 변론 종결시까지만 신청할 수 있는데 그 기한을 도과하였고, 청구금액에는 배상명령 신청의 대상이 아닌 일실수입 부분이 포함되어 있어 형사소송 절차에서 배상명령을 함이 상당하지 아니하다고 인정되므로, 이 사건 배상신청은 부적법하다’며 각하되었다.

제도 정비보다 의식 개혁 우선…
우리 모두 감시자가 돼야 할 때
제도 정비보다 중요한 것은 의식 개혁이다. 아이들인데 뭐 어떠냐며 쉽게 쓰다듬거나 뽀뽀해도 된다는 생각, 술 취하면 실수할 수 있다는 성 문화, 아이들에게 섹시한 춤을 추도록 부추기며 즐거워하는 성적 이미지를 소비하고 판매하는 것에 문제의식 없는 대중매체 등 법 제도 못지않게 의식 개혁이 되어야 하고, 사회 시스템이 제대로 가동되는지 늘 관심 가져야 한다.
그간 어른들은 뭐 했나 반성하고 정부에서 내놓는 대책이 제대로 이행되는지, 예산은 확보되었는지, 부족한 것은 뭔지 끊임없이 감시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사회 감시망이 가동되도록 어른들이 나서야 할 때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등·하굣길에 안전하게 다닐 수 있는 인력과 예산 확보 방안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이현숙 상임대표(탁틴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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