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오전 11시 강남 시각 장애인복지관 4층 액티브홀, 아름다운 오케스트라 선율이 흘러나온다. 살짝 문을 열고 들어서니 여느 오케스트라와 다름없이 연습에 한창인 연주가들의 모습이 보인다. 음악소리에 귀 기울이며 연주자 한명한명을 눈으로 쫓다보니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든다. 보면대가 놓이지 않은 곳이 눈에 띈다. 또 하나, 지휘봉을 든 지휘자가 있어야 할 자리에 클라리넷을 연주하며 이들을 이끌고 있는 음악감독이 눈에 띈다. 이들은 바로 시각장애 음악인으로 구성된 하트 시각장애인 체임버 오케스트라(Heart Blind Chamber Orchestra)다.
시각장애인 오케스트라 만들어지다
하트 시각장애인 체임버오케스트라는 시각장애 음악인으로 구성된 세계 유일의 실내관현악단으로 2007년 3월 창단됐다. 피바디 음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현재 나사렛대학교 전임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클라리네티스트 이상재 음악감독과 베를린 국립음대를 졸업한 바이올리니스트 김종훈 악장을 중심으로 시각장애연주가 11명과 객원 연주자 7명이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 실내악단 세컨드 플루트 주자인 장성주(42·연세대 기악과 졸)씨는 2006년 선배인 이 음악감독의 오케스트라 창단 제의 전화를 받고 ‘생각이 많았다’고 그때를 회상한다.
“시각장애인 오케스트라를 만들고 싶다는 감독님의 전화를 받고 많이 회의적이었던 게 사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현실화하는데 어려움이 많을 것이라 예상했었죠.”
일단 단원들을 모으는 것부터가 쉽지 않았다. 뜻을 모으고 노력을 쏟아 부으니 음악을 전공하고도 전공을 살리고 있지 못하던 연주가들이 한둘 모이기 시작했고, 드디어 다음해 3월 우리나라 최초이자 세계최초로 시각장애인 오케스트라가 구성됐다.
장씨는 “단원들이 처음 함께 연주한 곡이 엘가의 ‘사랑의 인사’였는데 처음 연주를 마쳤을 때의 기쁨과 감동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정상인들은 상상할 수 없는 어려움
장씨는 5살 때 결핵성복막염의 후유증으로 시력을 잃었다. 평소 음악을 하고 싶어 하던 장씨를 지켜보던 누나가 연습용 플루트를 선물한 것이 장씨가 음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됐다. 하지만 시각장애인으로 음악을 전공하는 것이 상상을 초월할 만큼 어려워 ‘괜히 플루트를 했다’는 후회를 한 적도 많다.
우선 점자악보를 구하는 것이 문제. 교재와 악보를 구해 점역봉사자에게 주면 장씨가 읽을 수 있는 점자 악보와 교재로 받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 시간을 허투루 보내야만 했다고.
힘들게 대학교에 들어갔지만 수업을 따라가는 것 또한 녹록치 않았다.
“화성악과 대위법같은 수업을 그냥 귀로만 듣고 따라간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했어요. 플루트를 연주하지만 학교 오케스트라 활동에도 참여할 수 없었고요. 요즘 학교 다니는 후배들 말을 들어보면 많이 달라졌다고 합니다. 그래도 후배들이 겪는 어려움이 많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대학교 졸업 후 장씨는 전공과 관련 없는 여러 직업을 가졌다. 많은 경험과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오케스트라 단원이 될 수 있었다.
플루트를 전공했지만 오케스트라의 일원으로 활동을 해 본 적이 없던 장씨가 처음 마주하게 된 문제는 음악을 통째로 외우는 것이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자신의 파트만 연습하면 되잖아요. 그것도 악보를 보며 연주하면 되니, 외워서 연주해야 하는 독주에 비해 부담감을 훨씬 덜 느끼거든요. 하지만 우리들은 독주가 훨씬 편해요. 우리 악보만 외우면 되니까요.”
오케스트라 단원으로서의 연주는 독주와 달랐다. 다른 파트의 선율을 모두 외워야했고, 어디에서 플루트 파트가 시작되는지를 알기 위해 헤아릴 수 없이 음악을 들어야만 했다.
조화와 어울림 이어갈 환경 조성됐으면
또 하나, 전 단원의 호흡을 일시에 맞추는 것도 문제였다. 특히 오페라 서곡은 시각장애인 연주가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곡들 중 하나다. 변화가 많고 모두가 동시에 새로운 분위기로 음악을 시작해야 하는 부분이 많은데, 그 시작을 맞추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장씨는 “지휘자가 없기 때문에 단원들끼리 무언의 약속을 통해 마음을 맞춘다”며 “이렇게 맞춰가는 과정에서 서로들 간의 조화와 어울림 등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고 말했다.
10월 8일 정기연주회에서 일본시각장애인연주가와의 협연을 앞두고 매주 토요일마다 맹연습 중인 이들의 바람은 하나, 많은 이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다.
“우리의 연주를 보며 시각장애인들은 물론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많은 분들이 희망과 용기를 갖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후배들이 왕성한 활동을 할 수 있게 많은 후원이 이뤄져 지속적으로 자신의 꿈을 펼쳐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박지윤 리포터 dddodo@hanmail.net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