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희망이다] 코레일연구원 박은경씨

지역내일 2009-09-02 (수정 2009-09-02 오전 7:40:01)
[사람이 희망이다] 코레일연구원 박은경씨
“꿈을 향해 달려라, 저 기차처럼”
여성무원에서 기관사까지 화려한 철도경력
대륙철도 진출 꿈 품은 러시아 철도 전문가

“우리 기차가 대륙을 달려 멀리 유럽까지 가는 날을 상상하면 절로 힘이 납니다.”
시베리아횡단열차 안에서 처음 만난 코레일연구원 박은경(39) 연구원은 인사를 대신해 ‘대륙철도 진출의 꿈을 얘기했다.
철도 여승무원에서 기관사로, 차량검수원으로, 다시 대륙철도 진출의 꿈을 품은 러시아 철도 전문가로. 박은경 연구원의 이력이다. 누가 들어도 평범하지 않은 그녀의 이력 뒤에는 언제나 꿈을 이루기 위해 주저 않고 달려들었던 그녀만의 ‘열정’이 숨어있다. 박은경씨는 올해 우리 나이로 마흔이다. 열한 살, 두 살의 두 딸을 둔 엄마이기도 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녀는 15년 철도 인생에서 누구도 따라 하기 힘은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또한 아직도 미개척 분야로 남아있는 러시아 철도 전문가이기도 하다.

◆ 여승무원이 철도와의 첫 인연 = 그녀가 철도와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94년. 새마을호 여승무원으로 입사하면서부터다. 그 전까지는 그저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던 평범한 취업준비생이었다.
사실 그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뚜렷한 진로를 정하지 못한 채 몇 곳의 전문대를 옮겨 다녔다. 92년 마지막으로 택한 곳이 명지전문대 행정과.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그러다 철도 여승무원이 ‘여행을 직업으로 할 수 있다’는 것에 매료돼 94년 당시 철도청에 입사하게 됐다. 그렇게 3년. 그녀는 ‘새마을호 여승무원’이라는 색다른 직업에 만족하며 전국을 누볐다. 하지만 ‘새로운 꿈을 위한 그녀의 도전정신’을 담아내기에는 여승무원이라는 직업이 필요충분조건이 되지는 못했다. 더구나 경찰공무원이셨던 아버지의 꾸지람도 자극이 됐다.
“아버지께서 ‘기차를 끌어도 시원찮은데 객차에서 서비스나 하고 있냐’고 마뜩찮아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기관사가 되기로 마음먹었죠.”
옛날 어른들처럼 서비스업인 여승무원에 대한 직업적 편견은 없다. 충분히 매력도 느꼈다. 단지 내부에 꿈틀대던 자신의 꿈과 거리가 멀었을 뿐. 결국 그녀는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섰다.

◆ 국내 첫 여성 기관사의 꿈 =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기관사가 되고 싶었어요. 철도청에 입사하고 나서 생신 새로운 꿈이었죠.”
결국 그는 97년 철도대학 운전과 입학을 결심하게 되고, 결심은 곧바로 실행으로 옮겨진다. 그의 새로운 꿈은 ‘국내 최초의 여성 기관사’. 박은경씨는 그 해 함께 철도청에 근무하던 지금의 남편과 결혼했다. 2학년 때는 임신해 배가 부른 상태에서 학교를 다녔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첫 여성 기관사’의 꿈을 접을 수는 없었다.
안타깝게도 ‘최초’를 향한 그녀의 꿈은 이뤄지지 못했다. 철도대 한 해 선배인 강은옥씨가 첫 테이프를 끊었기 때문이다. 강씨는 최근 KTX 첫 여성기관사로도 각종 언론에 소개된 바 있다.
“언니(박은경씨는 강씨를 언니라고 부른다)에게는 미안한 얘기겠지만 ‘첫 여성 기관사’의 꿈을 아깝게 놓쳤어요. 당시 승무원 시험제도만 바뀌지 않았으면 제가 첫 여성 기관사가 될 수 있었는데.”
당시만 해도 철도 경력 3년이면 기관사 시험을 볼 수 있었다. 3년의 여승무원 경력 탓에 박 씨는 쉽게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마침 그즈음 열차사고(인명사고)가 발생했고, 기관사 시험을 볼 수 있는 조건이 갑자기 ‘부기관사 경력 2년’으로 강화됐다. 결국 강은옥씨에게 ‘최초’ 자리를 내준 두 번째 여성 기관사에 만족해야 했다.
박은경씨는 이후 짧은 기관사 생활을 접고 2000년 차량검수분야로 자리를 옮겼다. 역시 여성이 일하기에는 쉽지 않은 분야다. 하지만 당시에는 남편과 아이를 생각해 한 곳에 머물면서 일할 수 있는 안정적인 부서를 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까지 그녀는 학교를 여러 차례 옮겨 다닌 것 말고도 여승무원, 기관사 등 근무시간이 불규칙하고 먼 거리를 다녀야 하는 분야에서 일했다. 한 가정의 아내로, 엄마로 살아야 할 책임감이 그녀를 잠시 한 곳에 머물게 했다.

◆ 대륙 진출의 꿈을 가슴에 품다 = 하지만 안정된 생활도 잠시. 가슴에 품고 있던 꿈은 그렇게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시흥차량사무소에 근무할 당시 러시아 시베리아교통대학교 방문단이 방문한 일이 있었다. 당시 고려인 통역이 따라왔는데 철도와 관련된 전문용어를 몰라 애를 먹는 광경을 목격했다. 마침 당시 철도대학 시절 지도교수가 남긴 “대륙을 꿈꾸라”는 말에 매료된 탓도 있었다. 그녀는 마침내 ‘러시아 유학’을 결심하게 된다.
당시 큰 아이가 네 살이었다. 주변의 만류도 많았고, 현실적인 고민도 컸다. 주변에서는 ‘독하다’는 비난 아닌 비난도 들어야했다. 하지만 대륙진출에 대한 꿈을 접을 수는 없었다.
결국 그녀는 철도 관련 러시아 최고 명문이라는 ‘러시아 철도대학’으로 떠났다. 이미 재직 중에 인하대 교통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그녀는 이번에는 러시아 철도대학에서 ‘철도물류’ 분야 박사학위에 도전했다. 당시로서는 사람들의 관심이 크지 않았던 터라 새로운 분야에 대한 개척이라는 나름의 사명도 있었다.
그렇게 러시아에서 5년을 보냈다. 남편은 한국에 남겨둔 채 네 살배기 어린 딸과 함께 떠난 유학길이 편했을 리 없다. 미리 배운 러시아어도 그리 유창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러시아 유학생활 5년은 의도했건, 아니면 운이 좋았건 러시아 철도의 상당한 인맥을 얻었다. 딸을 돌봐주던 보모까지도 전 모스크바 철도대학 총장을 지낸 분의 딸이었다. 지금도 그 때의 인간관계가 한국과 러시아 간 철도 교류에서 감초 역할을 하곤 한다.

◆ 철도 아는 러시아어 통역인 ‘박은경’ = 지난달 180여명의 철도인들이 12박13일을 함께한 시베리아횡단철도 탐방에서 그녀의 진가가 발휘됐다.
우선 참가 인원이 많아 전세열차가 필요했지만 계약 과정이 순탄치 않았다. 일정이 촉박한 탓에 출국 하루 전에야 겨우 전세열차 계약이 이뤄졌을 정도다. 이 과정에서 한국철도공사 허준영 사장과 러시아 철도공사 야쿠닌 사장의 친분이 큰 도움이 됐다. 우선 양쪽 사장 사이에 ‘원만한 협조’ 약속이 있었던 터라 박은경씨는 러시아를 상대로 ‘큰 소리(?)’를 쳐가며 계약을 이끌었다. 마침 관련 러시아 책임자 중 한 사람이 그녀의 모스크바철도대학 동문이었던 것도 큰 도움이 됐다.
그녀는 또한 러시아 일정 내내 다른 통역들이 할 수 없는 일들을 해냈다. 아무리 러시아어에 유창한 전문 통역인이라도 철도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으면 통역이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이번처럼 국내 철도인들이 대거 참여한 행사에서는 더욱 그녀의 진가가 돋보였다. 유창한 러시아어 실력 이면에 철도지식과 러시아 철도조직 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있어서 가능한 일이다.
이 같은 사례는 그 전에도 여러 차례 있었다. 그 때마다 우리나라는 물론 러시아 철도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 남편의 절대적 신뢰로 가능했던 꿈 = 그녀의 숱한 도전 앞에는 늘 현실의 벽이 있었다. 하지만 그 때마나 그녀는 크게 주저하지 않고 꿈을 향해 달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을 홀로 둔 채 어린 아이만 대리고 떠난 러시아 유학을 결정할 때는 결코 쉽지 않았다. 기간도 5년이었으니 주변 사람들의 동의를 구하기가 어려웠다. 생활비나 학비 부담도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그녀가 고심하고 있을 때 남편은 ‘절대적인 신뢰’를 보내줬다. 같은 철도인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이해’였겠지만, 그래도 남편은 한 마디 불평도 없이 그녀의 꿈에 동참했다. 그녀의 남편은 현재 KTX 여객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아내와 아이가 러시아로 떠난 5년 동안 남편이 남들 숙직까지 대신 서 가며 억척스럽게 일했다더군요. 남편의 절대적인 신뢰 덕분에 지금도 제가 세상 앞에 당당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자녀들에 대한 걱정도 그녀 앞에 놓인 벽이었다. 둘째는 이제 겨우 두 살이지만, 큰 아이는 열한 살이다. 러시아로 떠날 때 겨우 네 살이었다. 함께 유학을 떠난 덕분에 러시아어를 유창하게 하지만, 귀국 후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고생을 했다. 결국 큰 아이는 다시 아일랜드로 유학길에 올랐다. 중학교도 미국이나 캐나다로 보낼 생각이다.
“내 꿈 때문에 딸아이가 고생하는 것 같아 늘 마음이 아파요. 하지만 다행히 외국 생활에 잘 적응해 줘 고맙죠. 제가 대학만 대여섯 곳을 옮겨 다녔듯 제 딸 역시 아직 어리지만 자기 나름의 꿈을 꿀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 간절합니다.”
그녀의 바람처럼 그녀의 딸 역시 자신의 꿈을 위해 이미 자신만의 ‘도전 길’에 올랐는지도 모를 일이다.
김신일 기자 ddhn21@naeil.com

(사진설명) 박은경씨는 늘 환한 미소로 주위 사람들까지 즐겁게 한다. 사진은 지난 8월 시베리아횡단철도 답사 때 러시아에서 바이칼호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 사진 김신일 기자


철도대국 러시아 ‘아는 게 힘이다’

대륙철도 진출의 꿈은 비단 그녀만의 것이 아니다. 철도인 전체의, 아니 우리 국민 모두의 염원이기도 하다. 하지만 가진 꿈에 비해 준비는 너무 부족하다. 심지어는 러시아와 철도교류를 한다면서도 당장 어떤 분야에서 무엇을 해야 할 지조차 잘 모르고 있는 게 현실이다. 한마디로 정보와 전략의 부재다.
그런 면에서 박은경씨는 한국 철도의 ‘숨은 진주’다. 허준영 철도공사 사장도 “철도의 숨은 인재를 찾은 것 같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철도와 관련한 러시아와의 교류에서 지금까지 그녀의 역할은 그리 크지 않았다. 유학생활 5년 동안, 그리고 코레일연구원에서 대륙철도 관련 연구활동을 한 3년 동안 쌓아온 인맥과 노하우를 제대로 펼쳐보지도 못했다. 사실 그럴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탓이다.
물론 박은경 개인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생각보다 크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러시아 철도를 이해하려면, 먼저 그들을 알아야 한다. 또한 러시아 철도 전문가들을 키우려면 본이 될 만한 사례도 있어야 한다. 러시아가 이미 남·북한 철도에 관한 모든 것을 인지하고 이해타산을 정확하게 셈하게 있는 상황이라 더욱 절실하다.
박은경씨는 “러시아에 대한 정보와 인맥은 꾸준히 관리해야 유지할 수 있는 것들이지만 당장은 그럴 만한 사업이 없어 안타깝다”며 “우리가 정말 대륙철도 진출을 꿈꾼다면 지금이라도 러시아의 지역 전문가 양성에 나서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신일 기자 ddhn21@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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