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가장들의 취업살이

1년만에 12만명 중도탈락

지역내일 2009-09-17
인구 32만명 급증 ... ‘쉬었음’ 큰 폭 증가
임금피크제 다양한 업무 개발 등 대안마련 시급

#A공공기관에 근무하는 김 모 부장은 만 59세다. 부하직원이 없는 행정부장이다. 임금피크제 마무리 해에 들어가 있다. 얼마 지나 만 60세가 되면 퇴직해야 한다. 근무처는 수도권. 가끔 후배를 보러 서울로 오지만 오래 있지는 못한다. 여러 사람들과 마주치면 왠지 손발이 오그라드는 것 같기 때문이다.
50대 후반. 앞으로 한참을 더 일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꿔다 놓은 보릿자루마냥 자리나 차지하고 있다는 자괴감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집처럼 여기며 청춘을 보낸 직장에서 이젠 나가라고 재촉하는 게 여간 어색한 게 아니다. 식구 같았던 직원들도 눈치를 주는 것 같아 말 한마디 붙이기도 머뭇거리게 된다.
이런 하소연을 친구나 동료에게 하기 어렵다. “더 일하고 싶다”는 오랜만에 만난 후배들에게 술김에 털어놓은 ‘말년’의 푸념일 뿐이다.
결론은 “그래도 나는 행복하다”. 50대 후반에도 출근할 수 있다는 데에 감사해야 할 일이라는 것이다.

#50대 초반의 모 기업체 박 모 부장은 요즘 퇴직 후를 고민하고 있다. 밀고 오는 후배들을 보고 이사자리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하는 동료들과 부대끼다보면 오래 버틸 자신이 없어지기 일쑤다. 아직 대학을 졸업하지 못하고 취업도 힘들다는데 직장에서 손을 놓게 되면 어쩌나하며 “좀 비굴해도 남아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힘빠진 결론에 ‘또’ 도달하게 된다. 벌어놓은 노후자금도 변변치 않고 그만두고 해볼만한 기술이나 일은 더더욱 별볼일 없다. 가게라도 하나 차려볼만도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성공담보다는 실패담이 절대다수다. 박 부장은 오랫동안 일하고 싶지만 상황은 그리 녹록치 않다.

50대들의 공통된 고민들이다. 노령화되는 데도 불구하고 퇴직시점은 갈수록 당겨지는 분위기다. 50대 인구들이 빠르게 늘면서 50대의 살아남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일하는 50대’들이 제한된 일자리를 지키기에 여념이 없다. 잔뼈가 굵고 일에 대한 애착이 많은 50대는 매우 성공적으로 일자리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좀더 좋은 일자리, 의미있는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여론도 높다. 고령화에 맞는 인력구조로 개선해야 한다는 얘기다.

◆빠르게 느는 50대, 줄어드는 20~30대 = 40대이후의 인구는 늘고 있지만 20~30대는 큰 폭으로 줄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8월 50대 인구는 전년 동기에 비해 32만2000명이나 증가했다. 증가율이 5.3%에 달한다. 50~54세가 18만9000명, 55~59세가 13만3000명 늘었다.
60대~64세는 8만5000명 늘면서 4.2%의 증가율을 보였다. 40대도 증가규모는 4만5000명이었다. 50대 인구가 폭발적으로 확대되는 모습이다.
반면 20대는 1.4%인 9만2000명 줄었고 30대는 0.8%인 6만9000명 감소했다.
2000년에 3618만명이었던 15세이상 인구가 2008년엔 3959만명으로 늘었다. 10대(376만명→323만명), 20대(747만명→658만명), 30대(846만명→824만명)가 줄었다. 40대(690만명→835만명) 50대(430만명→609만명) 60대이상(523만명→708만명)의 증가폭이 눈에 띄었다. 특히 50대는 179만명이나 증가했다. 40대 145만명보다 증가폭이 컸다.

◆겉으로는 일자리 증가 = 8월 50대 취업자수가 지난해 같은 시기에 비해 20만1000명 증가했다. 전체 취업자의 19.2%다. 1년전에 비해 0.9%p나 확대됐다.
그러나 50대 인구가 32만2000명 늘었기 때문에 12만1000명은 60대로 편입됐거나 실업자로 전락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부는 경제활동을 포기했을 수도 있다. 50대 실업자는 11만8000명으로 1년전보다 2만8000명 늘었다. 증가율이 31.7%였다.
비경제활동인구 중에선 아무 일 없이 ‘쉰’ 50대는 33만6000명이었다. 1년만에 3만명, 9.8% 증가했다. 연로(162만9000명) 심신장애(46만9000명)로 일을 포기한 사람도 각각 11만명, 2만9000명 늘어 50대의 이동을 예상케 했다.
자녀 졸업과 취업, 결혼을 늦추는 풍토가 50대 가장을 더욱 힘들게 만들고 있다. 급증하는 50대 인구로 사내경쟁이 치열해졌을 뿐만 아니라 재취업도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눈높이를 낮춰도 갈 수 있는 곳이 많지 않다. 끝까지 버티거나 눈높이를 더 많이 낮추는 수밖에 없다.
수명이 빠르게 늘면서 급증하는 50대 인구를 받아줄 일자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모 대기업 관계자는 “평상시엔 50대 중반까지라도 일을 할 수 있으면 행복하다고 생각하지만 50대 인력을 그냥 내보낸다는 게 사회적으로 너무 손실 아닌가 생각한다”며 “이들의 노하우를 활용하고 일을 할 수 있는 풍토와 여건을 만드는 게 매우 중요한 숙제”라고 말했다. 열심히 일하는 것마저 눈치보는 ‘가늘고 긴’ 50대보다는 전문 노하우를 쏟아낼 수 있는 ‘굵고 긴’ 50대를 만드는 게 과제라는 얘기다.
모 공공기관 인사부 관계자는 “임금피크제를 실시해도 여기에 들어올 때까지 남아있는 사람이 별로 없고 최근 좀 늘고 있지만 줄만한 업무를 개발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고 토로했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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