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섭(칼럼니스트)
일본문화의 원류를 파헤친 ‘일본사회 일본문화’
이토 아비토 지음/ 임경택 옮김/ 도서출판 소와당/ 1만 8000원
북쪽 오호츠크 해안에 얼음 덩어리가 떠다니는 겨울철에도 남쪽의 태평양 제도 일대에는 산호초 사이로 열대어가 헤엄쳐 다니는 나라가 일본이다. 높은 산맥으로 가로막힌 혼슈 서쪽 지역에서 눈이 2m나 높게 쌓이는 동안에도 관동지방에서는 건조한 계절풍으로 오히려 화재 예방책이 논의되곤 한다.
이처럼 다양한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일본인들의 문화적 특질을 한마디로 간단히 정리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람들의 생활양식이나 사고방식이 기후와 지리적 여건에 밀접하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흔히 거론되는 사무라이 기질도 서로 깍듯이 예의를 지키면서도 어느 한쪽이 피를 흘리고 쓰러져야만 칼을 거둘 정도로 극단적인 양상을 지닌다. 때로는 겉과 속이 다르다며 혼네(本音)와 다테마에(建前)를 얘기하기도 하지만 그것도 어느 일면에 대한 평가다.
미국의 인류학자인 루스 베네딕트가 ’국화와 칼‘이라는 저서를 통해 일본인의 예술적 소양과 예의범절 및 무(武)에 대한 숭상의식을 중요한 특징으로 지적했으나 역시 설명이 충분하지는 않다. 우리가 일본을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 부르는 것도 역사.정치적인 이해관계를 떠나서도 쉽게 간파할 수 없는 문화적 속성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도쿄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인 이토 아비토(伊藤亞人)가 써낸 ‘일본 사회, 일본 문화’는 일본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기초적인 실마리를 제시한다. 그동안 현장답사를 통해 두루 습득한 몽골과 중국에 관한 연구의 비교로 인해 더욱 설득력을 지닌다.
한국에서의 연구 업적도 상당하다. 특히 전남 진도를 대상으로 오랫동안 답사연구를 진행했는데, 스스로 진도를 ‘제2의 고향’이라 부를 정도다. 지난 2003년에는 외국인으로는 드물게 우리 정부로부터 문화훈장을 받기도 했다. 이 책의 번역은 도쿄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전북대에 재직중인 임경택 교수가 맡았다.
일본 문화현상을 바라보는 저자의 결론은 의외로 간단명료하다. 일본이 과거 중화문명의 세계관을 제대로 수용하지 못했으며 이로써 지금까지도 토착적인 신앙에 기반을 둔 민속문화가 생활의 준거틀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리적으로 동아시아 대륙과 떨어져 있었으므로 문화도 주변에서 맴돌 수밖에 없었다는 분석이다.
불교만 해도 언어적 논리에 따라 교의를 받아들였다기보다 다도(茶道)나 꽃꽂이 같은 물적 표상이나 실천을 매개로 감각적이며 즉물적으로 스며들었다는 얘기다. 이렇듯 불교가 제 모습에서 벗어난 토착 종교로 변모한데다, 기독교도 100여년 간에 걸친 선교활동에도 불구하고 개종자가 그렇게 늘어나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유교의 정신세계를 제대로 수용한 것도 역시 아니다.
결정적인 요인은 모든 분야에서 논리성과 체계성을 은근히 거부하는 몸에 밴 습성 때문이다. 심지어 일본사회에서는 언어적 논리에 능란할수록 다른 사람을 현혹시킬지도 모른다는 경계의 눈초리를 받기 십상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정연한 논리보다는 다원적이며 종합적인 사고가 존중받는 풍토다.
일본이 메이지(明治) 이래 서구 문물을 적극 받아들였으면서도 여전히 전통사회의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이를테면, 섬나라라는 주변적 위치에 언어적 논리보다 즉물적 감각에 더 의존하려는 습성이 일본 문화를 좌우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이에(家)’다. 우리말의 ‘집’이나 ‘가족’, 중국어의 ‘지에(家)’, 또는 영어의 ‘family''와도 미묘한 차이가 있기 때문에 저자는 굳이 ’이에‘라는 표현을 고집한다. 생산.소비 활동을 포함해 지역사회의 기본적인 구성단위로 간주됐으며 의식주와 노후 봉양까지 일상생활을 공유하는 터전이라는 점에서는 우리의 가족관계와 비슷하다.
그러나 가내 상점의 경우 혈연관계가 아닌 외부인까지도 오래 동거하여 신뢰도가 높아지면 친족 이상의 일원으로 간주한다는 점이 다르다. 일본 TV드라마에 곧잘 등장하는 오랜 전통의 상가나 요릿집, 여관 등 시니세(老舖)의 가업전수 얘기들이 바로 이러하다.
반면 실제로 핏줄을 나눈 가족관계라도 후계자로 지목된 경우를 제외하면 집에서 떨어져 나가 별도의 ‘이에’를 창설하든가, 아니면 다른 ‘이에’에 몸을 의탁할 수밖에 없다. 이런 경우 본래 속했던 ‘이에’에서의 발언권을 상실하는 것은 물론이다. 가족이라면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위치에 걸맞는 발언권을 인정받는 우리와는 사정이 딴판이다.
상점의 이름도 ‘이에’의 고유 명칭을 사용하게 되며 특정인을 가리킬 때도 개인의 이름보다는 ‘이에’의 이름을 써서 ‘OO네 큰아들’, ‘OO네 며느리’ 등으로 부르는 게 보통이다. 개인의 개성이나 실력보다는 그가 속한 ‘이에’를 준거로 평가한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이나 중국과 달리 부계(父系) 계통에 기초한 계보적인 조상관이 발달하지 못했다. 조상에 관한 기록이 전해지는 것은 황실이나 귀족, 또는 일부 무가(武家) 정도에 한정되어 있다. 그나마도 직계의 계승 라인을 보여주는 것으로 직계에서 갈라진 방계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수준에서 머무는 게 일반적이다.
주변 물건에 대한 인식도 독특한 편이다. 민간신앙에서는 자연계의 나무와 바위, 동물에도 나름대로의 영적인 주체를 상정해 왔다. 풀꽃을 단순한 장식물로 여기지 않기 때문에 서양 사회에서처럼 소득이 늘어난다고 덩달아 꽃의 소비 확대를 바라기 어렵다.
특히 집안에서 오랫동안 사용해 온 빗자루와 짚신, 부채 등에는 무언가 영적인 것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다. 부녀자들이 바느질하다가 부러진 바늘을 그대로 보관하고 있다가 한꺼번에 위로의 공양을 올리는 것이 그러한 사례다. 붓이나 식칼, 젓가락에 대해서도 비슷한 의식이 이뤄지는데 신사나 절의 경내에 바늘이나 붓, 부채 등의 무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저자는 재일 조선인에 대해서도 일본 사회로의 동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어 재일교포라는 범주 자체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고 진단한다. 민족에 대한 귀속의식, 혈연관계, 언어생활 등에서 세대에 따른 차이가 크고 중층적이며 다의적인 구조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젊은이들의 결혼문제만 하더라도 의식적으로 혈통을 강조하는 것이 오히려 곤란한 상황을 초래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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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문화의 원류를 파헤친 ‘일본사회 일본문화’
이토 아비토 지음/ 임경택 옮김/ 도서출판 소와당/ 1만 8000원
북쪽 오호츠크 해안에 얼음 덩어리가 떠다니는 겨울철에도 남쪽의 태평양 제도 일대에는 산호초 사이로 열대어가 헤엄쳐 다니는 나라가 일본이다. 높은 산맥으로 가로막힌 혼슈 서쪽 지역에서 눈이 2m나 높게 쌓이는 동안에도 관동지방에서는 건조한 계절풍으로 오히려 화재 예방책이 논의되곤 한다.
이처럼 다양한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일본인들의 문화적 특질을 한마디로 간단히 정리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람들의 생활양식이나 사고방식이 기후와 지리적 여건에 밀접하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흔히 거론되는 사무라이 기질도 서로 깍듯이 예의를 지키면서도 어느 한쪽이 피를 흘리고 쓰러져야만 칼을 거둘 정도로 극단적인 양상을 지닌다. 때로는 겉과 속이 다르다며 혼네(本音)와 다테마에(建前)를 얘기하기도 하지만 그것도 어느 일면에 대한 평가다.
미국의 인류학자인 루스 베네딕트가 ’국화와 칼‘이라는 저서를 통해 일본인의 예술적 소양과 예의범절 및 무(武)에 대한 숭상의식을 중요한 특징으로 지적했으나 역시 설명이 충분하지는 않다. 우리가 일본을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 부르는 것도 역사.정치적인 이해관계를 떠나서도 쉽게 간파할 수 없는 문화적 속성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도쿄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인 이토 아비토(伊藤亞人)가 써낸 ‘일본 사회, 일본 문화’는 일본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기초적인 실마리를 제시한다. 그동안 현장답사를 통해 두루 습득한 몽골과 중국에 관한 연구의 비교로 인해 더욱 설득력을 지닌다.
한국에서의 연구 업적도 상당하다. 특히 전남 진도를 대상으로 오랫동안 답사연구를 진행했는데, 스스로 진도를 ‘제2의 고향’이라 부를 정도다. 지난 2003년에는 외국인으로는 드물게 우리 정부로부터 문화훈장을 받기도 했다. 이 책의 번역은 도쿄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전북대에 재직중인 임경택 교수가 맡았다.
일본 문화현상을 바라보는 저자의 결론은 의외로 간단명료하다. 일본이 과거 중화문명의 세계관을 제대로 수용하지 못했으며 이로써 지금까지도 토착적인 신앙에 기반을 둔 민속문화가 생활의 준거틀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리적으로 동아시아 대륙과 떨어져 있었으므로 문화도 주변에서 맴돌 수밖에 없었다는 분석이다.
불교만 해도 언어적 논리에 따라 교의를 받아들였다기보다 다도(茶道)나 꽃꽂이 같은 물적 표상이나 실천을 매개로 감각적이며 즉물적으로 스며들었다는 얘기다. 이렇듯 불교가 제 모습에서 벗어난 토착 종교로 변모한데다, 기독교도 100여년 간에 걸친 선교활동에도 불구하고 개종자가 그렇게 늘어나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유교의 정신세계를 제대로 수용한 것도 역시 아니다.
결정적인 요인은 모든 분야에서 논리성과 체계성을 은근히 거부하는 몸에 밴 습성 때문이다. 심지어 일본사회에서는 언어적 논리에 능란할수록 다른 사람을 현혹시킬지도 모른다는 경계의 눈초리를 받기 십상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정연한 논리보다는 다원적이며 종합적인 사고가 존중받는 풍토다.
일본이 메이지(明治) 이래 서구 문물을 적극 받아들였으면서도 여전히 전통사회의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이를테면, 섬나라라는 주변적 위치에 언어적 논리보다 즉물적 감각에 더 의존하려는 습성이 일본 문화를 좌우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이에(家)’다. 우리말의 ‘집’이나 ‘가족’, 중국어의 ‘지에(家)’, 또는 영어의 ‘family''와도 미묘한 차이가 있기 때문에 저자는 굳이 ’이에‘라는 표현을 고집한다. 생산.소비 활동을 포함해 지역사회의 기본적인 구성단위로 간주됐으며 의식주와 노후 봉양까지 일상생활을 공유하는 터전이라는 점에서는 우리의 가족관계와 비슷하다.
그러나 가내 상점의 경우 혈연관계가 아닌 외부인까지도 오래 동거하여 신뢰도가 높아지면 친족 이상의 일원으로 간주한다는 점이 다르다. 일본 TV드라마에 곧잘 등장하는 오랜 전통의 상가나 요릿집, 여관 등 시니세(老舖)의 가업전수 얘기들이 바로 이러하다.
반면 실제로 핏줄을 나눈 가족관계라도 후계자로 지목된 경우를 제외하면 집에서 떨어져 나가 별도의 ‘이에’를 창설하든가, 아니면 다른 ‘이에’에 몸을 의탁할 수밖에 없다. 이런 경우 본래 속했던 ‘이에’에서의 발언권을 상실하는 것은 물론이다. 가족이라면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위치에 걸맞는 발언권을 인정받는 우리와는 사정이 딴판이다.
상점의 이름도 ‘이에’의 고유 명칭을 사용하게 되며 특정인을 가리킬 때도 개인의 이름보다는 ‘이에’의 이름을 써서 ‘OO네 큰아들’, ‘OO네 며느리’ 등으로 부르는 게 보통이다. 개인의 개성이나 실력보다는 그가 속한 ‘이에’를 준거로 평가한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이나 중국과 달리 부계(父系) 계통에 기초한 계보적인 조상관이 발달하지 못했다. 조상에 관한 기록이 전해지는 것은 황실이나 귀족, 또는 일부 무가(武家) 정도에 한정되어 있다. 그나마도 직계의 계승 라인을 보여주는 것으로 직계에서 갈라진 방계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수준에서 머무는 게 일반적이다.
주변 물건에 대한 인식도 독특한 편이다. 민간신앙에서는 자연계의 나무와 바위, 동물에도 나름대로의 영적인 주체를 상정해 왔다. 풀꽃을 단순한 장식물로 여기지 않기 때문에 서양 사회에서처럼 소득이 늘어난다고 덩달아 꽃의 소비 확대를 바라기 어렵다.
특히 집안에서 오랫동안 사용해 온 빗자루와 짚신, 부채 등에는 무언가 영적인 것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다. 부녀자들이 바느질하다가 부러진 바늘을 그대로 보관하고 있다가 한꺼번에 위로의 공양을 올리는 것이 그러한 사례다. 붓이나 식칼, 젓가락에 대해서도 비슷한 의식이 이뤄지는데 신사나 절의 경내에 바늘이나 붓, 부채 등의 무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저자는 재일 조선인에 대해서도 일본 사회로의 동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어 재일교포라는 범주 자체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고 진단한다. 민족에 대한 귀속의식, 혈연관계, 언어생활 등에서 세대에 따른 차이가 크고 중층적이며 다의적인 구조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젊은이들의 결혼문제만 하더라도 의식적으로 혈통을 강조하는 것이 오히려 곤란한 상황을 초래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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