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가 들꽃처럼 만발하고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며, 통일의 희망이 무지개처럼 피어오르는 나라. 8월 18일, 향년 85세로 서거한 김대중 전 대통령이 꿈꾸던 세상이다. 서울광장 분향소를 찾아 민주주의의 징검다리를 놓은 그의 마지막 가는 길에 하얀 국화를 건넸다.
행동하는 양심, 그 삶을 추억하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입관식이 치러진 20일, 개학식을 마친 아들 송주(10)를 데리고 시청 앞 서울광장으로 향했다. 아침부터 굵은 빗방울이 쏟아진 궂은 날씨에도 분향소에는 근조 리본을 가슴에 단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분향 차례를 기다리며 아이와 함께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삶을 떠올렸다. “돌아가신 김대중 전 대통령은 봄이 온다는 믿음으로 겨울을 이겨낸 인동초처럼, 민주주의가 이뤄진다는 신념을 가지고 우리나라의 민주화에 앞장섰던 분이야” 하고 설명하자, 아들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민주주의와 인권, 평등과 평화…. 의미를 완전히 이해하기에는 아직 어린 나이지만, 인고의 세월을 거쳐 ‘국민의 정부’를 일궈낸 고인의 일생을 조금이라도 더 알려주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다.
아이 손을 잡고 나온 엄마들은 모두 같은 마음이었다. 초등 4학년 아들(11)과 함께 나온 이현경(38·서울 마포구 합정동)씨는 “어려서부터 김대중 전 대통령을 존경했다. 아이가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고 나라의 통일을 이루기 위해 애쓰신 그분을 오래 기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분향소를 찾았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중학교 3학년 아들(16)과 나란히 추모 대열에 선 김정미(40·인천 서구 불로동)씨는 “뉴스에서 서거 소식을 접하고 특별 편집된 추모 방송을 봤다. 5·18 민주화운동으로 목숨을 잃은 광주 시민들의 묘지 앞에서 통곡하던 김 전 대통령의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정말 아팠다. 아들과 함께 역사의 한순간을 가슴에 새기기 위해 왔다”고 말했다.
화해와 용서의 뜻 이어갔으면
국화를 들고 영정 사진 앞에 서니 ‘우리 사회의 큰 어른이 떠나셨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헌화와 묵념의 시간. 눈을 감고 애도를 표한 송주는 “노벨평화상을 받은 김대중 대통령처럼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고 약속했단다.
분향을 마치고 눈물 범벅이 된 이들도 적지 않았다. 초등 4학년 박효정(11)양은 “계속 아프시다가 병원에서 돌아가셨다는 말을 듣고 너무 슬펐다. 하늘나라에 가서도 우리를 지켜주셨으면 좋겠다. 대통령 할아버지를 오래오래 기억할 것”이라며 한동안 훌쩍였다. 서울 등대지역아동센터의 초등학생 10명과 함께 조문을 온 최정심(38) 교사는 “김대중 전 대통령은 고난을 이겨낸 희망의 메신저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있는 공부방 아이들이 김 전 대통령처럼 희망을 잃지 않고 꿈을 키워갔으면 한다”고 했다. 분향 첫날부터 하루도 조문을 거르지 않았다는 안동석(53·경기 고양시 행신동)씨는 “김 전 대통령의 바람처럼 국민이 살맛 나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조문객들은 분향소 곳곳에 마련된 방명록에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대통령 할아버지, 감사합니다’처럼 마음을 담은 추모 글귀를 쓰며 쉬 자리를 뜨지 못했다.
송주는 방명록에 ‘천국에서 편히 쉬세요’란 글을 남겼다. ‘일생 동안 저는 잠시도 쉴 새 없이 달려왔습니다. 이제 휴식이 필요합니다’라고 했던 퇴임사 문구처럼, 편안한 쉼을 얻으시길….
김혜원 리포터 pinepole@naver.com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행동하는 양심, 그 삶을 추억하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입관식이 치러진 20일, 개학식을 마친 아들 송주(10)를 데리고 시청 앞 서울광장으로 향했다. 아침부터 굵은 빗방울이 쏟아진 궂은 날씨에도 분향소에는 근조 리본을 가슴에 단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분향 차례를 기다리며 아이와 함께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삶을 떠올렸다. “돌아가신 김대중 전 대통령은 봄이 온다는 믿음으로 겨울을 이겨낸 인동초처럼, 민주주의가 이뤄진다는 신념을 가지고 우리나라의 민주화에 앞장섰던 분이야” 하고 설명하자, 아들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민주주의와 인권, 평등과 평화…. 의미를 완전히 이해하기에는 아직 어린 나이지만, 인고의 세월을 거쳐 ‘국민의 정부’를 일궈낸 고인의 일생을 조금이라도 더 알려주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다.
아이 손을 잡고 나온 엄마들은 모두 같은 마음이었다. 초등 4학년 아들(11)과 함께 나온 이현경(38·서울 마포구 합정동)씨는 “어려서부터 김대중 전 대통령을 존경했다. 아이가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고 나라의 통일을 이루기 위해 애쓰신 그분을 오래 기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분향소를 찾았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중학교 3학년 아들(16)과 나란히 추모 대열에 선 김정미(40·인천 서구 불로동)씨는 “뉴스에서 서거 소식을 접하고 특별 편집된 추모 방송을 봤다. 5·18 민주화운동으로 목숨을 잃은 광주 시민들의 묘지 앞에서 통곡하던 김 전 대통령의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정말 아팠다. 아들과 함께 역사의 한순간을 가슴에 새기기 위해 왔다”고 말했다.
화해와 용서의 뜻 이어갔으면
국화를 들고 영정 사진 앞에 서니 ‘우리 사회의 큰 어른이 떠나셨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헌화와 묵념의 시간. 눈을 감고 애도를 표한 송주는 “노벨평화상을 받은 김대중 대통령처럼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고 약속했단다.
분향을 마치고 눈물 범벅이 된 이들도 적지 않았다. 초등 4학년 박효정(11)양은 “계속 아프시다가 병원에서 돌아가셨다는 말을 듣고 너무 슬펐다. 하늘나라에 가서도 우리를 지켜주셨으면 좋겠다. 대통령 할아버지를 오래오래 기억할 것”이라며 한동안 훌쩍였다. 서울 등대지역아동센터의 초등학생 10명과 함께 조문을 온 최정심(38) 교사는 “김대중 전 대통령은 고난을 이겨낸 희망의 메신저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있는 공부방 아이들이 김 전 대통령처럼 희망을 잃지 않고 꿈을 키워갔으면 한다”고 했다. 분향 첫날부터 하루도 조문을 거르지 않았다는 안동석(53·경기 고양시 행신동)씨는 “김 전 대통령의 바람처럼 국민이 살맛 나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조문객들은 분향소 곳곳에 마련된 방명록에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대통령 할아버지, 감사합니다’처럼 마음을 담은 추모 글귀를 쓰며 쉬 자리를 뜨지 못했다.
송주는 방명록에 ‘천국에서 편히 쉬세요’란 글을 남겼다. ‘일생 동안 저는 잠시도 쉴 새 없이 달려왔습니다. 이제 휴식이 필요합니다’라고 했던 퇴임사 문구처럼, 편안한 쉼을 얻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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