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시의 어느 버스정류장. 버스가 도착하고 문이 열리자, 한 학생이 “아저씨, 이 버스 OO까지 가요?”라고 묻는다. 그런데 운전석에는 선그라스에, 정복을 입은 여자기사분이 앉아서 “학생, 이렇게 예쁜 아저씨 본 적 있어요?”라고 되묻는다. 순간 버스 안은 유쾌한 웃음바다가 된다. “누나, OO가요?”라고 묻는 학생에게는 “시력이 너무 좋으니 요금 내지 말라”는 특혜가 주어질지도 모른단다.
고양시에서 영등포로 나가는 버스노선에 이처럼 멋진 ‘我줌마’가 있다는 제보가 여러 채널을 통해 들려왔다. 어렵사리 약속을 잡아 만난 사람은 바로 명성운수 버스운전기사, 최순동(47)씨다.
자식들이 나를 지킨 것
“보시다시피 저는 예쁘지도 않고, 뭐 하나 내세울 게 없어요. 그저 먹고 살려고 열심히 운전하는 것 뿐이죠.” 처음 만나자마자 최순동씨는 자신이 인터뷰에 맞는 인물이 아니라고 꽤나 부담스러워 했다. 그러나 삶의 굽이굽이 이야기보따리와 버스기사로서 겪었던 일을 풀어놓으니, ‘我줌마’의 자부심이 넘쳐나는 사람이었다.
최씨는 올해로 9년째 운전을 하고 있다. 결혼 전 외국인 회사, 사무직 등 소위 말하는 좋은 직장에 다니며 도도하게(?) 살았는데, 아이가 생긴 후 직장을 그만 두게 되었다. 살기 흉흉했던 IMF 시절, 다시 아이를 둘러업고 직장을 구하러 나섰지만 최씨에게 돌아오는 일자리라곤 녹즙배달, 신문배달, 우유배달, 파출부, 홍보지 돌리는 일 등이었다.
“경력단절 여성에게는 말 그대로 돈도 안 되는 허드렛일 밖에 없더군요.” 결국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빌딩청소를 했는데, 청소 일보다 더 힘든 것은 ‘젊은 여자가 왜 저런 일을 해?’라는 따가운 시선이었다. 그래도 최씨는 자식들을 생각하면서 이를 악 물고 몸이 부서져라 일했다.
그러던 어느 날, 최씨는 버스에서 여자운전기사를 발견하고 ‘아~ 저거다’ 싶었다. 면허도 없던 그는 그 날로 ‘운전기사’를 목표로 잡고, 1종 면허를 따기 위해 우유배달, 신문배달, 녹즙배달을 하면서 운전연습을 했다. 그 당시 최씨는 “밤새 여기 저기 트럭을 긁고, 울며 불며 다녔다”고 회상한다.
그는 1년만에 대형면허를 취득하고 마을버스 회사에 취직을 했다. 첫 기름밥 세계는 너무나 열악했다. 5~6분 간격으로 배차를 해서 화장실 갈 시간도 없어, 결국 신장에 이상이 생겨 병원신세까지 지고 말았다. 그 때도 최씨는 “내가 여기서 못 버티면 내 아이들이 죽는다는 생각으로 버텼다”고 말한다.
“한강에 자살하려고 몇 번이나 갔다가 돌아왔어요. 내가 아이들을 지키려고 발버둥치며 살았지만, 실은 아이들이 저를 지킨 거예요. 지금도 아이들을 생각하면 안전운전을 위해 더 긴장하게 됩니다.” 그의 아들은 군복무중이고 딸은 고3이다.
최씨 아줌마의 버스는 인심을 싣고~
그는 마을버스에서 1년 정도 일하다가, 명성운수로 자리를 옮겨 큰 버스를 운전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행복한 직업이 또 있을까 싶어요. 큰 통유리를 통해 새벽의 장엄함부터 노을과 어둠이 깔리는 풍경을 매일 목격하잖아요. 가끔은 비도 퍼 붓고, 눈도 쏟아지고…. 어떤 영화보다도 멋있어요.”
그는 너무 힘든 세월을 살았기 때문에 “사고만 안 나면 버스만큼 쉬운 일이 없다”고 말한다. 이런 마음으로 손님들을 맞으니 저절로 반가움이 앞선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부모님 같고, 학생들은 자식같이 느껴진다.
그 친절함에 승객들이 인정으로 화답하는 것은 당연지사. 배추가 금값일 때, 농부 아저씨가 배추 3~4통을 들고 정류장에서 최씨의 버스를 무작정 기다렸다가 3일만에 만나 건네준 일도 있었다. 손 경례 인사를 잘 하는 최씨에게 시원한 주스를 꼬박꼬박 건네는 주차요원, 사과 2개를 꼭꼭 챙겨주는 과일노점상. 아침에 최씨의 차를 타고 밭일을 갔던 일단의 아줌마들이 저녁에 다시 그 차를 타고 인연이라며 한 보따리 주고 가는 시금치, “이거 졸릴 때 먹어~”하면서 입에 넣어주는 할머니들의 소중한 사탕…. 각박해진 세상에서 이런 인심을 만날 때면 빚 진 것 같고, 감사하고, 행복하단다. 너무 친절한 것도 병인지, 어떤 손님은 최씨를 보고 “운전도 부드럽고, 인사도 잘하는 걸 보니 초보인가 보다”고 넘겨짚기도 한다며 웃는다.
성별분업의 벽을 넘어~
물론 힘든 일도 많았다. 취객이 행패를 부릴 때면 여성이기 때문에 더 위험하다. 같은 운전기사끼리도 동료로 대접하지 않고, 성적 대상이나 편협한 의미의 아줌마로 보는 시각도 불편하고 불쾌하다.
언젠가 영등포에서 정류장이 아닌 도로에 승객들이 몰려 내려와 있어, 최씨는 버스 문을 열지 않았다. 정류장이 아닌 곳에서 문을 열면 벌금이 20만원이다. 승객들은 차문을 발로 찼고, 버스에 오르며 갖은 욕을 했고, 요금을 던지기도 했다. “거의 집단폭력 수준이었죠. 온 몸이 떨렸지만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여러분도 오늘 먹고 살려고 일했고, 나도 먹고 살려고 운전하고 있다. 내 차에 깔리고 싶은 사람 나오라’고 했어요. 헌데 아무도 안 나서대요? 그 날 그렇게 분노를 터뜨리지 않았으면 아마 큰 사고가 났을지 몰라요. 조용히 ‘갑시다, 기사양반~’하는 소리에 분을 삭이고 운전을 했는데, 손님들이 내릴 때는 ‘수고하세요, 화내서 죄송해요’라는 인사들을 남기더군요.”
그는 아직도 남녀 평등한 문화나 높은 시민의식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사실 강한 여자는 아니에요. 절박한 환경이 그렇게 단련시켰을 뿐이지요. 결국은 나 자신과의 싸움이더라고요. 언덕을 오를 때 고개가 엄청 높아 보이지만, 고개를 넘고 나면 별 거 아니고, 탄탄대로가 기다리고 있잖아요. 여성들이 자신을 극복하면서 하고 싶은 어느 분야 어디든 진취적으로 도전했으면 좋겠어요.”
남성중심 사업장인 운수회사에서 자신의 자리를 만들고, 시민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멋장이 我줌마, 최순동씨가 인터뷰를 마치며 한 약속이다. “모든 고양시민들은 쾌적하고 안전하게 버스를 탈 권리가 있어요. 그 권리를 지켜드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정경화 리포터 71khju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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