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년치 일기로 본 조선후기 무관의 일상>

지역내일 2009-08-06
문숙자 박사 ''노상추 일기'' 분석

(서울=연합뉴스) 김윤구 기자 = 열일곱살에 시작해 여든네살 생을 마감하기 이틀 전까지 일기를 쓴 사람이 있다.조선후기 삭주부사 등을 지낸 무관 노상추(盧尙樞.1746-1829)는 이 기나긴 68년간 일기를 쓰면서 그에다가 부모와 형제, 자식과 손자에 이르기까지 4대에 걸친 가족의 궤적을 담았다.얼마 전까지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일한 문숙자(43) 박사가 그의 일기를 소재로 조선후기 한 무관의 일상사를 분석한 단행본 ''68년의 나날들, 조선의 일상사''(너머북스 펴냄)''를 최근에 냈다.현대인의 일기는 사생활의 기록이지만 노상추의 일기는 가족의 대소사를 기록하는 일종의 가계(家系) 기록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경상도 선산의 안강노씨 집안에서 태어난 노상추가 일기를 쓰게 된 것도 그가 열일곱이던 1762년 아버지 노철의 명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 집안 일기 작성은 아버지의 몫이었다.그런 일기 쓰기를 자식한테 물려준다는 것은 곧 그 아들이 집안의 후계자가 됐음을 선언하는 일이었다.이렇게 해서 시작한 노상추 일기는 일부가 망실(亡失)되는 바람에 현재 남은 분량은 53년치다. 그는 매년 일기의 표지에 ''계미일기(癸未日記)'' 등 그해의 간지(干支)를 써서 제목을 쓰고 이를 책으로 묶었다.
매일 쓴 것은 아니고 며칠 또는 한 달에 한 번 지난 일을 정리하며 기록해 두기도 했다.
80세를 넘겨 산 그의 일기에는 수많은 사람이 등장한다. 자신과 가족의 하루 일과를 충실하게 기록하면서도 가족의 죽음에는 회한을 쏟아낸다.
친척 장례식에 다녀와서 장례식 일체를 상세히 기록하고 훗날 족친들에게 귀감이 될 것이므로 기록한다고 한 것은 친족간에 이 일기가 읽히기를 바랐음을 암시한다. 그 역시 조상의 일기를 가계운영의 모범으로 참고하려 했다.
일기는 그의 가계를 밝히는 데도 족보나 호적보다 상세한 자료를 제공한다. 노상추의 자녀로 족보에 등재된 이는 4명뿐이지만 일기에는 족보에 오르지 못한 서자(庶子)까지 12명이 나온다.
무미건조한 기록이 대부분이며 속마음을 잘 드러내지는 않지만, 조카가 병을 앓을 때 잠 못 이루며 걱정하는 심정을 표현하거나 기생을 연모하는 마음을 일기에 고백하고 "장부가 색(色)에 뜻을 두지 않는다는 것은 다 거짓"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출생, 결혼, 사망 등 가족의 희로애락, 과거합격과 관직생활, 종족과 지역공동체운영 등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기술한다.
저자는 맺음말을 통해 노상추와 같은 조선시대 지배신분층의 일원도 익명성 안에 묻히고 만다면서 민중의 치열한 삶이 녹아 역사를 만들어 낸다고 말했다.
"그가 남긴 일기는 자신과 가족의 역사를 복원하는 차원을 넘어 18세기 후반, 그리고 19세기 전반의 조선을 살다 간 수많은 익명의 화자를 대변하는 일생이며 역사다. 그런 점에서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 모두는 21세기 역사의 주인공이다."

kimyg@yna.co.kr(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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