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페 사랑의 결실
문창재 (본지 객원 논설위원)
재미동포 강영우(65) 박사가 또 화제에 올랐다. 베스트셀러 저자이고, 6개월 전까지 미국 부시 행정부 고위관료였던 그가 유명한 것은 시각장애를 극복한 아메리칸 드림의 표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의 아들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화제의 중심에 끼어들어 더 관심을 끌었다. 부자가 백악관 고위 관료가 된 사연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오바마 대통령 입법 특별보좌관 크리스토퍼 강(한국명 강진영)은 “제 사무실 구경하러 오시지 않겠어요” 하고 아버지를 백악관에 초청했다. 약속 날인 7월 24일 오후 가벼운 마음으로 백악관에 들어간 강 박사는 놀랐다. 오바마 대통령과 에릭 홀더 법무장관, 시각장애인인 패터슨 뉴욕 주 지사 등 명사들을 줄줄이 만나게 된 것이다.
알고 보니 백악관이 주최한 장애인 민권법 서명 19주년 기념행사에 초청된 것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강 박사에게 “만나뵙게 되어 영광”이라고 인사하면서 “강 보좌관도 일을 잘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남편의 눈과 손발이었던 37년
시각장애를 극복하고 크게 성공한 강 박사와 아들의 입신은 정말 흐뭇한 이야기다. 아무리 유명해도 화제란 한 번 흘러가버리면 잊어지는 속성이 있다. 그렇지만 그런 남편과 아들을 만들어낸 석은옥 여사의 초인적인 의지와 열정은 잊기 어려운 감동이다. 신문사 선배가 운영하는 인터넷 글방에서 읽은 석 여사의 고백록을 혼자 읽기 아까워 감동을 함께 나누고 싶다.
석 여사는 숙명여대 영문과 1학년 때인 1960년대 초 중학생이던 강 박사를 처음 만났다. 걸스카우트 신입회원으로서 장애인들을 돕는 봉사 프로그램에 나갔다가 만난 소년은 가난과 실명으로 구겨진 얼굴이 아니었다. 열네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열다섯에 축구공을 얼굴에 맞아 실명을 한 일로 어머니마저 잃은 강 소년 3남매는 뿔뿔이 흩어졌다. 강 소년은 장애자 재활원으로 들어가 학교가 5년이나 늦은 상태였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여대생은 장애인 소년의 지팡이 노릇을 자청했다. 자연스럽게 누나 동생이 되었다. 누나의 헌신적인 보살핌으로 소년은 연세대 교육학과에 들어가고, 누나는 졸업 후 미국유학을 떠났다. 그 후로 너무도 아름다운 아가페 사랑이 6년이나 계속되었다.
돌아와서 누나는 동생의 청혼을 받았다. 알고 보니 동생 나이는 한살 아래였다. 외동딸을 둔 부모는 물론, 친구 친척 모두 극구 말렸어도 여대생은 에로스 사랑을 받아들였다.
“대학생이던 그가 졸업하기까지 만3년이나 기다린 끝에 서른이 다 되어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친구들은 모두 판사 의사 약사 대기업 간부 부인이 되어 있을 때 연하인 맹인학사를 신랑으로 맞았지만, 어찌나 행복하고 감격스러웠는지…”
결혼 그 자체가 행복이었다는 젊은 부부는 함께 미국유학을 떠났다. 이때부터 부부가 겪은 고난은 일일이 소개할 지면이 없다. 낯선 땅에서 장학금 외에는 한푼의 수입도 없이 남편의 눈이 되고 손발이 되어야 했던 37년 세월을 어떻게 말로 다 하겠는가.
“남의 집에 얹혀살면서 매일 집주인 설거지를 해주고 아이들을 돌보는 식모살이를 하면서도, 식모살이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머지않아 박사가 될 남편을 내조한다고 생각하면 그런 기회를 준 하느님이 고마웠습니다. 오히려 아파트에서 살 때보다 행복했습니다.”
첫 시각장애인 박사가 되어 인디애나 주 정부에 취직이 된 뒤로도 석 여사는 남편의 운전사였다. 지금까지 33년 세월을 그렇게 살았다. “나는 그대의 지팡이, 그대는 나의 등대”라고 했다. 그런 고생과 노력 끝에 강 박사는 이름 앞에 ''''Honorable'''' 이라는 존칭이 붙는 연방정부 최고 공직자가 되었다. 대통령 직속 국가장애위원회 차관보가 된 것이다.
아가페 사랑의 결실은 대를 이어 영글었다. 듀크대학 병원 의사인 큰 아들과 오바마 대통령 보좌관인 작은 아들 내외가 모두 박사다.
‘나는 지팡이, 그대는 등대’
석 여사는 이겨내기 어려운 고통 속에서도 절대로 좌절하거나 울지 않았다고 말했다. “출세지향적인 가치관이 아니라, 성취지향적인 가치관을 갖고 있기 때문에 장애인으로서 넘어야 할 물리적, 심리적, 법적, 제도적 장벽을 넘을 때마다 오히려 성취감을 느꼈다”는 말에서 한국의 전통적인 부녀자 상이 떠오른다.
즐겁고 멋지고 편한 것만 추구하는 남녀평등의 시대에 고리타분한 생각이라고 손가락질당할 각오를 가지고 말한다면, 어머니 시대의 여인상이 그리워 더 감동을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리운 것일수록 말하고 싶은 것이 사람이다. 이 세상에서 찾아보기 쉽지 않은 아가페 사랑의 결실을 보면서, 부덕(婦德)이라는 말을 곱씹어 본다.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문창재 (본지 객원 논설위원)
재미동포 강영우(65) 박사가 또 화제에 올랐다. 베스트셀러 저자이고, 6개월 전까지 미국 부시 행정부 고위관료였던 그가 유명한 것은 시각장애를 극복한 아메리칸 드림의 표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의 아들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화제의 중심에 끼어들어 더 관심을 끌었다. 부자가 백악관 고위 관료가 된 사연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오바마 대통령 입법 특별보좌관 크리스토퍼 강(한국명 강진영)은 “제 사무실 구경하러 오시지 않겠어요” 하고 아버지를 백악관에 초청했다. 약속 날인 7월 24일 오후 가벼운 마음으로 백악관에 들어간 강 박사는 놀랐다. 오바마 대통령과 에릭 홀더 법무장관, 시각장애인인 패터슨 뉴욕 주 지사 등 명사들을 줄줄이 만나게 된 것이다.
알고 보니 백악관이 주최한 장애인 민권법 서명 19주년 기념행사에 초청된 것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강 박사에게 “만나뵙게 되어 영광”이라고 인사하면서 “강 보좌관도 일을 잘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남편의 눈과 손발이었던 37년
시각장애를 극복하고 크게 성공한 강 박사와 아들의 입신은 정말 흐뭇한 이야기다. 아무리 유명해도 화제란 한 번 흘러가버리면 잊어지는 속성이 있다. 그렇지만 그런 남편과 아들을 만들어낸 석은옥 여사의 초인적인 의지와 열정은 잊기 어려운 감동이다. 신문사 선배가 운영하는 인터넷 글방에서 읽은 석 여사의 고백록을 혼자 읽기 아까워 감동을 함께 나누고 싶다.
석 여사는 숙명여대 영문과 1학년 때인 1960년대 초 중학생이던 강 박사를 처음 만났다. 걸스카우트 신입회원으로서 장애인들을 돕는 봉사 프로그램에 나갔다가 만난 소년은 가난과 실명으로 구겨진 얼굴이 아니었다. 열네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열다섯에 축구공을 얼굴에 맞아 실명을 한 일로 어머니마저 잃은 강 소년 3남매는 뿔뿔이 흩어졌다. 강 소년은 장애자 재활원으로 들어가 학교가 5년이나 늦은 상태였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여대생은 장애인 소년의 지팡이 노릇을 자청했다. 자연스럽게 누나 동생이 되었다. 누나의 헌신적인 보살핌으로 소년은 연세대 교육학과에 들어가고, 누나는 졸업 후 미국유학을 떠났다. 그 후로 너무도 아름다운 아가페 사랑이 6년이나 계속되었다.
돌아와서 누나는 동생의 청혼을 받았다. 알고 보니 동생 나이는 한살 아래였다. 외동딸을 둔 부모는 물론, 친구 친척 모두 극구 말렸어도 여대생은 에로스 사랑을 받아들였다.
“대학생이던 그가 졸업하기까지 만3년이나 기다린 끝에 서른이 다 되어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친구들은 모두 판사 의사 약사 대기업 간부 부인이 되어 있을 때 연하인 맹인학사를 신랑으로 맞았지만, 어찌나 행복하고 감격스러웠는지…”
결혼 그 자체가 행복이었다는 젊은 부부는 함께 미국유학을 떠났다. 이때부터 부부가 겪은 고난은 일일이 소개할 지면이 없다. 낯선 땅에서 장학금 외에는 한푼의 수입도 없이 남편의 눈이 되고 손발이 되어야 했던 37년 세월을 어떻게 말로 다 하겠는가.
“남의 집에 얹혀살면서 매일 집주인 설거지를 해주고 아이들을 돌보는 식모살이를 하면서도, 식모살이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머지않아 박사가 될 남편을 내조한다고 생각하면 그런 기회를 준 하느님이 고마웠습니다. 오히려 아파트에서 살 때보다 행복했습니다.”
첫 시각장애인 박사가 되어 인디애나 주 정부에 취직이 된 뒤로도 석 여사는 남편의 운전사였다. 지금까지 33년 세월을 그렇게 살았다. “나는 그대의 지팡이, 그대는 나의 등대”라고 했다. 그런 고생과 노력 끝에 강 박사는 이름 앞에 ''''Honorable'''' 이라는 존칭이 붙는 연방정부 최고 공직자가 되었다. 대통령 직속 국가장애위원회 차관보가 된 것이다.
아가페 사랑의 결실은 대를 이어 영글었다. 듀크대학 병원 의사인 큰 아들과 오바마 대통령 보좌관인 작은 아들 내외가 모두 박사다.
‘나는 지팡이, 그대는 등대’
석 여사는 이겨내기 어려운 고통 속에서도 절대로 좌절하거나 울지 않았다고 말했다. “출세지향적인 가치관이 아니라, 성취지향적인 가치관을 갖고 있기 때문에 장애인으로서 넘어야 할 물리적, 심리적, 법적, 제도적 장벽을 넘을 때마다 오히려 성취감을 느꼈다”는 말에서 한국의 전통적인 부녀자 상이 떠오른다.
즐겁고 멋지고 편한 것만 추구하는 남녀평등의 시대에 고리타분한 생각이라고 손가락질당할 각오를 가지고 말한다면, 어머니 시대의 여인상이 그리워 더 감동을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리운 것일수록 말하고 싶은 것이 사람이다. 이 세상에서 찾아보기 쉽지 않은 아가페 사랑의 결실을 보면서, 부덕(婦德)이라는 말을 곱씹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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