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존엄성은 존중받을 권리와 가치를 가져
두 다리가 없는 그가 하루도 쉬지 않고 하는 일은 지체장애우와 지적장애우들의 다리가 되어주는 일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자신 있는 일이 운전이기 때문에 이 일을 하고 있는 것이라 망설임 없이 이야기 한다.
표정이 밝다. 얼굴에서, 눈빛에서 형형한 빛이 난다. 살아가는 삶에서 예전과는 다른 그 무엇을 발견하고 즐기고 있는 것이 눈에 확연히 보인다. “생각이 긍정적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사고를 당하기 전 ‘나 아니면 안 돼. 누구도 할 수 없어’에서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아주 작은 것, 주변의 사람들이 내 스승이다’로 생각이 바뀌면서 극단적이었던 삶이 행복한 일상으로 바뀌었다”고 고백한다.
자원봉사증이 색다른 느낌으로 읽혀진다. 몇 가지 봉사만으로도 지난 2008년 봉사시간이 200여 시간이 훌쩍 넘는다. 그는 작년에, 사랑의 열매에서 주는 광주전남지역 최우수 자원봉사자로 선정되었다.
죽을 수도 없어 결국 마음을 열어
2003년 12월 어느 날, 무의식 상태에서 4개월여를 중환자실에서 보내고 깨어난 후 그가 처음 들었던 이야기는 아내와 무단횡단을 하다 20대 초반이 운전하는 차에 사고를 당했다는 것과, 두 다리가 없어졌다는 얘기다.
“두 다리뿐 아니라, 비장까지 제거한 상태였다. 남의 도움을 받으며, 남에게 폐를 끼치면서 살고 싶지 않았다. 해야 할 마지막 일이 남아 있다면 스스로 죽는 일이라는 생각을 온종일 할 뿐이었다. 간병인에게 누워 있는 침대를 옥상으로 밀어달라고 간청하기도 했다.”
퇴원 후 7개월을 집 안에서만 보냈다. 해가 뜨는 것도, 지는 것도 의미가 없었다. 모든 것이 암울했고 완전하게 등을 돌린 세상만이 있었다. 때때로 누나들이 찾아와 자신들이 봉사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너는 밥도 손으로 떠먹을 수 있다’는 말을 할 때마다 울컥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몇 번의 자살 시도도 매번 실패했다. 아직은 세상이 나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함부로 죽을 수도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오히려 짧은 시간이었다. 결국은 죽지 말라는 메시지임을 알아차렸다.
마음을 열고 새로운 세상과 만나다
매주 찾아오던 방림동 원장 수녀님의 소개로 신부님께 세례도 받았다. 교리공부를 하고 세상을 향해 조금씩 눈을 떠가면서 그가 한 첫 번째 선택이다.
두 번째로 한 일은 봉선동에 소재한 장애인 자립센터인 ‘열린 케어’를 찾아간 일이다. 집 안에 칩거하며 반찬봉사를 받았던 그가 이제는 자신보다 더 장애가 심한 사람들을 향해 반찬 배달 봉사를 나선 것이다.
“세상을 향해 나와 보니 내가 겪고 있는 장애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밥도 먹을 수 없는 장애도 많았고, 말을 할 수도 들을 수도 없는 장애를 가진 많은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 요리 실습 시간이 끝난 후 나는 방바닥에 한 손으로 의지해 걸레질이라도 할 수 있었다.”
삶 자체에 대한 생각이 온전히 바뀌는 순간이었다고 그는 고백한다. 거기서 만나게 된 사람들뿐 아니라 이후에 만나는 장애우들에 대한 생각이 긍정적으로 바뀌어 지게 된 동기가 되었다. 장애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면서 비로소 장애가 된 자신을 이해하고 인정하게 되었다.
차량이동봉사로 단연 1위
다리가 없어 계단을 오를 수 없는 곳은 큰 아들이 도와준다. 아버지의 사고 후 급격하게 말 수가 줄었던 초등학교 아이는 이제는 자라 아버지의 발이 되어주는 가장 적극적인 친구가 되었다. 아버지와 함께하는 봉사를 하며 스스로 마음의 상처가 치유가 된 것이다.
그가 하는 봉사는 셀 수가 없다. 남구청에서 매달 1회 실시하는 암환자를 위한 진단, 치료, 투병까지를 이야기하는 ‘자조모임’의 차량봉사는 물론, 1달 2회 실시하는 약을 타거나 병원 진료, 운동보조 프로그램 진행자들인 지체부자유자와 지적 장애인들의 발도 되어준다. 사랑의 식당인 성요셉 식당에서 실시하는 매주 화요일 봉사에도 빠지지 않는다. 집을 나올 수 없는 65세 이상의 어르신들에게 도시락 배달을 해주는 일도 한다.
또 있다. 전남대학에서 운영 중인 자원봉사자 모임인 ‘인연 맺기’ 프로그램 진행시에는 해당 아동들을 어디가 되었든 원하는 장소로 태워다주고 태워오는 일, 두 달 1회인 저소득 가정에 쌀을 전달해주고, 격주 목요일에는 무료로 제공해주는 ‘형제반점’의 자장면도 배달해준다. 요즘에는 일이 하나 더 늘었다. 일촌공동체가 운영하는 지적장애우들의 등하교를 돕는 일이다.
“봉사는 내 생활, 도움을 주고 베푸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배우고 도움을 받는다. 사람들의 기도가 보이지 않은 힘이 되어 나를 지탱하게 해준다.”
문의 : 011-636-7287
범현이 리포터 baram8162@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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