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 경감 대책 안이 손바닥 뒤집듯 바뀌더니 결국 몇 가지 안건이 파격적으로 제시됐다. 핵심 골자로는 내신 축소와 학원 교습시간 제한이다. 이 안건은 학생·학부모·공교육·사교육 모두에게 파격적인 교육정책이다. 특히 이번에는 당·정·청이 머리를 맞대고 사교육의 상당 부분을 공교육으로 흡수시겠다는 전략을 세운 만큼 그 성공여부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하지만 학부모나 학원가에서는 이번 정책에 대해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조용히 정부의 분위기를 살피고 있는 입장이다. 잇따른 발표에 따른 광주시의 후속조치와 그 동향을 살펴봤다. 김영희 리포터 beauty02k@hanmail.net
내신축소, 입시제도 안바뀌면 의미 없어!
사교육을 조장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내신이라고 생각한 정부는 내신을 손보기 위해 필요 없는 부분을 과감히 없애겠다고 강행하고 있다. 먼저 외고와 과학고 등의 특목고 입시안부터 대폭 개편했다. 외고는 영어·국어, 과학고는 수학·과학만 내신에 반영하기로 했다. 그리고 중3학생들의 선수학습을 막기 위해 고1 내신을 입시에 반영하지 않기로 한데 의견을 모았다. 또 기존의 상대평가를 절대평가 시스템으로 변경하고 수능에서 탐구영역을 2과목으로 축소하고, 수능 횟수도 2~3차례로 확대한다는 방안 등을 주요 골자로 일단락됐다. 정부는 ‘입시 선진화’를 위해 연말까지 내신문제에 대한 시원한 답을 내놓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광주시의 입장은 담담한 분위기다. 고등학생의 경우 당장 입시안이 바뀌지 않기 때문에 발 등에 떨어진 수능에만 올인하고 있는 분위기다. 게다가 교육 정책이 한 달 사이 자주 바뀐 바람에 신뢰도가 떨어진 것도 관심의 대상을 초연하게 만들고 있다는 게 광주 지역 교육 관계자들의 얘기다. 광주서석고등학교 김일석 연구부장은 “정부의 정책에 대해 학교 내에서 본격적인 논의는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다만 고1 내신을 반영하지 않게 되면 2학년 때 선택과정을 위해 선수학습을 위한 사교육이 성행할 우려가 있다”고 반박했다. 사교육비에 초점을 맞춰 안건을 내놓다 자칫 교육의 본질을 흐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렇게 되면 학교 현장이 부실해져 교육력은 되레 약해질 수 있다는 얘기. 하지만 평가방법을 절대평가로 바꾸는 안건에 대해서는 상당 부분 동조했다.
반면 중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들은 정부의 발표에 따라 자녀의 교육 로드맵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예의주시하고 있는 입장이다.
학원장들 부업 고민해봐야 할 터
사교육 대책 파장에 직격탄을 맞고 있는 곳이 사교육시장이다. 학원 교습시간을 규제하겠다는 특단의 조치가 학원가에 원자폭탄을 던진 셈. 정부의 정책에 전국의 학원가는 현재 빨간불이 켜졌다. 광주시도 여름방학 동안 학원 수요자가 늘 것으로 예측하고 이 기간을 ‘특별단속기간’으로 정하고 단속을 실시하고 있다. 학원법률 조례안에 따르면 초·중은 10시, 고는 12시까지 학원교육이 허락된다.
정부의 강경책에 광주시도 그 동안 2차례의 심야 단속을 실시했다. 그 결과 1차에서는 95개 학원 중 8곳이, 2차에서는 72개 학원 중 5곳이 단속망에 걸렸다. 위반 시에는 벌점을 적용해 강제 휴원과 직권 말소 조치가 내려진다. 적발된 학원장의 얘기다. “우리에게는 학원이 생계유지 수단인데 그 동안 정부에서 사교육 시장에 해준 게 뭐가 있냐?”며 급작스런 강도 높은 조치에 억울한 입장을 표명했다. 억울한 것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시교육청에서 규제한 학원비가 타 시도에 비해 턱없이 저렴하다는 것. 광주시교육청 평생교육체육과 평생교육팀 김정연 담당자는 “광주시 학원비의 경우 타 시도에 비해 평균 75%에 불과한 수준이다. 불이익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우리도 어쩔 수 없다”고 난감해했다. 결국 일방적인 규제와 단속이 행정기관을 불신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학원시장도 당분간은 정책에 조용히 따르는 편이 낫다는 분위기다. 한 학원장은 “소나기는 일단 피하고 봐야 한다”며 “이명박 정부가 바뀌지 않는 한 이번 강경책은 지속될 것으로 내다보고 조용히 있는 게 상수”라고 토로했다. 오히려 단속을 피해 파행적인 수단들이 성행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벌써부터 반을 조정해 주말반을 만든 학원도 부지기수다. ‘학파라치’의 극성도 예고했다. 한 학원장은 “정부가 나서서 ‘학파라치’를 고용해 단속하겠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 그런 예산이 있으면 공교육에 투자하라”고 얼굴을 붉혔다.
‘사교육 없는 학교’는 사교육 금지되나?
정부의 이번 정책의 주안점은 사교육 수요를 공교육으로 흡수하겠다는 전략이다. 그래서 공교육을 살리는 대안으로 전국 초·중·고에 ‘사교육 없는 학교’를 선정해 예산을 지원하고 있다. 광주에서도 15개 학교가 선정됐다. 이들 학교는 1.3억원씩의 지원을 통해 정규 교육과정을 강화하고 수요자 중심의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을 제공해 학생과 학부모들의 만족도를 높이겠다는 방침이다. 사교육 없는 학교에 선정된 신창중학교 정문호 교감은 “사교육 수요자를 공교육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학원 역할의 이상을 해내야 공교육을 신뢰할 수 있을 것”이라며 “효과적인 운영을 위해 정규수업 후 종합반과 단과반을 운영해 학생들의 실력을 끌어올릴 것”이라고 밝혔다. 또 프로그램이 끝나면 교사의 감독 하에 자율학습이 이뤄지도록 공부방도 운영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인원은 1반에 20명 이내로 주요과목을 중심으로 수준별 수업을 할 예정. 프로그램의 질을 높이기 위해 교내 교사 외에 외부 강사 초빙도 고려중이다. 프로그램의 성과를 위해 영재반도 운영할 계획이다.
하지만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학부모들도 있다. 외부강사를 초빙하게 되면 자칫 공교육이 사교육화 될 우려가 있다는 것. 또한 학생들이 무료로 수업을 받을 수 있다는 메리트는 있지만 과연 학부모들이 신뢰할 수 있는 공교육을 구축할지는 아직 의문이다. 한 학부모는 “방과후 수업에 치중하게 되면 교사들은 정규수업을 소홀히 할 우려가 많다. 결국 소수 학생을 위한 프로그램에 불과할 뿐 정규수업을 받는 학생들은 다시 사교육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입학사장관만이 답이다?
정부의 이번 대책은 공교육 선진화를 통해 학생들의 창의성과 재능을 살려 대입에 진학할 수 있도록 문호를 개방하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다. 이는 입학사정관제와도 맥을 같이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마치 입학사정관제만이 해답인 것처럼 제시하고 있다. 이에 교육평론가 이 범씨는 “입학사정관제는 내신·수능·논술·면접·비교과영역 등 동시에 많은 전형요소를 대응해야 하므로 학생 부담과 사교육비를 줄이는데 오히려 불리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게다가 선발과정도 불투명해 고교등급제나 기여입학제의 통로가 될 여지가 많다는 것이다. 또한 입학사정관제의 입맛에 맞추기 위한 맞춤형 컨설팅이 새로운 사교육으로 등극할 우려가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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