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중독 ‘도’를 넘었다

지역내일 2009-07-14 (수정 2009-07-15 오전 7:30:56)
사행산업 육성에만 관심, 예방치유는 뒷전



# 김씨는 스스로 도박 중독을 극복하지 못하고 강원랜드 측에 출입제한 요치를 요구한 뒤에도 또 도박장을 찾았다. 결국 김씨는 강원랜드에서 200억원 가량을 잃었다.
김씨는 법원에 강원랜드가 출입제한을 요청했는데도 출입을 허용해 금전적 손해를 입었다며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서울동부지법은 지난 8일 강원랜드가 원고 김씨에게 15억5180만원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선고했다.

# 대학졸업반 때 실연으로 술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두 달 정도 술을 먹고 지냈는데, 친구가 하루는 경마장을 가자고 했습니다. 다음부터는 혼자도 가게 됐고 졸업반 2학기 등록금을 올인하는 사태도 발생했습니다.
한참 일할 나이에 IMF 터지고 취직이 힘들었습니다 저는 직장 3개월 다니고 경마장으로 출근했습니다. 그로부터 정확히 1년도 안 돼 가진돈 다 까먹고 빛만 8000정도 되더군요.
10년이 지나 결혼해서는 도박 안하려고 했습니다. 아내가 빚을 다 청산해 줬지만 또 시작하고 말았습니다. 현재 부채도 많이 있구요. 미치겠습니다. 그렇게 착한 아내의 입에서도 험한 소리가 나오더군요. <방모씨. 도박중독자="" 모임="" '단도박'="" 사이트에서="">

도박중독이 도를 넘고 있다.
국회가 2008년 국정감사에서 경찰청으로부터 받은 내국인 카지노 관련 5대 범죄 현황에 따르면 2007년 하이원리조트에서 살인과 강간 등이 188건이 발생했다. 이는 2006년에 비해 45%가 증가한 수치다.
내국인 카지노 개장 이후 25명이 도박 빚 등으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조사됐다. 폐광지역 경제지원과 건전한 게임문화 정착이라는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더 부각되는 조사다.
강원대 이태원 교수가 강원랜드 출입 629명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내국인 카지노 출입자 10명 중 2.5명꼴로 1억원 이상 거금을 탕진하고도 출입을 끊지 못하는 심각한 도박중독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10명 중 1명은 경제적 궁핍 등으로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수시로 고민하는 등 물질적·정신적 휴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한국도박중독예방 치유센터에 따르면 2008년 도박중독으로 치료를 받은 사람은 5500여 명으로, 2007년 4200여 명보다 30% 가까이 증가했다.
이 것이 한국에서 합법으로 인정받은 사행산업의 현 주소다. 국내 합법 사행산업은 2000년 6조6977억원에서 2007년 14조4815억원으로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불법 사행산업의 경우 30조원이 넘어가는 것으로 추정된다. 합법 사행산업의 피해정도를 고려하면 드러나지 않은 불법도박의 범죄피해는 계산하기 어려울 정도다.
국회 지식경제위원회 임동규 의원은 14일 전화통화에서 “카지노로 재정을 확충해 지역발전을 이룬다는 것은 시대에 맞지도 않고, 국가적으로 피해가 상당히 크다”며 “사행산업을 국가가 육성해서는 안되지만 재정확보 차원에서 시작했다면 정부는 최선을 다해 부작용을 예방하고 치유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사행산업계가 중독 예방·치유에 투입하는 재정은 2007년 강원랜드는 34억원, 한국마사회도 12억원, 국민체육진흥공단도 14억원 등으로 매출의 1%도 안된다. 말그대로 사회공헌을 한다는 생색내기 수준이다.


◆정부 중독예방 의지 있나
도박중독이 갈수록 심각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부가 도박중독 치유보다 사행산업 육성에 더 큰 관심을 보이는 것도 중요한 원인으로 지적된다.
정부가 내국인카지노를 합법산업으로 인정한 것은 1998년이다. 폐광지역 중 경제사정이 열악한 곳으로 특별법에 의해 1곳을 내국인 카지노로 승인했다.
하지만 내국인 카지노의 부작용은 상상을 벗어났다. 도박중독자가 등장했고, 사건사고가 넘쳐난 것이다. 다음은 이를 잘 표현한 글이다.
“나중에 전부 다 까발려서 동생집에, 친척집에, 누나집에, 조카집에 전부 다 돈을 가져와 게임을 하는 거야. 폐인이 되는 거야. 마약은 내 몸 하나 망가지면 끝나지. 그런데 도박은 주위 사람들을 다 죽인다 이거야.”(김세건 ‘베팅하는 몸 : 카지노 노숙자들의 삶’ 중에서)

그리고 지금, 합법적으로 도박중독자를 양성한 꼴이 된 정부가 도박중독을 예방하기 위해 사행산업의 전자카드제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이에 반발한 사행산업자의 목소리가 커지자 정부는 또 다시 한 발 빼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전자카드제는 높은 수위의 규제책으로 처음 사행산업을 허가할 때 부작용을 예상해 도입해야 한다. 그러나 정부는 사행산업을 합법화에만 노력했고, 장기적 부작용을 예상하지 못했다.
제주특별자치도의 내국인카지노 유치를 위한 도의회 회의에서 이같은 내용이 잘 나타나고 있다. 지난 10일 열린 제주특별자치도의회에서 문화관광위원들은 대체적으로 관광객전용카지노 도입의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사행산업이 갖는 재산탕진, 도박중독, 범죄율 증가 등의 우려를 저감시킬 대안마련이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강문철 의원은 카지노의 사행산업 부작용 최소화를 위한 ‘전자카드’ 도입을 제안했다.


◆형식적인 중독 예방치유 정책
사행산업 전자카드 도입이 중독예방 성격이 강하다면, 사행산업 분담금은 치유 성격이 짙다.
외국의 경우 사행산업을 육성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분담금을 확대해 중독을 예방하고 치유한다. 캐나다 온타리오 주는 사행산업자 순매출액의 2%를 기금으로 확보해 치유와 예방 사업을 펼치고 있다. 1년 사용액만 400억원에 달한다.
이에 반해 한국정부는 중독 치유기관을 설립하고도 사실상 손을 놓고 있어 형식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사행산업을 감독하는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 중독예방치유센터의 1년 예산은 20억원에 불과하다. 그것도 ‘매칭펀드’로 국비 10억원에 사행사업자가 10억원을 낸다. 국립 중독예방치유센터 재정이 캐나다의 온타리오 주의 5%에 불과한 것이다.
사감위 중독예방치유센터 조현섭 센터장은 “지금 상황에서 도박을 못하게 막을 수는 없다. 도박의 오랜 역사를 가진 국가에서도 중독 예방·치유 기관은 막강한 권한을 가지면서 범정부적으로 사업을 펼치고 있다”고 말했다.
사감위 중독예방치유센터에서는 사행산업 순수입액의 2%를 기금을 조성해 중독예방치유 사업에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중독에서 벗어나려면 예방이 중요하다는 것을 나타내는 극단적인 조사가 있다. 고한희망센터가 지난해 카지노 인근 지역 초등학교 5∼6학년과 중학생 및 고등학생 86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보고서에 따르면 노숙자 증가와 도박 중독으로 인한 자살자 증가 등으로 교육환경이 악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에 참여한 학생 45%가 직접 도박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72.6%는 가족과 이웃 등이 도박으로 인해 곤란을 겪고 있다고 응답했다. 또 2000년 카지노가 개장한 이후 지역변화에 대해서는 45.6%가 전당포와 유흥업소, 노숙자, 부랑자가 증가했다고 대답했다.
예방과 치유 교육을 받지 않으면 이 학생들은 커서 도박중독자가 될 확률이 높다. 우리 아이들이 도박중독의 잠재적 고객이 된 것이다.
국회 송훈석 의원은 생계형․ 도박자금 마련 목적의 사기․ 절도 등 범죄가 급증하는 등 강원랜드가 새로운 범죄의 온상지가 되면서 심각한 사회 문제화 되고 있는 현실을 상기시키고 정부차원의 대책마련을 촉구했다.
송 의원은 특히 생색내기식으로 운영하고 있는 도박중독방지센터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통합적인 ‘도박중독예방치료센터’의 설립 필요성을 제시했다.
김성배 기자 sbkim@naeil.com


<박스>
해외 도박중독 예방·치유 제도

주 정부에서 연 200억 도박 관련 예산 사용
사행산업 감독기구도 정부 직속


캐나다 온타리오 주가 대표적이다. 인구 1200만명의 온타리오 주정부인 복지부에서 각 단체에 기금을 제공해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사행산업사업자 순매출액의 2%를 기금으로 확보해 사용하고 있다. 주 정부에서는 도박관련 정책과 예산 수립, 정책집행 연구를 담당하고 대부분은 민간전문 기관에 위탁해 집행한다.
온타리오 주는 도박중독자 33만1967명(2006년)으로, 유병률 3.4%다.
캐나다 앨버타 주와 미국 오리건 주는 대부분 복권 수입의 1% 이상을 중독 예방·치유 기금으로 걷어들인다.
인구 683만명의 호주 뉴사우스웨일즈 주는 카지노 사업자를 대상으로 기금을 걷는다. 카지노 순매출액의 2%가 ‘갬블링 펀드’로 조성해 중독 관련 사업에 쓰인다. 펀드 재정은 1년에 160억원 정도다.
외국의 사행산업 감독기구는 정부의 강력한 지원을 받고 있다. 사행산업으로 벌어들인 돈은 철저히 재정분배가 되며, 사행산업의 중독을 예방하기 위한 지원책도 광범위하게 시행하고 있다.
사행산업의 원조격인 영국은 ‘갬블링 위원회’를 중앙정부 독립기관으로 설립, 영국 내 모든 게이밍 관련 산업에 대한 인허가와 관리·감독 권한을 가지고 있다. 카지노 허가 여부를 심사하고 경영 감독까지 한다. 예산은 1년에 약 300억원을 사용하고 있다.
도박 천국이라 불리는 마카오는 ‘게임감찰협조국’이 중앙정부 소속으로 사행산업을 감독한다. 1930년 설립돼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게임감찰협조국’은 카지노 경견 경마 복권의 인허가 업무와 감독 권한을 가진다. 직원은 200명이다.
카지노의 상징 미국 라스베이거스가 있는 네바다 주에는 2개의 감독기구가 있다. 모두 주 법무부 소속으로 ‘게이밍규제위원회’와 ‘네바다 게이밍위원회’다. 위원회에서는 카지노와 경마, 복권의 면허 발급과 인·허가 취소여부를 조사하는 강력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 인원은 462명으로 1년에 350억원의 예산을 사용한다.
호주의 퀸즐랜드와 빅토리아 주 역시 ‘게이밍규제실’과 ‘갬블링규제위원회’를 두고 카지노, 머신게임, 경주, 복권에 대한 발행·취소·정지 여부를 심사한다. 또 중독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다양한 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주 정부에서는 1년에 200억원 가량의 위원회 예산을 확보하고 있다.
김성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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