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교육 판이 바뀌고 있다. 읽고 듣는 능력을 중시하던 흐름이 ‘말하기’와 ‘쓰기’로 이동하는 것. 특히 대학별 입시 전형은 물론 유학과 취업을 위한 인증 시험, 2012년 시행 예정으로 알려진 국가영어능력시험까지 주어진 상황을 분석해 논리적으로 표현하는 힘을 평가한다. 논리적 의사소통 능력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영어 에세이 쓰기 실력을 기르려면 영어 문장을 꾸준히 써보는 것 외에는 왕도가 없다.
교육 제도 큰 흐름 쓰기 능력 중시로
영어 교육에 올인하는 시대, 노출 시기도 갈수록 빨라져 영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아이들도 점점 늘고 있다. ‘영어를 잘한다’는 건 더 이상 특기가 아닌 기본 소양이 된 셈. 영어 교육 전문가들은 이제 변별력의 열쇠는 ‘영어 글쓰기’가 쥐고 있다고 말한다.
국내 대학 입시에서 아직 쓰기 평가가 본격적으로 이뤄지진 않지만, 교육 제도들은 사실상 쓰기 능력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듣기, 말하기, 쓰기 평가 비율을 50퍼센트 이상 확대한다는 서울시교육청의 ‘영어 공교육 강화 방안’은 이를 방증하는 한 예. 초·중등 교과서도 ‘영어 학습 활동책’이라는 수준별 보조 교과서를 도입, 수업 시간 내 쓰기 활동을 늘릴 전망.
2012년부터 시행될 예정인 국가영어능력시험은 읽기, 듣기, 쓰기, 말하기가 모두 포함된 평가. 쓰기 실력이 없으면 높은 점수를 얻기 힘든 게 당연하다. 특히 2급, 3급은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입시에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질 계획이어서 이에 대비한 학습이 필요하다.
각 대학에서 확대 실시하는 입학사정관제도 영어 글쓰기 능력 평가를 반영할 거라는 예측도 있다. 읽기·쓰기 영어교육전문학원 잉글리쉬 무무 강성원 국장은 “학생들의 잠재 능력과 표현 능력, 문제 해결력을 가늠해 보기 위해 말하기나 쓰기를 통한 심층 면접을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영어 능력 인증 시험에서 몇 점을 받았느냐보다 주어진 질문의 요점을 제대로 파악하고, 영어로 얼마나 잘 표현할 수 있는지 활용 능력을 평가하는 분위기가 조성될 것으로 예상돼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표현하는 쓰기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속성으로 실력 키우기 불가능
김수진(40)씨는 얼마 전 초등학교 5학년 아들이 가져온 영어 수행평가지를 보고 적잖이 당황했다. ‘What do families do together on holidays?’란 주제로 가족의 일상을 소개하는 간단한 쓰기 시험을 치른 것. 일주일에 한 번씩 영어 일기를 꾸준히 써 온 덕분에 점수가 나쁘지는 않았지만, 학교에서 쓰기 학습을 본격적으로 실시한다는 사실을 실감했다고.
이럴 때 자녀의 영어 글쓰기 능력을 업그레이드하고 싶은 급한 마음에 서둘러 영작문 특강을 신청하는 엄마들이 많지만, 쓰기 실력은 몇 개월 안에 속성으로 길러지지 않는다.
청담어학원 금천브랜치 정훈수 원장은 “영어 글쓰기는 창의적 사고와 비판적 사고를 토대로 이뤄지기 때문에 한정된 시간에 원하는 결과를 얻기 힘들다. 본격적인 입시에서 아직 자유로운 초·중등 시기는 영어의 기본기를 익힐 수 있는 절호의 타이밍”이라고 말했다. 자의식이 강화되고 논리적 문체와 관념적인 어휘, 사회성이 투영된 자료를 소화할 수 있는 지적 능력이 형성되는 시기인 만큼 어린이 영어 수준을 넘어 한 차원 높은 쓰기 능력을 기르는데 주력하라는 것.
정 원장은 이어 “주어진 토픽에 대한 논거를 대고 자신의 관점을 피력하려면 먼저 ‘영어 근력’을 키워야 한다”며 “읽기를 통해 배경 지식을 넓히고 글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한 후 재미있게 읽어보는 연습을 하다 보면 글쓰기 능력 향상을 위한 전초 기지를 마련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흔히 영어 에세이 훈련은 영어 학습의 최종 단계에서 이뤄진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읽기나 듣기, 말하기 등 다른 영역의 학습과 유기적으로 맞물릴 때 효과가 가장 높다는 설명이다.
요약하기, 바꿔 쓰기, 통제된 영작,
두괄식 단락 쓰기 효과적
영어 글쓰기에 능숙해지는 확실한 방법은 영어식 어순과 문법 구조에 맞는 문장을 되도록 많이 써 보는 것. 중등영어글쓰기연구회 대구영어교사모임 서연희 교사는 “영어 글쓰기에 어려움을 느끼는 건 내가 쓴 표현을 남이 본다는 생각에 ‘길게 써야 한다’ ‘정확한 영어를 구사해야 한다’는 심리적 부담감 때문”이라며 “길이와 정확성에 대한 부담을 버리고, 그 날 배운 표현을 이용해 한 줄이라도 자신만의 문장을 써 보는 연습을 하라”고 조언한다.
서 교사가 추천하는 방법은 여러 문장으로 된 긴 글을 간단하게 줄여 보는 ‘요약하기(Summary)’와 문장에 쓰인 단어(word)나 구(phrase)를 같은 의미를 지닌 다른 말로 바꿔 보는 ‘바꿔 쓰기(Paraphrase)’. 가령 ‘지루한 사건을 잊는 경향이 있다’란 뜻의 ‘tend to forget boring events(출처 <Unsolved Science Mysteries>)’란 문장은 ‘usually forget dull events’로 바꿔 쓸 수 있다. 영어 만화의 말풍선을 채워 보거나 영자 신문 기사에 제목을 붙인 후 원래 제목과 비교해 보는 활동도 아이들이 흥미 있게 접근할 수 있는 쓰기 훈련 방법.
자기 수준에 맞는 한글 텍스트를 영어로 바꿔 보는 연습도 쓰기 능력을 기르는데 도움이 된다. 잉글리쉬 무무 강성원 국장은 “한국어 문장을 한 문장씩 영어로 옮겨 쓰는 ‘통제된 영작 활동’을 하면 명사, 동사, 형용사, 전치사 등 품사별로 영어 단어가 놓이는 고유한 자리와 어휘 배열에 대한 원리를 파악할 수 있다. 핵심 키워드를 첫 번째 문장에 놓는 두괄식 문단 구성을 익히면서 5~6문장으로 된 단락 쓰기 활동을 꾸준히 해 보라”고 권했다.
김혜원 리포터 pinepole@naver.com
도움말|강성원 국장(잉글리쉬 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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