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세인트루이스 연방 법원 등에서 1년간 연수를 받은 적이 있다. 내가 연수를 가기 몇 년 전 연방 법원에서 살인범에 대한 무죄 판결이 선고되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 살인 사건은 198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학생이던 엘렌 리즈노버(42)는 당시 대학생이었고 2살 된 딸이 있었다. 그녀는 83년 세인트루이스 교외의 한 주유소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돼 50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증거가 될 만한 현장 목격자도 지문도 없었다. 경찰은 살인에 사용된 총기조차 발견하지 못했다.
배심원들은 그가 살인을 인정했다는 감방 동료 두 사람의 증언에 전적으로 의존했다. 그러나 이들이 증언을 대가로 감형 혜택을 받았다는 사실은 극비에 부쳐졌다. 배심원들은 그에게 무기 징역을 선고할 것인지 사형을 선고할 것인지 결정을 내리지 못했고, 결국 재판부는 무기징역을 택했다. 당시 사형 선고가 내려졌다면, 그녀는 그 사이 처형됐을 것이며 사건의 진실은 영원히 묻혔을 것이다.
연방 법원이 판결을 뒤집은 것은 변호인들의 집요한 추적 조사가 이루어 낸 개가였다. 이들은 재판 과정에서 공개되지 않았던 녹음 테이프 2개를 극비리에 입수, 연방 법원에 새로운 증거로 제시했다. 경찰이 수사 과정에서 녹취한 것으로 보이는 2개의 테이프 중 하나는 리즈노버가 감방 동료와 나눈 대화를 도청한 것인데 리즈노버는 이 테이프에서 자신의 무죄를 거듭 주장하고 있다. 다른 테이프 역시 경찰이 리즈노버와 남자 친구의 대화를 몰래 녹취한 것으로, 여기서도 리즈노버는 "나는 죽이지 않았다"고 털어놓고 있다. 문제는 경찰이 가지고 있던 이 테이프들이 재판 과정에서 제시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연방법원은 이 테이프를 결정적인 증거로 채택했고 당시 담당판사인 해밀턴은 "검찰이 리즈노버의 무죄를 입증할 수 있는 중요한 증거를 무시함으로써 공정한 재판을 방해했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하였다. 검찰은 새로운 증거가 나타나지 않는 한 항소를 포기하겠다는 결정을 하였고 결국 그 사건은 그렇게 끝이 났다. 경찰의 편파 수사와 배심원의 고정 관념이 무고한 한 흑인 여성을 죽음 직전으로 내몰았던 이 사건은 미국 사법 제도와 사회 정의에 근원적인 의문을 제기했던 사건이었다.
리즈노버는 석방되면서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어요. 하지만 이렇게 오래 걸릴 줄은 몰랐어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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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구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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