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80세대만 해도 만화를 보며 만화와 함께 자랐다. 거리 곳곳에 만화방이 있었고, 10대의 용돈 사용 순위에서 1위를 차지할 정도로 만화의 인기는 대단했다. 만화를 좋아하던 친구의 영향으로 코믹부터 판타지, 탐정, 시대극, 무협물까지 섭렵하며, 하루는 순정만화의 주인공이 되었다가, 또 하루는 무협물의 주인공이 되어 보기도 했다. 히트작 하나 나오면 스토리부터 주인공의 디테일한 묘사까지 삼삼오오 모여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시절도 있었다.
연인과 함께 다정하게 만화 데이트를 즐기던 주말 오후, 풋풋한 사랑이야기가 있는 순정만화를 보며 ‘만화를 그리는 이들은 어떤 사람일까?’ 하고 내지에 실린 사진 속에서 그들의 특별함을 찾곤 했었다.
우리 가까운 이웃에 만화가가 살고 있다고 하여 조심스레 문을 두드려 보았다. 기대 반 설렘 반으로 도착한 곳은 대화동의 예쁜 주택가. 만화가 이 빈과의 인터뷰가 시작된다.
집에 들어서는 입구부터 이빈 작가의 높은 인테리어 안목에 감탄하게 된다. 높은 천정에, 유럽피안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인테리어와 소품들, 사이사이 어우러진 미니 화분들과 독특한 이태리 타일로 꾸며진 아일랜드 조리대까지 모든 주부의 로망이 담겨 있다. 특히 오리엔탈 스타일을 좋아한다는 그는 동양의 전통적인 스타일을 포인트로 잘 활용하고 있다.
1971년생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동안(童顔)의 이빈 작가와 세 살 연하의 남편 전호진 작가, 그리고 엄마와 아빠를 반반 닮아 늠름한 6살 호빈군. 멋스러움이 있는 이들의 보금자리에서 이렇게 한참을 인테리어에 대한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의 이러한 감각은 그의 작품세계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평소 거리를 걸으며 구경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한다. 특히 일본의 하라주꾸 느낌이랄까? 팬시한 느낌과 인디 스타일이 공존하는 좁은 거리를 걸으며 다양한 숍과 가판대의 물건을 구경하고 흥정하는 걸 좋아하는데, 일본의 하라주꾸는 홍대와 비슷한 느낌이라고. 그는 오랫동안 홍대 근처에 살다가 지난해 일산으로 이사 왔다. 일산이 너무나 좋아서 자전거를 타고 여기저기 다니며 자연과 함께 호흡하고, 가끔은 화훼단지에 들러 미니화초들을 구입하기도 하는데, 이렇게 그가 숨 쉬고 접하는 모든 것이 그의 작품의 소재가 된다고 한다.
일과 사랑 그의 잔잔한 러브스토리
이빈 작가(본명 박은지)는 1991년 르네상스 신인 공모에서 ‘나는 깍두기’로 당선되면서 만화계에 입문했다. 그는 인기코믹만화 ‘개똥이’와 ‘안녕 자두야’, ‘원(One)’ 등을 그린 개성 넘치는 순정 만화가다. 그의 작품은 ‘Merry Tuesday’ ‘마지막 사람들’ ‘틴에이지클럽’ ‘One’ ‘개똥이’ ‘불완전한 愛’ ‘안녕? 자두야’ ‘Girls’ ‘크레이지러브스토리’ ‘포스트모더니즘’ ‘쌍둥이와 해결사’ 등으로 그의 관심은 늘 10대였다. 그러나 대중문화의 코드를 잘 반영하는 그의 작품은 이제 10대뿐 아니라 20대, 30대까지도 아우르고 있다.
“개인적으로 애착이 가는 작품은 제 어렸을 때의 이야기들을 만화로 그린 ‘안녕 자두야’(컬러판은 엄마는 단짝친구)입니다. 대부분이 실제로 있었던 일들을 소재로 꾸민 실화이고, 가족 구성원도 실제 저희 집 가족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자두’의 스토리를 구상 할 때면, 어린 시절이 더욱 더 새록새록 기억이 나고, 그 시절의 저만한 아들이 있는데도 그 때가 엊그제처럼 가깝게 느껴집니다.”
평소 만화계는 순정만화 작가와 남성 작가들의 교류가 거의 없어 인적 네트워크가 약한 편이다. 그러던 와중 1997년 ‘천국의 신화’로 외설 시비에 휘말린 만화가 이현세씨가 검찰에 불구속 입건되는 사건이 터지면서, 재판과 서명운동을 통해 만화계가 한 목소리를 내게 되었는데, 이때 만화가인 남편 전호진 작가와 “운명적으로 만났다”. 그 후 3년의 열애 끝에 결혼을 하고, 4년 만에 아들 호빈군을 얻었다.
“같은 일을 한다는 게 장단점이 있는 거 같습니다. 지하에서 작업을 하고, 위층에서 생활을 하는데, 하루 종일 같이 있어 서로의 사생활이 전혀 없다는 것이 불편하다면 불편한 점이죠. 근데, 일적으로는 서로가 도움이 많이 되는 편입니다. 특히 자동차나 기계적인 그림, 컴퓨터 작업 같은 경우는 제가 많은 도움을 받고 있어서, 서로 다른 점을 보완할 수 있어 좋습니다.”
앞으로의 꿈은~
“지금의 만화계는 청소년 만화시장만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90년대까지 만해도 인기작이 10만부가 넘을 정도로 만화시장이 좋았는데, 지금은 거의 10분의 1정도로 출판만화의 비중이 줄었어요. 환경적인 요인도 크지만, 특히 청소년 보호법이니 각종 규제가 만화시장에 집중되면서 대형서점에서 만화를 받지 않는 등 만화의 유통채널이 완전히 무너졌다고 할 수 있죠. 특히 스캔본의 등장으로 10대들의 구매가 사라지면서, 만화시장 자체가 침체기에 빠져, 게임 일러스트나 캐릭터 쪽으로 전업을 하는 작가들이 늘고 있습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겪이 되지 않게, 늦기 전에 정부에서 어떤 대책 마련과 창작 지원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작가 스스로도 시나리오 교육과 컴퓨터 교육을 받아 스스로의 경쟁력을 높이고 웹툰, 웹진 등으로 변화하는 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할 것입니다.”
현재의 만화계를 걱정하는 그는, 그러면서도 그의 포부를 밝힘에 있어서는 당찬 모습이다.
“일단은 우리 말썽꾸러기 아들내미를 사고(?)없이 잘 키워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 개인적인 바람이라면 저의 ‘순정’적인 스피릿이 더 이상 ‘아줌마화’ 되기 전에 모두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찌인~한 러브스토리 만화를 그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드라마화도 되고, 한류바람에 동참할 수 있으면 작가로서 더 바랄 것이 없겠죠!(웃음)”
인터뷰 내내 엄마로서 공감대를 형성하며 편안한 수다(?)의 장을 이어가면서도, 그의 작품에서 느낄 수 있었던 독창적이고 도전적인 열정이 카리스마로 뿜어져 나와 강한 인상으로 남았다. 앞으로 어떠한 소재를 가지고, 어떤 모습으로 우리를 찾아올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이남숙 리포터 nabisu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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