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달에 생각해보는 부부의 모습

한 집에 살지만 몸과 마음은 따로 따로

지역내일 2009-05-24
소통단절이 갈등 키워…방치하면 외도, 이혼으로 이어져

이제 막 결혼에 골인해 한집살림을 시작한 신혼부부, 그들은 약속한다. 죽을 때까지 서로 사랑하면서 알콩달콩 잘 살아보자고. 하지만 결혼 횟수가 어느 정도 쌓이면서 부부는 ‘사랑’이 아닌 ‘정’ 때문에 살아간다고 흔히들 얘기한다. 사랑에 애달아했던 지난 시절과 비교해보면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우리는 ‘부부’가 아니라 ‘가족’일 뿐이다
2006년 한국성과학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부부 중 섹스리스 부부가 10쌍 중 3쌍에 달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20, 30대 젊은 부부에서도 섹스리스 부부가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부부 합의 하에 정신적인 사랑만으로 육체적인 관계없이 사는 것도 가능할 수는 있다. 하지만 송파구 건강가정지원센터에서 ‘부부갈등 가족상담’ 강좌를 진행하는 김정민 가족치료전문가는 “부부문제를 상담하다보면 부부의 성(性)적인 문제가 내포돼서 다른 갈등요소를 발생시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고 얘기했다.
부부간의 성(性)문제는 터놓고 이야기하기 쉽지 않지만 속으로 곯으면 큰 갈등을 야기한다. 그리고 집집마다 많은 부부들이 성(性)적인 문제에서 시작된 갈등상황을 고민 중이다.
결혼 11년차 주부 이 모씨(명일동‧38)는 둘째 아이를 출산하면서 자연스럽게 남편과 각방을 쓰게 된 경우다. “남편이랑 한 이불을 덮고 잔 것이 4년쯤 된 것 같다”며 “처음에는 아이랑 자는 것이 편했지만 남편과 오랫동안 같이 자지 않다보니까 점점 부부 관계가 어색해지는 듯하다”고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이 씨는 “남편과 나의 모습을 생각해보면 ‘우리는 부부가 아닌 가족일 뿐이다’고 자꾸 되새기게 된다”고 덧붙였다. 그의 말에는 부부 문제로 아이들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다는 속내가 담겨있다.
가락동에 사는 결혼 17년차 주부 최 모씨는 활달한 성격이지만 남편 이야기만 나오면 말을 하고 싶지 않다. 최 씨는 “분명히 사랑해서 결혼한 사이인데 집밖에서 남편 발소리가 나면 기분이 우울해진다. 의무방어전으로 치루는 잠자리도 불편하고 마음이 동요하지 않는다”면서 “사랑해서 결혼한 것이 맞는데 자꾸 따로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결혼 횟수가 비슷한 또래 친구들 10명 중 6명이 나랑 비슷하다”고 털어놨다.

의사소통 단절이 큰 문제로 이어져
이와 같은 섹스리스의 문제를 거절하는 아내의 잘못으로만 돌리기에는 남편의 잘못도 크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김정민 가족치료전문가는 “부부간의 성적인 것은 친밀감을 느끼게 하는 핵심적인 부분이다. 하지만 아내의 거절에는 존중받지 못한 채 이루어지는 일방적인 관계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남편들은 아내에게 받은 거절로 좌절감 혹은 분노를 느끼기 전에 그 이면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결혼 초 이야기 거리가 많던 부부사이도 결혼 5년차를 넘어가면서 말수가 급격이 줄어든다. 말 한마디 잘못 건넸다 싸움으로 이어질 수 있기에 상대방을 어느 정도 포기(?)하고 살아가게 된다는 것.
일상적인 대화조차 자꾸 아끼게 되다보니 이불 속 의사소통이 잘 될리 없다. 결혼 15년차 주부 안미숙(광장동) 씨는 “부부는 몸이 멀어질수록 대화가 줄어드는 것은 당연한 것 같다”면서 “며칠 전 오프라 윈프리쇼에 출현한 성전문가가 ‘남자는 순간적인 욕구에 의해 관계를 맺는다면 여자의 전희는 2~3일전부터 준비된다’는 말에 공감이 됐다”고 얘기했다. 여자들은 생활 속에서 남편의 말이나 행동 등이 잠자리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다는 것이다.

부부 함께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섹스리스는 방치하면 부부간에 돌이킬 수 없는 일을 만들 수 있다. 외도나 이혼으로 이어져 부부의 불행이 결국 가족의 불행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부가 함께 해결방안을 찾는 등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성의학 전문가인 이선규 비뇨기과 전문의는 “섹스는 부부사이를 긴밀히 유지시켜주는 중요한 소통방법 중 하나다. 부부가 서로 극복하려 하지 않고 현실을 외면하려고만 들면 상처가 깊어지고 멀어지게 된다”고 충고했다.
부부가 서로 노력을 해도 개선이 어려운 경우 전문가의 도움이나 관계기관에서 이루어지는 부부강좌에 함께 참여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부부 워크숍이나 부부클리닉, 부부학교 등에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섹스리스 부부를 위해 도움을 주고 있다. 김정민 가족치료전문가는 “건강가정지원센터나 복지관 등에서도 부부 강좌를 많이들 개설하고 있다. 이들 강좌에서는 대체로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것부터 시작해 부부의 차이를 인정하고 갈등해결을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코치해준다”고 설명했다.
섹스는 몸으로 나누는 대화다. 몸으로 나누는 대화가 잘 되지 않을 때 배우자는 외로움을 느끼게 된다. ‘내 아내는 외롭지 않은지’ ‘내 남편은 외롭지 않은지’ 지금 한번 돌아보자.

김소정 리포터 bee4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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