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이면 주부들은 한숨부터 나온다. ‘가정의 달=지출이 가장 많은 달’로 일 년 행사의 절반을 치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 설상가상으로 경기도 어려워 주부들의 주머니 사정도 넉넉지 못하다.이럴 때 상대방 마음도 챙기면서 행사를 실속있게 보내는 법은 없을까. 본지는 주부들의 입장을 십분 고려해 가정의 달에 지출을 줄이면서 행사를 제대로 보내는 법을 제안하고자 한다.
◆ 어린이날
초등학교 6학년인 딸을 둔 주부 안순정(가명·42)씨는 지난해 어린이날 모으기 시작했던 돼지 저금통을 이번 행사 때 개봉하기로 했다. 내년이면 중학교에 들어가는 딸아이를 위해 마지막 어린이날을 추억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아직 고민이다.
딸과 함께 장애인 시설이나 고아원, 양로원 등을 방문해 작은 선물이라도 전해드리고 정을 나누고 오자는 남편의 제안을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고 전했다.
초등학교 3학년과 4학년 남매를 둔 주부 최정순(42)씨는 이번 어린이날은 과일밭에 가서 체험활동을 하기로 했다. 맞벌이 부부인 최 씨는 주말이면 피곤하고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아이들과 함께 하지 못했던 것이 미안해 이번 기회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체험을 하기로 결정했다. 작년에 놀이동산을 다녀왔다가 혼잡한 교통과 인파, 만만치 않는 경비로 고생을 많이 했기 때문에 생각하기도 싫단다. 유치원 아들과 초등학교 2학년 딸을 둔 이순심(36) 주부는 시댁이 시골이다. 어린이날도 날이지만 어버이날을 맞아 할아버지 할머니 가슴에 꽃을 직접 달아드리고, 모내기 준비를 하는 시골모습을 체험하고 올 계획이다. 산교육이 진정한 교육이지 싶은 마음에서다.
◆ 어버이날
유난히 얇아진 호주머니에 어버이날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하는 일정을 묻자 의외의 반가운 말들이 튀어 나왔다. 아직은 살만한 세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려운 사람들이 더 기부를 많이 하는 것과 같은 맥락인 것 같다.
홀어머니와 함께 지내는 김희영(44·화정동) 주부는 “작년 어버이날, 어머니가 자주 가시는 경로당에 친구 분 아들이 찾아와 점심으로 자장면 한 그릇씩을 대접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어머님이 그 아들에게 중국집을 경영하냐고 물었더니 그냥 웃기만 했다는 것이다”며 작년 어버이날을 보내면서 느낀 점이 많았다는 말과 함께 이번 계획을 전한다.
“내 가족만을 생각하고 선물했는데 순간 많이 부끄러웠다. 지나다 보면 어르신들이 모여 앉아 화투를 즐기기도 하지만 먹을 것을 가져와 서로 나누어 드시는 것을 여러 번 보았기 때문이다”며 “올해 어버이날에는 우리도 어머니와 함께 하시는 경로당 어르신들에게 무엇인가를 대접할 계획이다”고 웃는다.
올 봄, 아버지를 가슴에 묻은 이성재(52·월산동)씨 역시 암 투병으로 돌아가신 날까지 하루가 멀다 하고 병실을 찾아오셨던 선친의 친구 분들을 찾아 술 한 잔씩 대접할 계획이며 돌아오는 길에는 선친의 산소에 성묘를 다녀 올 예정이라고 말한다.
즐겁고 유쾌한 발상을 가진 가족도 있었다. 처음에는 해외여행을 보내드릴까도 생각하다가 가족과 함께하는 것이 더 의미가 있을 것 같아 생각을 바꿨다는 김민석(46·사업)씨는 “부모님을 모시고 나주에 소재한 스파를 찾아 온천을 즐기고 가족 모두 서로 등을 밀어주는 어버이날을 가지려 한다”고 전한다.
해년마다 선물 선택으로 머리가 아팠던 정우석(45·가명)씨는 “홀로 되신 어머니를 모시고 깜짝 과거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고 귀띔한다. 이제는 일흔이 다 된 나이인 어머니를 모시고 함평 돌머리 고향에 가겠다는 것이다.
◆ 스승의 날
스승의 날을 어떻게 보내느냐는 질문에 김수화(가명·38)씨는 “내 자식을 맡아 주는데 인사라도 하는 게 도리 아니겠느냐. 그냥 남들 하는 대로 할 뿐이다”며 말 꼬리를 흐렸다. 남들 선물공세 하는데 바라만 볼 수 없다는 게 학부모들의 입장이다. 하지만 단순한 인사 정도가 ‘촌지’로 변질돼 스승의 날 관습처럼 버젓이 행해지고 있다는 게 문제다.
애초 스승의 날은 1964년 청소년 적십자단원이 퇴직한 교사를 방문해 위로하는 의미에서 시작됐다.
그랬던 것이 본래 의도와는 다르게 퇴색되면서 학부모와 교사를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이런 폐단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각도로 해석하는 노력들이 필요하다. 석산고에 다니는 김창현(가명)군은 “스승의 날이면 초등학교 때 담임을 찾아뵌다. 나에게는 인생의 멘토와 같은 분으로 해마다 직접 찾아가 인사를 드리고 있다”고 말했다. 현직교사와 재학생 간의 입장보다는 졸업생들이 모교를 찾는 쪽으로 눈을 돌리는 것도 행사를 기리는 방법이라는 것. 전교조 광주지부 김정섭 정책실장은 “졸업생이 모교를 방문하거나, 기억나는 교사에게 편지를 쓰는 것이 교사 입장에서는 소중한 선물”이라며 “교사와 학생이 함께하는 조촐한 학급문화로 진행하는 것이 오히려 의미있는 행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촌지에 대한 비판적 여론 때문에 교사도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 불로초등학교 한 교사는 “학부모들이 인터넷이나 전화로 고마움을 표시하는 등 오히려 따뜻한 말 한마디가 고맙고 보람을 느낄 때가 많다”고 전했다.
이은정·범현이·김영희 리포터 beauty02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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