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 만난 사람- 송파가족백일장 초등 운문부 대상 박은설 양

“벚꽃 구경 갔다가 큰 상까지 받게 됐어요”

지역내일 2009-04-25 (수정 2009-04-25 오후 3:16:04)

아빠의 문학 재능 물려받았지만 내 꿈은 성악가
지난 12일 석촌호수 벚꽃맞이 축제 중 열렸던 송파가족백일장. 이곳에서는 당일 발표된 주제에 따라 연령별로 나뉘어 운문과 산문분야의 경연이 벌어졌다. 꽃나무 그늘에 앉아 글 재주를 뽐내는 이들은 모두 아마추어들이다. 이들은 꽃 축제를 구경하러 온 사람들 틈에 끼어 긴장과 추억의 시간을 만들고 있었다. 이날 대회에서 초등부 운문분야 대상을 차지한 문덕초등학교 6학년 박은설 양(문정동, 13)을 만나봤다. 




그날 기분을 자연스럽게 써 나가다
“엄마, 아빠랑 벚꽃 구경하러 갔다가 백일장 대회에 참가하게 됐어요. 꽃구경 좀 하러 돌아다닌 후에 그날 들었던 생각과 기분을 종이에 써 내려갔어요. 어렵지 않게 술술 써지던데요.”
이날 발표된 시제는 ‘나무’와 ‘우리 동네’. 백일장이 열리는 장소가 벚꽃이 만발한 나무 아래인지라 자연스럽게 ‘나무’로 시제를 잡아 글을 써나갔다. 은설 양이 쓴 시의 제목은 <벚꽃 그늘에 숨다>이다. 함께 온 엄마, 아빠는 은설이가 글 쓰는데 몰두할 수 있게 자연스럽게 자리를 피해줬다.
사실 백일장 대회 참가는 은설이 아빠 박남근 씨의 우연을 가장한 숨은 의도가 있었다. 아빠 박 씨는 “문학의 색 다른 분위기를 백일장을 통해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면서 “이런 대회 참가가 처음이지만 내 자식인지라 최우수상 정도 받았으면 좋겠다고 욕심났었다”고 전했다.
이날 백일장에는 학교 단위로 선생님 지휘아래 참가한 초등학생들도 많았기 때문에 실제로 상을 받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은설 양은 “1시간 정도 걸려서 시 두 편을 완성해 제출했는데, 옆에 아이들은 함께 온 선생님이 제출하기 전에 한 번 씩 검토하더라고요. 저는 봐 주는 사람도 없어서 상을 받을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어요. 나중에 대상을 받았다는 소리를 듣고 너무너무 기뻤어요”라며 입가에 미소를 띠웠다.

아빠, 언니의 문학 재능이 흐르다
은설 양이 백일장에 참가한 것도 상을 받은 것도 이번이 처음이지만, 은설 양 집안에는 글을 쓰는 사람들이 많다. 친척들은 말할 것도 없고 문정동에서 19년째 ‘은비안경’을 운영하는 아빠 박남근 씨도 ‘서정문학’ 공모전을 통해 올 3월 등단을 한 시인이다. 또, 대학 3학년인 언니 은비 양도 중․고등학교 때 문예작품 공모, 글쓰기 대회 등 전국단위 대회를 휩쓸며 특별전형으로 중대 문예창작과에 입학했기 때문이다.
아빠 박 씨는 “집에서 흔하게 시집을 접하고 시 쓰는 모습을 보면서 은설이가 자연스럽게 영향을 받은 것 같다”면서 “내 경우는 조선, 중앙,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두 번 정도 도전하다가 안 되니까 잠시 꿈을 접어뒀는데, 올해 우연하게 공모전에 작품 응모를 했다가 기회가 됐다”고 얘기했다.
“장황하게 표현하지 않고도 단어 하나하나에 다양한 생각을 옮길 수 있는 것이 시의 매력”이라고 전하는 아빠 박 씨는 은설 양이 시의 묘미를 알고, 글 쓰는 재능을 키워봤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상금으로 갖고 싶었던 운동화 살 거예요
은설 양은 여러모로 예술적인 감각이 남다른 학생이다. 요즘은 성악가를 꿈꾸며 성악을 배우는 데 한참 빠져있다. 2년 전까지는 뮤지컬 배우를 꿈꾸며 어린이 극단 ‘뮤지컬 꿈동’에 소속돼 코엑스 같은 대형 무대에 5번 정도 서 본 경험도 있다. 아빠 박 씨는 “우리 은설이가 성악가가 되는 것보다 시인이 됐으면 좋겠다”고 얘기하자 은설 양은 “시를 쓰면 돈을 별로 못 벌 것 같아요. 글쓰기도 재미있지만 노래 부르는 것이 더 즐겁다”고 얘기해 모두를 웃음 짓게 만들었다.
이번에 받은 7만원의 상금으로 갖고 싶었던 운동화를 살 계획이라고 전한 은설 양은 “우연히 참석한 백일장에서 큰 상을 받아서 사실 글 쓰는 것에도 자신감이 생겼다”면서 “지금은 시인 되는 것이 꿈은 아니지만 나중에도 백일장 대회가 있으면 나가볼 생각이 있다”고 말했다. 아빠 박남근 씨는 “은설이의 꿈이 바뀐다면 한국 최고의 문단에 설 수 있도록 잘 이끌어주고 싶다”면서 “제 능력이 부족해서 걱정스럽기도 하지만 재능을 펼칠 수 있는 다양한 길들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김소정 리포터 bee401@naver.com


벚꽃 그늘에 숨다

박 은 설

벚꽃나무 속에서
숨바꼭질을 하는 아이들
벚꽃나무 속에 숨어
까르르 웃음소리에
꽃잎이 살랑살랑 머리 위에 떨어진다
뭉게뭉게 벚꽃구름이 조각구름 되어
이불같이 덮은 그늘에
강아지도 잠들고
꽃잎 그늘에 숨은
호수 밑 보이지 않는 물속에
물고기도 살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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