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 만난 사람 - 영어 읽어주는 할아버지 신동운 씨
“영어 읽어주는 시간이 사랑 나눔 시간이에요”
매월 둘째, 넷째 토요일 오전 10시 반이면 광진정보도서관 이야기방에서 ‘영어 읽어주는 할아버지’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아직 세 번밖에 진행되지 않았지만 이를 준비하는 할아버지 신동운(74‧광장동) 씨의 정성과 고민은 회를 거듭할수록 두터워진다. 영어를 매개로 아이들과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어 행복하다는 신동운 씨를 꽃이 만개한 지난 목요일에 만나봤다.
38년 동안의 캐나다 이민생활
일흔 네 살이라는 고희가 넘은 나이에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신 씨의 비결은 다름 아닌 ‘캐나다 이민생활’에 있었다. 신씨가 이민을 가게 된 해는 1970년도로 이전까지 모 대기업에서 식품연구원으로 일을 해왔다. 그는 “그 기업에서 라면을 최초로 만들었고 껌 공장에서도 근무한 적이 있었다”면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캐나다 대사관에 갈 기회가 있었는데 이것이 계기가 되어 캐나다 정부에서 이민을 권유받게 됐다”고 말했다.
그 때는 캐나다에서 아시아에 첫 이민을 개방한 시기였는데, 신씨는 6‧25때 아버지를 여읜 한국에서의 아픈 기억과 두 아들을 외국에서 한 번 키워보자는 마음을 안고 이민을 결심하게 됐다. 그렇게 낮선 이국땅에 도착한 뒤 근무한 곳이 큰 규모의 식품첨가물 회사였다. 당시 영어를 잘 하지 못했던 신씨는 그 회사의 연구실에서 일을 하며 기계를 다루기 위한 매뉴얼 등을 익히기 위해 열심히 영어공부를 했다.
“처음엔 영어 때문에 많이 힘들었어요. 어떻게 영어를 배워야 할 지 몰라 무조건 매뉴얼을 종이에 베껴 집에 와서 사전을 펴 놓고 일일이 번역을 했지요. 또 직장에서도 영어 모르는 것을 인정하며 도움을 요청했고요. 이렇듯 저녁에는 혼자서, 낮에는 캐나다 동료들의 도움 덕분으로 영어를 익힐 수 있었답니다.”
그렇게 신씨는 캐나다 이민 생활에 적응했고, 38년이 흐른 작년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봉사 위해 영어를 읽어주다
한국에 온 뒤 신씨는 시간적으로 여유가 많이 생겨 무언가 할 만한 게 없을까 생각했다. 그러던 중 이곳 광진정보도서관을 자주 오고 갔는데, 주민들을 위한 문화프로그램이 있어서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도서관 사서를 찾아갔다. 그는 “이민생활로 외국에 오래 있어서 영어를 할 수 있는데, 봉사할 만한 프로그램이 없는지를 사서에게 물어봤다. 그러자 ‘영어 읽어주는 할아버지’ 프로그램을 만들어 줬다”면서 자신이 도움이 될 만한 무언가를 찾을 수 있어 기뻤다고 말했다.
하지만 영어를 유창하게 하기는 해도 아이들을 가르쳐 본 경험이 없어 많은 고민을 했다고. 무엇보다 어느 연령대의 아이들이 올지 몰라 수준을 맞추는데 주의를 많이 기울였다. 그는 “비록 30분이지만 이 시간을 위해 서점에 가서 여러 교재를 검토하고 선정한 책의 내용을 보다 재미있게 전해주기 위해 달달 외웠다. 또 감정을 실어 읽어줄 수 있도록 준비하는 등 나름의 노력을 기울였다”고 전했다.
첫 시간에는
오히려 배울 수 있어 감사해요
광진정보도서관의 이 프로그램은 신씨에게 무엇보다 가르치면서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돼서 감사하다고 한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또한 질적으로 유익한 도움이 되기 위해 준비하는 시간이 가르치는 ‘기술’을 공부하고, 도움을 주고자 하는 ‘마음’을 전할 수 있어 기쁘다고. 또한 “네 살배기 꼬마하고 일흔 네 살 할아버지하고 무엇을 주고받고 하는 이 모습이 사랑 아니겠냐”며 웃는다. 아울러 그는 “한국의 영어 교육열이 대단하다. 하지만 지나친 경쟁의식으로 아이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침착한 마음으로 자연스럽게 접근하는 것이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말도 함께 덧붙였다.
윤영선 리포터 zzan-a@hanmail.net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