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일꿈

지역내일 2009-02-11
내일신문 밥•일•꿈 기고

현대해상 CS추진부 최민환 과장

올 봄에 둘째가 초등학교에 입학한다. 지난 주말에 입학을 위한 가장 상징적인 준비물인 책가방을 사러 백화점에 들렀는데, 아들 녀석이 새 책가방을 받아 들고 이만저만 좋아하는 게 아니었다. 유치원을 3년이나 다녔지만 초등학교에 입학한다는 것이 본인에게는 꽤나 의미 있는 일인가 보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바라보는 부모의 입장에서는 첫째가 입학할 때 한번 겪어 봤던 과정이라 첫째 때 보다는 덤덤한 것 같다.
가방만해도 첫째는 최고 비싼 신상품으로 사줬었는데, 둘째는 백화점 이월상품 코너에서 사줬다. 입학 전까지 교육도 마찬가지였다. 첫째는 인터넷이나 지인들에게서 어디가 좋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놀이방이니, 학습도구니 하며 적지 않은 비용과 시간을 투자했지만, 둘째는 특별한 교육기회나 교재구입을 한 기억이 별로 없다. 의식적으로 그런 것은 아니지만, 미안한 생각도 든다.

그나만 위안이 되는 건, 둘째가 그런 환경에 잘 적응한다는 것이다. 누나를 건사하느라 저한테는 신경 쓸 여력이 많지 않다는 걸 아는지 눈치도 빠르고 어떻게 해야 사랑 받을 수 있는 지를 아는 것처럼 행동한다.
손위의 누나가 하는 것을 함께 하며 자라서인지 배우는 것도 또래에 비해 빠르게 배운다. 누나의 학습지 영어를 같이 들으며 영어공부를 하고, 누나의 책을 함께 보는 등 학습 진행이 빠르다. 한 번은 누나가 구구단 외우는 걸 옆에서 듣더니 유치원생 주제에 벌써 구구단을 따라 하는 게 아닌가?
옷이나 책, 장난감 등은 새것을 쓰지 못하는 아쉬움도 있겠지만, 그래도 둘째라서 부수적으로 얻는 것도 있다. 그 중 하나가 대화능력, 또는 논리력이다. 둘째는 누나와 오랜 시간 다양하고 많은 놀이를 통한 경험이 축적되어서인지 또래의 형제가 없는 아이들보다 말하는 게 훨씬 논리적이고 명확하다. 때로는 좀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대화를 요구하기도 한다.

나는 요즘 결혼하는 후배들에게 꼭 자녀는 둘 이상을 낳으라고 이야기 한다. 육아문제가 사회문제로 대두될 정도로 아이를 키우기 어려운 환경이지만 형제자매는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아이가 처음 접하고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형제자매와의 관계 속에서 남을 배려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배워 아이의 인성발달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나 역시 맞벌이부부로 둘째를 가져야 하나를 고민했던 적이 있지만 돌이켜 보면 정말 잘한 결정이었다. 비록 아이 양육 때문에 집사람이 직장을 그만두게 되어 경제적으로는 전에 비해 풍족하지 못하지만, 집사람이 든든히 지켜주는 가정의 안락함과 두 아이들이 주는 행복이란 것은 경제적 이득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할 정도로 크다.

사회에 진출하고 결혼을 하면 성인이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아이들이 점점 커갈수록 부모인 나도 조금씩 같이 성장하는 것 같다. 아이를 키우면서 배우게 되는 삶의 가르침이 이전의 어떤 교육보다도 내 생활과 가치관에 많은 변화를 주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방법과 더불어 사는 방법 그리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까지..
내게 많은 것을 알게 해 준 우리 아이들에게 감사하며 더 많이 사랑하고 더 훌륭한 부모가 되도록 노력해 나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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