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석에서 피어난 문학사랑"
“어두운 기운도 거두는 고귀한 빛의 물결희망이여 너는 살아있구나” (김가영 作 ''희망'' 중에서)
지역내일
2009-01-20
(수정 2009-01-20 오후 5:54:24)
환하게 웃으며 리포터를 응대하는 그녀의 모습은 희귀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라도 하기엔 너무도 싱그러워 보였다. 24시간 인공호흡기를 달고 생활하며 17년 동안이나 계속된 고된 투병생활을 겪은 그녀에게서 병고와 무기력의 흔적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사진이 함께 게재 될 것이란 리포터의 말에 제일 잘 나온 사진을 써달라며 거울로 자신의 모습을 꼼꼼히 살피는 모습이 여느 아가씨와 다를 바 없었는데. 강원도 장애인 문학상에서 우수상을 차지할 만큼 글쓰기에도 남다른 재주와 애정을 가진 김가영씨(34)의 사연을 들어보았다.
투병 생활 중 자연스럽게 시작하게 된 문학.
“저는 폼페라는 희귀병을 앓고 있어요. 이 병은 만성호흡부전을 유발하는 세계적으로 드문 신경 근육성 희귀 질환입니다. 저 역시 근육이 점점 약화되어 하반신을 전혀 쓸 수 없게 되었어요. 간병인의 도움 없이는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것이 불가능 하죠. 신체 활동이 제한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색 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지더군요.” 가영씨가 문학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따로 없었다. 생활리듬이 일반인보다 느리다 보니 사물 하나도 여유를 갖고 보게 되었단다. “하루 종일 누워 있다 보니 창문 사이로 스며드는 봄바람도 꽃향기도 제겐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상상력의 원천들이예요. 직접 볼 수 없으니 그저 냄새로 기운으로 계절을 느끼고 사물을 인지하죠.” 신체 기능은 저하되었지만 사고력이나 감각만큼은 더욱 예민해지고 날카로워졌다고. “CBS의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면서 이외수 선생님과 개인적 친분을 맺게 되었어요. 처음 방송국 측에서 출연을 제안했을 때 거절하셨다고 해요. 그래서 PD 선생님이 저의 시 몇 편을 이메일로 보내드렸는데 그걸 읽고 마음이 움직이셨다고 합니다. 선생님과의 만남 이후 작가라는 꿈이 조금 더 구체화 되었어요. 문학수업을 본격적으로 받아보고 싶다는 바람도 생겼고요. 그런데 알아보니깐 검정고시와 수능시험을 보려면 직접 고사장에 가야 한다고 해서 꿈을 접었어요. 제가 한번 움직이려면 동원해야 하는 인원과 비용이 만만치 않거든요.” 그나마 손은 아직 굳지 않아 노트북으로 글을 쓸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다는 가영씨. 인고의 세월을 감당해낸 아담한 몸체를 가래를 뱉어 내느라 연신 들썩이면서 오히려 괜찮다며 리포터를 안심시켰다.
“문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시와 문학이라는 카페를 개설하고 운영한지 어느덧 4년이 지났네요. 누워만 있어 인간관계가 제한되어 있었는데 카페를 꾸리면서 너무나 좋은 사람들을 많이 알게 되었어요. 저에게 끊임없이 애정과 용기를 주는 고마운 분들입니다. 시작활동도 더욱 활발해 지고 관심영역도 확대 되었어요. 제 자신이나 저의 글이 세상에 떳떳이 나아갈 수 있도록 첫 무대가 되어준 곳이 바로 이곳입니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문학으로 위로받다 “시를 쓰면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희석시켜요. 제 뒷바라지 하느라 여행 한번 편히 다녀오시지 못했어요. 그래도 늘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던 어머니였죠. 일을 마치고 새벽 5시에 돌아와 그 피곤한 와중에도 제 하루일과를 고분고분 들어주며 함께 수다도 떨고 했었는데. 어머니는 제게 가장 좋은 친구였고 가장 든든한 지지자였으며 가장 절실한 사람 이였어요.” 2년 전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안타깝게 생을 달리한 어머니. 어머니가 아닌 간병인의 손길이 처음엔 낯설었다고. 그 허전함과 막막함을 몰아내기 위해 글을 썼단다.
희망을 증명해 보이는 사람.
“무료임상실험대상자로 선정되어 이주에 한 번씩 주사를 맡았어요. 그런데 지난주부터 주사약 공급이 전면 중단되었어요. 세금문제 때문이라고 하는데 이일이 조속히 해결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제 몸 상태를 더 나빠지지 않도록 유지해 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자 최선이 주사약이거든요.” 라며 된다 된다 잘 된다라는 긍정적인 생각을 한껏 발산중이라고 한다.
“전 슬픔을 감염시키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요. 오히려 희망을 증명해 보이는 사람이고 싶어요. 때론 여행이라는 것도 하고 싶고 바깥 세상에 대해 궁금할 때가 많아요. 지금 춘천의 곳곳을 머릿속에 복원해 내려면 어린 시절의 기억에 의존해야 하거든요. 걷고 싶다는 생각 물론 하지만 지금 제 처지를 비관하진 않아요. 전 어쨌든 지금 여기 이렇게 살아 있잖아요. 앞으로 글쓰기 공부에 박차를 가할 생각입니다. 향후 10년 안에 꼭 책을 내고 싶어요. 목표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전 하루하루가 설레고 보람차요.”
침대에 붙박인 채 살고 있지만 상상력 하나 만으로 세계 여행도 거뜬히 할 수 있다고 너스레를 떨어대는 그녀. “절망의 이빨에 심장을 물어 뜯겨 본 자만이 희망을 사냥할 자격이 있다.” 는 이외수 씨의 말처럼 일찍이 절망을 경험했지만 이젠 희망의 산증인으로 우뚝 선 그녀의 용기 있는 삶에 응원을 보태고 싶다.
시와 문학 http://cafe.daum.net/sisarang76
김민영 리포터 argus_@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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