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의 최전선 공단을 가다]인천 남동공단

“체불로 생활비 카드로 돌려막아”

지역내일 2009-01-20
‘공장 판다’ 현수막 곳곳 펄럭 … 재고물량만 쌓여

16일 오후 5시 인천 남동공업단지. 강추위가 한풀 꺾인 날씨였지만 이곳 남동공단 분위기는 냉랭했다. 공장 부지를 임대한다는 현수막이 걸려 있고, 기계돌아가는 소리로 시끌시끌해야 할 공장들은 조용했다. 공장 한 켠에는 재고물량들이 쌓여있었다. 문 닫은 공장 다섯곳을 지나자 마침 한 공장에서 일을 하는 노동자를 만났다. 그는 “일은 하고 있지만 벌써 두 달 치 월급을 못 받았다. 다른 데 갈 데도 없다. 어디 가나 감원 바람이 부는데 어떻게 그만두겠나. 네 식구가 살다보니 넘치는 생활비는 카드로 돌려막으면서 생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모(여,42)씨가 일하는 ㅅ부품회사는 2차 벤더업체로 원청업체에서 납품을 거절하는 바람에 대금회수를 전혀 못 하고 있었다. 회사는 휴업신청을 해서 30명이 넘는 직원이 순환휴직을 하고 있는 상태였다. 직원들 모두 지금 고비만 넘기자는 마음으로 2월에 대우차가 공장 가동을 재개하는 것만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이 씨는 “남편은 자영업을 하는데 남편도 만날 어렵다, 힘들다 소리뿐이에요. 이러다 더 어려워지면 아파트 담보로 잡고 대출받아야 할 거고 더 힘들어지면 신용불량자가 되겠죠. 신용불량자는 되고 싶어서 되나요. 그래도 힘들다, 힘들다 죽는 소리 하긴 싫네요.”라며 애써 웃음을 지어보였다.
길을 따라 쭉 들어가다 ㄷ업체에서 품질관리 업무를 하는 조 모(37)씨를 만났다. “곧 설이지만 고향에도 못 내려갈 것 같아요. 봉급이 70%로 줄었으니 부모님 용돈도 아내와 상의해서 조금 줄여야겠죠. 원래 올해 자녀계획을 세웠는데 요즘 상황이 이래서 더 미뤄야 할 것 같습니다.”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ㄷ업체는 생산제품의 95%를 GM대우에, 5%는 쌍용에 납품하고 있어 더 타격이 컸다. 현재는 미납건과 수출 건수를 위한 라인만 겨우 돌리고 있고 이미 2명이 권고 퇴직했다. 원래 제조업 쪽에 관심을 두고 나중에 라인 하나 정도를 운영할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조씨는 이번 일을 겪고 나서 마음이 바뀌었다.
조씨는 “제조업에는 정부 지원도 없고 세금만 따박따박 가져가는 것 같아요. 경기를 크게 타니까 할 엄두도 안 나고. 돈을 모으면 나중에 서비스업쪽으로 나가야겠어요.”라고 토로했다.
방향을 틀어 한참을 걷다보니 공장 라인은 가동을 멈췄는데 사무실에 불이 켜져 있는 곳이 있다. 들어가서 기웃거려보니 사무실에서 혼자 사무를 보고 있던 ㅎ업체의 엄 모(27)씨가 나와 “우리 회사도 대우 중단과 동시에 라인 가동을 멈췄죠.”라며 운을 뗀다. “서류 업무 정리할 게 있어서 남아 있었어요.” 요즘 분위기가 어떠냐고 묻자 어두운 표정을 하며 “다들 어렵죠. 우리 회사도 휴업 신청해서 아마 이번 달 월급부터는 70%정도 밖에 안 나올 거에요. 받아봐야 알겠지만, 생산직에 근무하시는 40~50대 상사들은 자녀학자금 때문에 벌써 가불을 해가는 경우도 있고. 그런 걸 보면 아기를 낳을 엄두가 안 생기죠.”라고 말했다. ㅎ업체에는 2명의 외국인 노동자가 있는데 이번 휴업 시기에 맞춰 결혼을 한다고 고국으로 들어갔다고 했다.
결혼을 하고 고국에 있다가 상황이 다시 좋아지면 연락을 주겠다고 하고 회사는 일단 외국인 노동자를 내보냈다. 기계, 전기전자 산업 중심의 남동공업단지는 현재 4500여 업체가 입주해 있으며 이곳에서 밥벌이를 하는 인원은 7만 명이 넘는다. 그 중 GM대우 1차 협력업체 57개, 쌍용차 1차 협력업체 3개를 포함해 약 600개 업체가 자동차 회사에 납품을 하는 1, 2, 3차 벤더들이다. 지난달 GM대우가 전 라인 생산을 중단하고 난 뒤, 이번 달에만 경인종합고용지원센터에 휴업 계획 신청을 한 사업장이 158개에 이른다. 어림잡아 1만 명 정도가 되는 자동차 부품 회사 직원들은 임금 삭감에 구조조정 삭풍까지 불어 더욱 힘든 겨울을 나고 있는 것이다.
6시 반이 넘어서자 공단 서쪽으로 어느덧 해가 기울고 잔업이 없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퇴근을 하기 위해 하나둘 차에 올라타기 시작했다. 구내매점을 운영하는 정 모(35)씨는 “예년 같으면 잔업에, 야근에 구내식당이 붐볐을텐데 요즘은 다들 칼퇴근을 한다”며 안타까워했다. 어느새 길가에 주차된 차들이 사라지고 공단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은 공단 내에 숙소가 있는 몇몇 외국인 노동자들뿐이었다.
박소원 기자 hope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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