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명절 설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주부들에게는 오랜만에 가족과 친지를 만난다는 반가움보다 ‘또 며칠 고생하겠구나’는 푸념이 앞서는 것이 사실. 몸으로 때워야 하는 신체적인 부담감에서부터 눈에 보이지 않는 미묘한 감정싸움에까지 벌써부터 마음이 지치기만 한다. ‘남들 편만 들어주는’ 남편은 옆에 있어도 전혀 도움이 되질 않고... 주부의 마음은 주부가 안다고 설을 맞아 서글프기만 한 주부들이 그 속내를 털어놨다.
손자들 성적이 곧 며느리 서열?
주부 양희(43·명일동)씨는 올해도 시댁을 지킬 유일한 며느리가 자신이 될 것이라는 불안감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4형제 중 셋째 며느리인 양씨. 아주버님 두 분은 모두 전문직에 종사하고 형님들 역시 엘리트들이다. 그래서인지 자녀들에게 쏟아 붓는 형님들의 교육에 대한 열의는 뉴스에 나오고도 남을 정도. 아이들이 중학생이 되면서 특목고 준비니 인증시험이니 하며 명절에 발길을 끊은 형님들이 야속하기만 하다. 더 얄미운 것은 남편. ‘역시 우리 집안 머리가 좋다니까...아빠 머리가 좋으니까 자식들이 다 공부를 잘 하는 거야’며 은근히 형제애를 발휘하는 남편을 보면 ‘우리 아이나 걱정하라’는 말이 입 속에 맴돈다. 결혼한 지 3년째인 아랫동서의 핑계거리는 직장. 며느리 중 유일하게 직장생활을 하는 동서는 결혼한 후 딱 한 번 명절날 모습을 보여줬다. 일이 많아 명절 다음 날도 출근해야 한다는 것이 첫 번째 불참 이유였고, 임신 초기라 차를 오래 타는 것이 너무 힘이 든다든가 아이가 열이 너무 높아 도저히 갈 수가 없다는 등의 다양한 이유가 쏟아졌다.
양씨는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명절에 시댁에 오지 않아도 아이들이 명문대와 외고에 척척 붙으니까 어머님이 아예 ‘올 생각도 마라’는 식으로 형님들을 두둔해줬다”며 “공부가 다가 아니라고 말씀하시던 어머님이 이제와선 ‘걔들이 애들 교육 하나는 정말 잘 시켜’라고 말씀하실 때면 정말 배신감마저 느껴진다”고 말했다.
그럴 때마다 양씨는 올해 중학교에 입학하는 딸아이에게 바라는 것이 많아진다. ‘딸아, 제발 공부 잘해서 부엌데기인 이 엄마의 서열도 좀 올려 다오’라고.
신정은 시댁에서, 구정은?
박희정(39·잠실동)씨의 시댁은 신정을 쇤다. 결혼 초에는 신정을 쇤다는 그 자체도 박씨에게는 불만이었다. “12월 31일에는 왠지 설레고, 뭔가 특별하게 새해를 맞이하고 싶은 욕심이 있잖아요. 근데 신정을 시댁에서 보내야 하니 연말의 설렘이 부담감으로 변해버렸어요.” 하지만 집안의 전통을 바꿀 수는 없는 일. 적응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박씨는 이내 마음을 다잡고 기쁜 마음으로 설을 맞이했다. 그런데 박씨는 구정에까지 시댁에서 보내야 하는 것에 불만이 터져버렸다. 박씨는 “신정 때는 쉬는 날이 이틀 정도 밖에 안 돼서 친정에 갈 시간이 없는데, 구정에까지 시댁에서 2~3일을 보내야 하니 친정에 못 가볼 때가 많다”며 “정말 어머님이 너무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고 말했다. 제일 화가 나는 것은 연말에 스키장이니 해맞이여행이니 해서 시댁을 찾지 않던 시누이가 꼭 구정 때는 뒤늦게 나타난다는 것. ‘오늘 안 보면 언제 또 얼굴 보겠냐’며 얼굴을 보고 가라는 어머님 말씀에 부부 싸움을 한 것도 여러 차례. 뭔가 해결책을 찾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박씨가 감행한 것은 남편에게 눈물로 호소한 것이다. 아들이 없어 적적한 친정에 조금만 일찍 가지는 것이 그녀의 호소 내용이었다. 그녀의 눈물이 남편에게 통한 걸까. 설날 아침 떡국을 먹고는 이내 짐을 챙겨 친정으로 향한 지 2년, 박씨는 그날 이후 남편과 어머님에게 더 큰 사랑과 감사함을 느끼며 명절을 보내고 있다. 올해는 과연?
시댁에서도 일, 친정에서도 일
결혼 17년 차 주부 전용희(47·길동)씨는 명절이 다가오면 벌써부터 몸이 피곤해진다. 외동아들인 남편을 둔 덕분에 시댁에서의 일은 끝이 없고, 친정에서도 딱히 일 할 사람이 전씨 뿐이기 때문이다. 1남 1녀의 막내인 전씨는 “친정 오빠가 미국으로 이민을 간 후로는 사실상 친정 부모님께는 아들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시댁에서보다 친정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더 심하다”고 하소연했다. 전씨에게 친정은 남들처럼 편히 쉴 수 있는 곳이 아니라 시댁보다 이것저것 살펴야 할 것이 더 많은 곳이다. 관절염으로 거동이 불편한 친정어머니를 보며, 명절 때 전화 한통으로 모든 걸 때우려는 오빠나 올케 언니에 대한 원망도 크다. 전씨는 “우리나라에서는 명절 때 시댁에 갈 때 선물과 용돈을 챙겨가는 게 당연한 일인데도 오빠는 그런 선물을 전혀 하지 않는다”며 “사실 처음에는 마지못해 가다가도 점점 마음이 담기게 되는 것이 시댁인데, 우리 부모님은 그런 아들과 며느리가 없는 게 안 돼 보인다”고 말했다.
친정의 상황이 이렇다보니 시댁에서의 명절이 힘겨워도 남편에게 하소연할 수도 없다고. ‘처가에 가면 당신 일 더 많이 하잖아’ 라는 남편의 말을 듣고 난 후부터는 외며느리의 힘든 명절나기에 묵묵하게 대처하고 있다. 그래도 전씨는 남편에게 마지막 희망의 불씨를 찾고 싶다. ‘당신이 아들 노릇해 줄 수도 있잖아... 나는 시댁에서 딸처럼 당신은 친정에서 아들처럼 그렇게 살 순 없을까?’라고.
박지윤 리포터 dddodo@hanmail.net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손자들 성적이 곧 며느리 서열?
주부 양희(43·명일동)씨는 올해도 시댁을 지킬 유일한 며느리가 자신이 될 것이라는 불안감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4형제 중 셋째 며느리인 양씨. 아주버님 두 분은 모두 전문직에 종사하고 형님들 역시 엘리트들이다. 그래서인지 자녀들에게 쏟아 붓는 형님들의 교육에 대한 열의는 뉴스에 나오고도 남을 정도. 아이들이 중학생이 되면서 특목고 준비니 인증시험이니 하며 명절에 발길을 끊은 형님들이 야속하기만 하다. 더 얄미운 것은 남편. ‘역시 우리 집안 머리가 좋다니까...아빠 머리가 좋으니까 자식들이 다 공부를 잘 하는 거야’며 은근히 형제애를 발휘하는 남편을 보면 ‘우리 아이나 걱정하라’는 말이 입 속에 맴돈다. 결혼한 지 3년째인 아랫동서의 핑계거리는 직장. 며느리 중 유일하게 직장생활을 하는 동서는 결혼한 후 딱 한 번 명절날 모습을 보여줬다. 일이 많아 명절 다음 날도 출근해야 한다는 것이 첫 번째 불참 이유였고, 임신 초기라 차를 오래 타는 것이 너무 힘이 든다든가 아이가 열이 너무 높아 도저히 갈 수가 없다는 등의 다양한 이유가 쏟아졌다.
양씨는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명절에 시댁에 오지 않아도 아이들이 명문대와 외고에 척척 붙으니까 어머님이 아예 ‘올 생각도 마라’는 식으로 형님들을 두둔해줬다”며 “공부가 다가 아니라고 말씀하시던 어머님이 이제와선 ‘걔들이 애들 교육 하나는 정말 잘 시켜’라고 말씀하실 때면 정말 배신감마저 느껴진다”고 말했다.
그럴 때마다 양씨는 올해 중학교에 입학하는 딸아이에게 바라는 것이 많아진다. ‘딸아, 제발 공부 잘해서 부엌데기인 이 엄마의 서열도 좀 올려 다오’라고.
신정은 시댁에서, 구정은?
박희정(39·잠실동)씨의 시댁은 신정을 쇤다. 결혼 초에는 신정을 쇤다는 그 자체도 박씨에게는 불만이었다. “12월 31일에는 왠지 설레고, 뭔가 특별하게 새해를 맞이하고 싶은 욕심이 있잖아요. 근데 신정을 시댁에서 보내야 하니 연말의 설렘이 부담감으로 변해버렸어요.” 하지만 집안의 전통을 바꿀 수는 없는 일. 적응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박씨는 이내 마음을 다잡고 기쁜 마음으로 설을 맞이했다. 그런데 박씨는 구정에까지 시댁에서 보내야 하는 것에 불만이 터져버렸다. 박씨는 “신정 때는 쉬는 날이 이틀 정도 밖에 안 돼서 친정에 갈 시간이 없는데, 구정에까지 시댁에서 2~3일을 보내야 하니 친정에 못 가볼 때가 많다”며 “정말 어머님이 너무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고 말했다. 제일 화가 나는 것은 연말에 스키장이니 해맞이여행이니 해서 시댁을 찾지 않던 시누이가 꼭 구정 때는 뒤늦게 나타난다는 것. ‘오늘 안 보면 언제 또 얼굴 보겠냐’며 얼굴을 보고 가라는 어머님 말씀에 부부 싸움을 한 것도 여러 차례. 뭔가 해결책을 찾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박씨가 감행한 것은 남편에게 눈물로 호소한 것이다. 아들이 없어 적적한 친정에 조금만 일찍 가지는 것이 그녀의 호소 내용이었다. 그녀의 눈물이 남편에게 통한 걸까. 설날 아침 떡국을 먹고는 이내 짐을 챙겨 친정으로 향한 지 2년, 박씨는 그날 이후 남편과 어머님에게 더 큰 사랑과 감사함을 느끼며 명절을 보내고 있다. 올해는 과연?
시댁에서도 일, 친정에서도 일
결혼 17년 차 주부 전용희(47·길동)씨는 명절이 다가오면 벌써부터 몸이 피곤해진다. 외동아들인 남편을 둔 덕분에 시댁에서의 일은 끝이 없고, 친정에서도 딱히 일 할 사람이 전씨 뿐이기 때문이다. 1남 1녀의 막내인 전씨는 “친정 오빠가 미국으로 이민을 간 후로는 사실상 친정 부모님께는 아들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시댁에서보다 친정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더 심하다”고 하소연했다. 전씨에게 친정은 남들처럼 편히 쉴 수 있는 곳이 아니라 시댁보다 이것저것 살펴야 할 것이 더 많은 곳이다. 관절염으로 거동이 불편한 친정어머니를 보며, 명절 때 전화 한통으로 모든 걸 때우려는 오빠나 올케 언니에 대한 원망도 크다. 전씨는 “우리나라에서는 명절 때 시댁에 갈 때 선물과 용돈을 챙겨가는 게 당연한 일인데도 오빠는 그런 선물을 전혀 하지 않는다”며 “사실 처음에는 마지못해 가다가도 점점 마음이 담기게 되는 것이 시댁인데, 우리 부모님은 그런 아들과 며느리가 없는 게 안 돼 보인다”고 말했다.
친정의 상황이 이렇다보니 시댁에서의 명절이 힘겨워도 남편에게 하소연할 수도 없다고. ‘처가에 가면 당신 일 더 많이 하잖아’ 라는 남편의 말을 듣고 난 후부터는 외며느리의 힘든 명절나기에 묵묵하게 대처하고 있다. 그래도 전씨는 남편에게 마지막 희망의 불씨를 찾고 싶다. ‘당신이 아들 노릇해 줄 수도 있잖아... 나는 시댁에서 딸처럼 당신은 친정에서 아들처럼 그렇게 살 순 없을까?’라고.
박지윤 리포터 dddodo@hanmail.net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