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난독증 이야기

지역내일 2008-12-01

대학생 수정씨는 글을 읽으면 산만해져서 오래 읽지 못한다.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고자 교대에 지원했으나 자신이 책을 잘 읽지 못한다는 자괴감에 과연 훌륭한 선생님이 될 수 있을까 두려워 교사의 꿈을 포기하려고 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수정씨가 호소하는 증상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문장을 읽다가 줄이 바뀌면 어디까지 읽었는지 종종 헷갈리곤 해서, 눈으로 읽지 못하고, 손가락으로 짚어가면서 읽곤 했으며, 글씨가 잘게 씌어 있는 책은 어지러워 확대복사를 해서 읽곤 했다. 이런 식으로 책을 읽다 보니깐 읽어도 돌아서면 무슨 얘기인지 기억이 나질 않았으며, 책만 읽으면 눈이 피로해져서 잠이 오곤 했다.
필자가 초등학교 시절에는 책을 읽을 때 팔을 뻗어 책을 보고 읽으라고 교육시켰다. 간혹 친구들 중에는 책을 읽을 때 한 글자씩 손으로 짚어가며 읽는 아이들도 있었고, 문장 아래에 자를 대고 읽는 아이들도 있었다. 이런 아이들은 상대적으로 읽기 속도가 다른 아이들보다 느리고, 글에 대한 이해도가 저조했다. 긴 문장을 읽으면 문장 끝부분을 읽을 때 앞부분을 잊어버려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하기도 했다. 이런 아이들을 보고 어른들은 읽기 습관이 나쁘다고 야단을 치곤 했다. 글을 읽을 때는 30센티미터 거리를 두고 눈으로 읽으라고 교정해 주기도 했다.
그러나 이 아이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난독증이 있는 경우가 많다. 난독증은 시각적 난독증, 청각적 난독증, 운동 난독증이 있는데, 이중 시각적 난독증의 경우 안구의 운동이 원활하지 못하거나, 시야가 좁기도 하고, 얼렌증후군을 겪고 있을 수도 있다. 이 아이들은 읽기 습관이 나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어려움을 나름대로 보상하는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수정씨 역시 얼렌증후군을 겪고 있었다. 얼렌증후군은 심리학자인 헬렌 얼렌 여사가 보고한 시각적 난독증의 하나로 시력에는 문제가 없으나, 시각 정보가 뇌에서 처리되는 과정에서 이상을 보여 특정 색상에 광과민성을 보이는 증상이다. 얼렌 검사를 통해 광과민성을 유발하는 색상을 차단하는 필터 렌즈를 착용함으로써 증상을 호전시키고 읽기 능력을 개선할 수 있다.
얼렌증후군은 아직 우리나라에 많이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대학생 정도가 되어서야 클리닉에 찾아오곤 한다. 어떤 학생들은 검사 도중 글이 잘 선명하게 잘 보이는 것을 경험하면서 울기도 하고, 비명을 지르기도 한다. 많은 학생들은 이미 대학생임에도 불구하고 수학능력 시험을 다시 준비하겠다고 하기도 한다. 그 동안 자신이 공부를 못했던 것이 산만하거나, 게을러서가 아니라 글이 잘 안보여서였다는 점이 억울하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공부하기 싫은 사람은 없다. 필자도 공부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라는 점에는 적극 동의한다. 그러나 비록 공부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더라도 매우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공부를 잘 하는 학생은 부가적으로 얻는 인센티브가 많다. 지금은 조금 상황이 달라지긴 했으나, 필자가 초등학교 시절에는 성격이 나빠도 반에서 일등 하는 학생은 반장으로 선출되는 경우가 많았다. 공부를 잘하면 ‘리더십도 있을 것’이라고 사람들이 믿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선생님과 부모님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인센티브도 있다.
이런 여러가지 인센티브를 포기하면서까지 공부하기 싫어하는 아이들이 있다. 이들은 처음부터 공부하기가 싫었던 것이 아니다. 어른들이 모르는 사이에 자기 나름대로 노력을 해 보다가 뭔가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좌절하게 되어서 공부가 싫어진 것이다. 이런 아이들에게 어른들은 “공부 좀 하라”고 쉽고 무책임하게 잔소리를 한다. 결과적으로 아이들은 자기 스스로를 ‘게으른 아이’, ‘산만한 아이’, ‘공부 못하는 아이’라고 낙인찍고 좌절한다. 결과적으로 공부를 못하는 것보다, 자존감이 떨어지는게 더 무섭다.
최근에는 많은 기술과 의학의 발달로 공부를 못하는 원인을 신경학적으로 찾고 분석해서 교정해주는 방법이 많이 개발되었다. 공부를 나름 열심히 하는데 성적이 잘 나오지 않는다던가, 좀처럼 집중과 몰입을 하지 못하고 산만하다던가, 공부보다는 게임에 매달린다던가, 책읽기 속도가 남보다 느리거나, 책을 읽긴 읽었는데 의미 파악이 잘 안된다던가 하는 아이들은 잘 검사하고 진단해 보면 뭔가 신경학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교정이 가능한 경우도 많다.
이런 아이들을 좌절시키는 것 보다는 전문 클리닉을 찾아 정확한 원인을 알고 적절한 교정 훈련을 해 주는 것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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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지수, 정신과 전문의
BFC 학습클리닉
(02)3412-7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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