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 만난 사람 … 주민센터 강사 결혼이민자 록산 · 리메디오스 씨
한국에서 영어 가르치게 되어 너무 행복해요!
다문화가정여성 원어민 강사육성 프로그램의 결실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잠실4동 주민센터에서는 아주 특별한 수업이 진행된다. 남편의 나라 한국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 다문화가정 여성이 가르치는 교육프로그램이 그것이다. 송파구가 추진하고 있는 다문화가정여성 원어민 강사 육성 프로그램으로 이들은 당당하게 우리 사회에 동참하는 일꾼으로 변신했다.
다문화가정여성 원어민 강사
송파구는 지난 두 달 동안 다문화가정여성 12명에게 교수법 교육을 진행하는 등 다문화가정여성 원어민 강사 육성 프로그램에 박차를 가해왔다. 그 성과가 드러난 것이 지난 10월 초, 그 중 3명이 최초 발령을 받은 것이다. 현재 잠실4동 주민센터에는 하이즐 록산 로렌조(35․필리핀), 판초 리메디오스 아카윌리(36․필리핀), 요꼬야마 미카(40․일본) 씨가 각각 영어와 일어를 가르치고 있다. 벌써 이들의 활약상이 입소문이 나 강의를 듣기 위해 추가 접수문의가 계속되고 있다고. 이들의 강의가 최고의 인기 강의로 부상한 데는 3개월에 1만5000원에 불과한 저렴한 수강료도 한 몫을 차지했다. 현재 잠실4동 주민센터에는 성인영어 2반, 어린이 영어 2반, 일본어 1반이 운영되고 있다. 가을하늘이 유달리 드높았던 지난 11일 막 수업을 끝내고 휴식을 취하고 있는 하이즐 록산 로렌조씨와 판초 리메디오스 아카윌리씨를 만났다. 외모는 필리핀인이었지만 남편과 시댁 이야기를 쏟아내는 그들의 모습은 영락없는 한국 아줌마의 모습이었다.
록산 “열심히 가르치는 모습 보여줄게요”
한국에 온 지 10년 차인 록산(Roxanne · 석촌동)씨는 초등학교 3학년 아들과 4살배기 딸을 둔 주부다. 지난 10월 1일부터 잠실4동 주민센터에서 영어를 가르치게 된 그녀는 이곳에서 지역민들과 아이들을 만나는 것이 마냥 즐겁기만 하다고.
“모두들 편안하게 대해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수강생들이 빠지지 않고 수업에 참여하는 것이 너무 행복하고 좋아요. 이제는 친해져서 부담 없는 이야기를 나누기도 해요.”
간간이 수업이 끝나고 음료수를 내놓는 수강생에게서 한국인의 정을 느낄 수 있고, 사람들의 친절에 이웃의 정도 느낀다고 한다. 록산씨는 “좋은 기회를 얻게 돼서 감사하게 생각하면서도 ‘잘 해야겠다’는 욕심도 많이 생긴다”며 “영어를 잘 가르치는 선생님들이 많지만,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하는 선생님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했다. 사랑받는 선생님으로 기억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그녀의 모습은 이미 학생들을 위해 애쓰는 사랑스런 선생님의 모습이었다.
‘원어민 강사’라는 이름은 그녀를 자랑스러운 엄마로 만들기도 했다. 큰아들이 친구들에게 엄마를 소개할 때 예전에는 ‘필리핀 사람’이라고만 말했지만 이제는 ‘필리핀 영어 선생님’으로 자랑까지 한다고.
“엄마가 필리핀 사람이라고 하면 친구들이 그냥 지나치지만, 영어를 가르친다고 하면 ‘진짜?’라며 관심을 보인다는 말에 참 자랑스러웠다”며 “애들을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지금의 일을 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리메디오스 “아이들이 너무 사랑스러워요”
유창하게 영어를 구사하는 리메디오스(Remedios ․ 가락동)씨 역시 잠실4동 주민센터 원어민영어교실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필리핀에서 10년간 초등학교 교사로 일했던 리메디오스 씨는 한국에서 다시 ‘선생님’으로 아이들 앞에 섰다. 그녀가 교사가 된 것은 아이들을 너무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그래서 지금 가르치는 아이들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행복감을 느낀다고 한다. 리메디오스 씨는 “필리핀에서 학생들을 가르쳐서인지 처음 아이들을 가르칠 때도 전혀 긴장되거나 떨리지 않았다”며 “애들과 하는 시간이 마냥 좋기만 하다”고 말했다.
성인반과 어린이반 모두를 맡고 있는 그녀는 한국말이 서툴다. 한국말이 유창하지 못하지만 수업을 하는 데 있어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른반은 물론 아이들반에도 영어를 잘 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영어를 잘 알아듣지 못하는 친구들에게 한국말로 설명해주는 아이들을 보면서 ‘정말 한국 아이들은 영어를 잘 하는구나’고 느껴요.”
리메디오스 씨는 결혼 3년차로 4살 아들을 둔 초보엄마다. 한국에서의 생활 또한 록산 씨에 비하면 초보다. 한국의 겨울이 ‘머리가 아플 정도로 춥다’고 표현하는 그녀에게 한국생활 베테랑 록산씨는 ‘2~3년만 더 지나면 익숙해질 것’이라고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기도 했다. 고국을 떠나 다른 나라에서 와서도 자신의 꿈을 펼치며 생활을 척척 해내는 억척주부 록산 씨와 리메디오스 씨. 많은 사람들에게 꾸준히 사랑받는 인기 선생님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해 본다.
박지윤 리포터 dddod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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