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 만난 사람- 얼음조각가 이원택 씨

차가운 얼음으로 세상을 따뜻하게 하는 사람

지역내일 2008-11-23 (수정 2008-11-23 오후 1:10:17)

방이동에 아이스갤러리 운영…얼음조각체험 가능해
각종 축하연에서 빠질 수 없는 장식물이 얼음조각이다. 투명한 얼음조각은 생동감과 웅장함으로 연회장의 분위기를 한껏 높여주기 때문. 몇 해 전부터는 지방의 겨울축제에서 대규모 얼음조각 작품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다. 올해 1월 서울광장에서 열렸던 ‘2008 서울광장 얼음축제’에도 많은 사람들이 몰렸다. 예술과 체험이 조화를 이룬 대규모 설치작품들을 서울시내 한 복판에서 볼 수 있었던 탓이다. 대규모 축제나 국제회의, 기업행사 등에 장식될 얼음 조각을 매일 요리하는 얼음조각가 이원택(방이동‧47) 씨를 만나봤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 탓에 차디찬 얼음을 만지며 작품을 만드는 일이 쉽지 않아 보였지만 그는 “일에 몰두하다보면 추위는 별로 느끼지 않는다”면서 얘기를 시작했다. 



얼음조각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얼음조각 작품 하나하나에는 작가의 숨 쉬는 개성이 담겨 있어요. 작은 컵부터 대형 호텔까지 만드는 얼음조각의 세계는 무궁무진하죠.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점이 이 일의 매력입니다.”
86 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이 있었을 무렵 그는 호텔 조리사로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었다. 호텔에서 얼음으로 장식을 만드는 얼음조각가들의 일이 흥미롭게 보여 관심 있게 지켜보던 중 아예 얼음조각을 하기로 결심했다. 그 당시 각종 국제행사들이 우리나라에서 많이 유치되면서 전망이 밝아보였고 무엇보다 적성에 맞는 일이라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어깨 넘어 배운 실력이 전부였기에 지금의 자리까지 오르는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다. 그는 “초창기에는 숭례문, 동대문에 찾아가 직접 사진을 찍거나 엽서를 보고 조각을 했었어요. 이렇게 발로 뛴 과정이 기초가 되었죠”라면서 “요즘처럼 인터넷 시대에는 쉽게 자료를 찾아 베끼는 과정이 쉽다. 하지만 이렇게 하다보면 작품에 주제와 역동감, 내용을 담기 힘든 거죠”라고 말했다. 얼음 조각마다 그에 맞는 생명력을 불어넣는 과정을 중요시하는 그의 열정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이처럼 정성을 쏟아 붇기에 시간이 지나면 사라져버리는 작품들에 대한 미련이 많을 듯하다. 그래서 그는 야외 행사가 있을 때에는 날씨가 진짜 추워서 얼음조각이 쨍쨍하게 서있을 때 희열감을 느낀다.
“경력 10년 정도까지는 허무함을 달래기 위해 사진을 많이 찍었어요.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맥주한 잔 마시며 머릿속에 남기고 빨리 비우는 편이죠. 다음 작품을 고민해야하니까요.”

석빙고 아이스갤러리에서 얼음테마기행을
2년 전 방이동에 문을 연 석빙고 아이스갤러리는 그가 얼음조각을 하며 고민했던 것을 담아낸 공간이다. 겨울에는 야외전시를 해도 자꾸 녹는데다, 얼음조각가로서 비수기인 여름을 잘 버텨보고자 사계절 얼음전시를 생각해낸 것.
이런 공간이 국내뿐 아니라 세계최초로 시도된 곳이라 신문‧방송 등에 많이 알려졌다. 여름에는 지방에서 찾아오는 사람들도 많다. 그는 “오히려 근처에 사는 송파구, 강동구에 사는 사람들이 찾지 않는 것 같아요. 요즘처럼 추위가 시작된 겨울에는 한국 사람보다 오히려 대만, 홍콩에서 온 관광객들이 많아요”라고 전했다. 눈 구경이 힘든 나라 사람들이라 얼음조각전시장을 관람하고 얼음컵 만들기를 직접 해보는 경험에 무척 즐거워한다.
최근까지 아이스갤러리는 내부단장을 다시 했다. 전시장도 넓히고 작품들도 교체했다.
“얼음조각이 영하5도의 냉동고 속에 있지만 바람이나 사람들의 온기에 닳아요. 더구나 사람들은 싫증을 잘 느끼잖아요. 매번 새로운 걸 보고 싶은 것이 당연하죠.”
이번에는 테마얼음기행을 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아이스갤러리에 있는 3명의 조각가가 코너별로 작품과 이야기를 만들었다. 그는 ‘사라져가고 있는 북극마을’을 얼음으로 표현했다. 백곰, 범고래, 펭귄, 바다사자 등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눈앞에 북극마을의 아기자기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한 쪽에서는 크리스마스 분위기도 풍긴다. 아이들에게 인기 있었던 미끄럼틀은 곡선 형태로 중세 성곽 옆에 다시 만들어졌다.

한민족 백두산 아이스쇼를 꿈꾼다
아이스 갤러리를 찾은 사람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받을 때 이 일에 대한 만족감을 느낀다. 그는 “다섯 번 이상 얼음조각 체험을 하러 온 아이들이 있어요. 언젠가 다음에 올 때는 스스로 만들고 싶은 것을 스케치북에 그려오라고 시켰었죠. 그랬더니 9살짜리 아이가 아빠 얼굴을 그려온 거예요. 아빠가 함께 왔었는데 실제모습과 흡사한데다 조각을 함께 완성했는데 비슷하게 잘 표현 했었죠”라며 기억을 떠올렸다. 이런 순수성에 감동하며 그는 희망을 꿈꾼다고 한다.
“이제 우리나라에서는 기온이 높아져서 한겨울에도 야외얼음행사를 일주일이상 하기 힘들어요. 북한과 교류가 돼서 중강진이나 백두산에서 한민족 백두산 아이스쇼를 해보고 싶어요.”

김소정 리포터 bee4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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