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놈·나쁜 놈·이상한 놈

아내에게 스트레스를 가장 많이 주는 대상은 “남편”

당신이 최고야 vs 자식 때문에 산다 vs 어느 별에서 왔니?

지역내일 2008-11-12 (수정 2008-11-12 오전 10:42:08)
최근 한 설문 조사에서 추석 명절 동안 아내에게 스트레스를 가장 많이 주는 대상은 시댁 식구가 아닌 남편인 것으로 조사됐다.
다른 사람은 너그럽게 용서해도 남편에게만은 사소한 일에도 분노하게 된다는 의견도 많았다.
부산 내일신문에서 주부 100명을 대상으로 남편을 평가하도록 한 결과, ‘좋은 놈’과 ‘나쁜 놈’ 보다는 ‘이상한 놈’이 많은 ‘이상한 통계’가 나왔다.
이상하다는 것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알아갈 것이 많다’, 혹은 ‘이상하긴 해도 싫지는 않다’, ‘나쁘다고 말하기엔 망설여진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주부들이 솔직히 털어놓은 우리 곁의 ‘좋은 남편’, ‘나쁜 남편’, ‘이상한 남편’들의 이야기 중 일부만 추려보았다.




내 남편은 좋은 놈?

결혼하고 몇 년만 함께 살면 남편을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기 힘들어진다.
자신의 남편을 좋은 사람이라고 평가하는 아내는 숱한 다툼 후에 ‘연민의 항구’에 남보다 먼저 도달한 사람이 아닐까.
하지만 연민의 눈길로 바라보지 않아도 누가봐도 진짜 좋은 남편도 있고, 단 하나의 에피소드로도 남편을 좋은 남편으로 기억하는 신비한 기억력을 가진 아내도 있었다.

특별한 일 아니면 술 마시는 것 싫어하는 주부 김 모(43·재송동)씨. 그런 그녀가 4년 전 연말 송년회 모임에서 사고를 쳤다.
무슨 ‘필’이 꽂혔는지 1차 2차에서 대학 선배와 주거니 받거니 술을 마시고 우르르 나이트클럽으로 몰려갔다.
현란한 조명아래 신나게 놀았는데 갈수록 다리에 힘도 풀리고 눈앞이 뱅글뱅글 돌기 시작했다. 김 씨는 남편에게 전화를 했고 곧바로 달려온 남편은 아줌마들 일일이 집까지 바래다주었다.
집으로 오는 내내 몇 번이고 차에서 내려 전봇대 붙잡고 떠날 줄 모르던 김씨. 집에 들어와서도 안방 이곳저곳에 그 날 먹은 것 다 보고했다.
몸과는 달리 정신은 말짱한 그녀 미안한 생각에 모른 체 가만히 누워 있으니, 치우고 씻기고 옷 갈아입히고 물 먹이고 보통 정성이 아니었다.
술 먹은 남편 구박하고 거실에 내버려둔 채 편히 잠자던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다는 김 씨,
“역시 우리 남편은 착해”
한편, 잘 토라지는 아내에게 언제나 먼저 사과하는 좋은 남편도 있다.
180센티미터가 넘는 커다란 남편에 160센티도 안 되는 진 모(48·좌동)씨.
중학생 딸보다도 작은 그런 아내가 화가 나 “이 집에서 당장 나가세요”하면 아무 말 없이 조용히 나간다는 남편.
그리고 조금 있으면 “어이구, 공주님. 맛있는 것 사드릴게요. 우리 술 한잔해요”하고 어김없이 걸려오는 전화.
못이기는 척 하고 나가서 맛있는 것 먹다보면 어느새 화는 스르르 풀리고 두 손 꼭 잡고 들어오게 된다는 진 씨는 그런 착한 남편 때문에 부부 싸움이 하루를 못 넘긴다.
진심이 담긴 말로 아내의 마음을 녹이지 못한다면 그 다음으로 가장 좋은 수단은 역시 “현금”이다.
결혼 10년차 박모(39·대신동)씨는 남편이 용돈 줄 때가 가장 예쁘다.
통장으로 꼬박꼬박 들어오는 월급 외에 휴일이나 근무시간 초과 수당으로 받은 돈으로 박씨에게 용돈을 챙겨준다. 자신이 모르는 돈이라 슬쩍 넘어가도 될 텐데 솔직히 털어놓는 남편에게 믿음이 간다는 박씨.
이번 추석에는 남편이 주식으로 번 돈을 모두 박씨에게 내놓아 지갑 사정이 안 좋은 명절에 걱정없이 보낼 수 있었다고…
한번의 에피소드로 평생 놀라운 자비를 베푸는 아내도 있다.
이 모(33·좌동) 씨와 동갑인 남편 오 모(33) 씨는 주위에서 사람 좋아 보인다는 소리를 늘 듣는다.
하지만 이 씨는 다른 사람 챙기다 정작 자신은 번번이 손해 보는 남편이 못마땅하다. 또 그 착한 사람이 집안일과 육아는 왜 나 몰라라 하는지…
그러던 어느 날, 친구 부부를 초대해 조촐한 맥주 파티를 연 이 씨는 그동안 스트레스에 연거푸 원 샷! 눈을 뜨니 아침이었다. 역시나 집안은 엉망진창. 미운 남편은 거실에서 대자로 코를 곤다.
그런데 화장실로 들어가 세수를 하려던 이 씨는 거울을 본 순간 눈물이 핑 돈다. 어제 한 화장이 깔끔이 지워져 있다. 뽀송뽀송한 것이 스킨, 로션, 영양크림까지.
나중에 남편에게 들으니 “집이야 나중에 치우면 되지. 당신 얼굴 그대로 두면 다음날 또 하루 종일 거울 앞에서 울상일 거 아냐. 그 꼴 보느니 크림으로 닦고 폼으로 거품 내 뜨거운 수건으로 닦았지. 그게 맞나?”라고 한다.
여전히 게으르고 무심한 남편이지만 아침저녁 거울 앞에 앉을 때마다 이 씨는 혼자 중얼거린다. “그래, 우리 남편 참 착하다. 내가 졌다~.”


내 남편은 나쁜 놈!

왜 남편에게만은 사소한 일에 분노하는가…, 하지만 아내를 사소한 일에 분노하게 만들기까지 그동안 남편이 한 행동 하나하나는 결코 사소하지 않다.
아내들 중에는 “나이들면 복수할거야”, “어디 나중에 어떻게 되나 보자”하고 이를 갈고 있는 사람들도 꽤 있다는 사실.
이 부부들은 미운 정이 쌓여 연민의 항구에 도달하기에 조금 더 걸릴 듯 보인다.

결혼 전에도 유난히 알뜰하던 남편 때문에 약간은 망설였다는 박씨((35·가야2동). 결혼 허락을 받기 위해 친정에 왔을 때 과일 몇 천원 치 사왔다. 친정 엄마의 한 마디가 아직도 가슴에 사무친다. “저런 사람 맞춰서 살 수 있겠나?”
결혼 후 그의 알뜰증은 도를 넘어섰다. 아이 기저귀 값이 아까워 한 장을 5시간 이상 채워 발진나게 하고, 외식은 한달에 한번 이상 절대 불가 선언!
출산 후 와이프의 6개월 휴직도 아까워 과외자리 알아보라고 한다.
시아버지는 더 한다. 매일 전화해서는 “과외는 구했느냐, 그 긴 시간을 왜 노느냐”고 볶아댄다. 하지만 박씨는 이제 당하고 있지만 않는다. 남편이 없으면 무조건 시켜먹고, 비싼 옷과 가방도 수시로 지른다. 얼마인지 묻는 남편에게 1/10 가격으로만 말해도 남편의 얼굴이 노래진다. 그 표정이 고소하기만 하다.
김미순(35·대연동)는 임신 중의 나쁜 기억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대표적인 경우. 둘째 아이를 임신중이었던 어느 겨울밤 뜨끈뜨끈한 단팥죽이 무척 먹고 싶었다. 평소 뭐 먹고 싶으니 사달라고 졸라 본 적 없었는데 그날 밤은 그냥 지나치기 힘들었다.
남편한테 전화해서 어느 시장 어느 골목길에 가면 단팥죽 파는 집이 있노라고 친절하게 살 수 있는 곳도 가르쳐 줬다. 알겠다며 당장 달려올 듯 대답하던 남편은 새벽 3시 무렵 술에 취해 빈손으로 집에 들어왔다. 그날 남편을 기다린 시간동안 쌓였던 미움이 아직도 시퍼런 칼날로 서 있다.
정인영(34·용호동)는 철없는 남편 때문에 머리가 아프다. 돈 들어가는 곳이 한 두 곳이 아닌데 남편이 얼마 전 덜컥 새 차를 샀다. 전에 몰고 다니던 차도 충분히 쓸만하고 좋은데 영업하려면 좋은 차를 타야 한다는 게 이유였다.
또 휴일이면 가족은 내팽개치고 혼자서만 바쁘다. 얼마 전 교통사고로 어깨를 다쳐서 한동안 잠잠하더니 다 낫기도 전에 골프에 야구에 또 주말이 바빠졌다.
집에 있을 동안 어깨 아프다는 핑계로 청소고 뭐고 집안 일 하나 도와주지 않더니 운동은 잘만 하는 남편. 이런 남편을 보면서 양씨는 ‘다음에 아프면 절대 간호해 주나봐라’라는 굳은 다짐을 한다고..
남편이 나쁜놈으로 판정받는 데에는 친정과 시댁에서의 형평성의 문제도 한 몫 한다.
정유미(37·용호동)는 회사와 시댁에서는 붙임성 좋고 부지런한 남편이 친정에 가서는 잠만 자는 것이 속터진다.
장인, 장모에게도 이 말 저 말 건네며 좀 즐겁게 해드리면 좋겠는데 가만히 누워 TV만 보거나 살짝 옆방에 가서 몇 시간씩 잠만 자기 일쑤다. 친정에만 가면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섞이지 않는 기름처럼 겉돌다 오는 남편이 미워 잘 때 가끔 꼬집어 버린다고.


내 남편은 이상한 놈?!

아내 가운데 자신의 남편을 이상한 사람이라고 평가한 경우가 가장 많았다.
‘30년을 함께 살아도 아직 잘 모르겠다’, 혹은 ‘너무 이상해서 알기가 두렵다’는 응답도 있었다. 이상한 남편에 대한 웃지 못할 에피소드들을 지면의 한계상, 내용의 괴상함 탓에 다 싣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

남편의 변비 때문에 늘 고민이라는 정 모(34·망미동) 씨. 평소 위가 약해 음식을 많이 먹지 못 하는 남편 김 모(37) 씨는 아침마다 화장실을 독점하고 있다. 화장실 문고리 잡고 남편과 실랑이 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변비가 심해진 지난 초여름. 좀처럼 술을 마시지 않던 남편이 만취해서 돌아왔다. 일단 겨우 겉옷을 벗기고 늘어진 김 씨를 침대위로 옮겼다. 여전히 인사불성인 남편 옆에서 지친 정 씨도 금새 잠이 들었다.
그런데 새벽 쯤 정 씨는 잠에서 깼다. 꿉꿉한 공기 속에서 이게 무슨 냄새? 남편이 가스 방출을? 다시 잠을 청해 보았지만 사람의 가스 냄새 치고는 그 지속성이 유별났다. 아니 점점 강해지는 그 낯선 냄새에 정 씨는 참지 못해 불을 켰다.
세상에··· 속옷만 입고 이불도 차버린 남편의 저 불룩한 팬티! 그 의문의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 정 씨는 떨리는 손을 가져갔다.
‘딱딱하다. 따뜻하다.’
그 순간 코를 쿡 찌르는 변 냄새!
아~ 변비에 시달리던 정 씨 남편. 잠결에 설사도 아닌 된똥을, 그토록 시원스럽게 보고 싶어 하더니 이토록 거대한 것을···.
쾌변을 누는 꿈이라도 꾸는지 남편의 얼굴은 평온하기 그지없다. 두 손을 베개 삼아 다리를 오므린 채 옆으로 누워 새근새근 잠든 김 씨.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술만 마시면 이상해지는 남편 때문에 고민인 아내도 있다.
9년 연애 끝에 결혼한 정 모(45·좌동)씨. 결혼한 지 15년이 지난 지금이나 연애할 때나 남편과 함께 하는 술자리가 즐겁지만은 않다.
2년 전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만 해도 그렇다. 문상객들을 접대하느라 조금씩 마신 술이 자정이 지나자 완전 만취상태가 돼버렸다. 손아래 사촌 동서보고 “형님~”이라고 하지 않나 급기야는 화장실 간다더니 돌아올 줄 모른다.
걱정이 된 정 모씨는 밖으로 나와 무서움에 떨며 영락공원 어둠 속을 한 참 헤맨 끝에 남의 묘지 옆에 양복을 이불삼아 자고 있는 남편을 발견했다.
작년에 역시 운동 동호회 회원들이랑 2차 생맥주 집에서 맥주를 마시던 남편이 갑자기 사라졌다. 화장실에도 가보고 집에도 전화해보고 술집 근처를 찾아보았지만 그 어디에도 없는 남편.
함께 기분 좋게 술 마시던 일행들 걱정으로 모두 술이 확 깨고 분위기 썰렁해질 때. 갑자기 여자 화장실이 술렁인다.
‘혹시?’ 했는데 ‘역시!’. 남편이 여자 화장실 변기위에 쪼그리고 앉아 졸고 있지 않은가!
정 모 씨 일 년에 몇 번이지만 술 먹고 사라진 ‘남편 찾아 삼만리’가 이젠 지긋지긋하단다.
이상한 남편의 식성 때문에 당황스러운 아내도 있다.
이 모(48·연산동)씨의 남편은 평소에는 무엇이든 잘 먹는데 명절에는 그 많은 음식 제쳐놓고 혼자 라면만 먹는다.
교회를 다니는 것도 아닌데 제사 음식이나 명절 음식은 입에도 안 댄다. 게다가 장손이기까지한데...
본가에서는 그래도 적당히 라면을 먹으면서 버틸 수 있지만 문제는 친정이나 친척 집을 방문했을 때다. 대접 한다고 한 상 가득 차려 나오는 명절 음식에 손도 안 되는 남편 때문에 이 씨가 대신 눈치 보며 먹어대는 바람에 명절 지나면 몸무게가 엄청 불어난다고.
한편, 핵전쟁의 두려움에 떠는 남편도 있다.
이 씨(45·좌동)의 남편은 다른 행동은 다 정상적인데 핵전쟁에 대해서 유독 진지하다. 핵 전쟁이 일어날까 두려워 집에 라면을 쌓아둬야 하고, 방독면도 가족 수대로 사 놓았다. “여보, 누가 보면 미쳤다고 하지 않겠어?”라고 말하면, “두고 봐, 다들 나중에 후회할테니…, 당신도 지금은 웃지만 나중엔 고마워할거야”라고 진지하게 답한다.
이번 여름에는 지리산에 벙크 겸 집을 한 채 장만한다는 것을 간신히 막았다고….

30년간 다른 환경에서 생활했다는 것, 그 정도는 어떻게 극복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남녀 간 그 오래된 숙명적 차이에 마주쳤을 때, 우리는 비로소 알게 된다. 지긋지긋하게 들어왔던 ‘자식 때문에 살았다’는 부모의 마음이 이런 것이었다는 것을.
남편이 좋은 놈에서 이상한 놈으로, 이상한 놈에서 나쁜 놈으로 보일 때에는 아래의 말들로 살짝 마음을 포장해 보자.
부부란, ‘부족한 자신을 온전히 채워나가는 소중한 삶의 기록이다’, ‘서로를 밀쳐내기 보다는 서로의 가장 깊은 내면까지도 존중해주고 보듬어주는 아름다운 어울림이다’.
이 말이 효과가 없다면, 연민의 항구에 다다를 때까지 자식 얼굴을 더 자주 보는 수 밖에 없을 듯 하다.

김은영 리포터 key2006@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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