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가족이라야 네 명뿐이지만 나이가 다르고 각자 관심사가 다르다 보니 나들이 한 번 갈라치면 의견이 분분하다.
중학교 2학년 첫째가 원하는 곳은 열 살 둘째가 재미없어하고, 둘째가 좋아라 하는 곳은 첫째 녀석이 시들해하고, 아이들만 신나는 장소에 가면 부모들은 힘들고. 모처럼 찾아온 나들이, 가족 모두 즐거울 곳이 없을까 고민하던 차에 볼거리 많은 ‘여주’가 눈에 쏙 들어 왔다.
서울에서 그리 멀지 않으면서도 다양한 문화 유적지를 둘러볼 수 있는 여주 일대를 소개한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공존하는 폰박물관
어딘가를 향해 출발한다는 설렘은 하나였는데, 차에 오르자마자 우리 가족은 또 ‘따로 놀기’의 진수를 보여준다. 요즘 10대 인기 그룹 ‘빅뱅’의 노래에 푹 빠진 큰딸은 노래를 틀어달라고 하더니 알아듣지도 못할 노래를 연신 따라 부르고, 작은딸은 부스럭거리며 과자를 먹는다.
“아침 먹은 지 얼마나 됐다고 또 과자를 먹니”, “그 어려운 노래 가사 외울 시간에 영어 단어를 하나 더 외우지” 아이들에게 번갈아가며 잔소리한 엄마, 빅뱅보다는 박상민 노래가 좋으니 노래를 바꿔 틀자는 남편과 그 말에 일순 표정이 굳어지는 아이들을 보니 우리 가족에게도 세대 차이라는 선이 생긴 듯하다. 그렇게 티격태격하다 보니 어느덧 여주에 당도했고, 우리는 폰박물관이 있는 점동면 쪽으로 향했다.
지난 4월 개관한 폰박물관은 휴대전화와 통신 관련 유물 1천600여 점이 전시된 휴대전화 박물관이다. 마침 1988년 아날로그 방식의 휴대전화 서비스로 시작한 우리나라의 휴대전화 역사가 올해로 꼭 20년째, 폰박물관을 찾은 의미를 갖게 한다.
“휴대전화가 생활필수품이 된 지 오래지만 예전엔 자동차 한 대 가격과 맞먹을 정도로 비싸 극소수의 부유층만 사용했다”는 이병철 관장 (60)의 설명을 들은 아이들도 어느덧 흥미진진한 눈빛으로 박물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폰박물관에선 700그램이 넘는 무게 때문에 ‘망치폰’이라 불리는 세계 최초 휴대전화기를 볼 수 있다. 또 우리나라 최초의 휴대전화인 삼성전자의 ‘SH 100’을 비롯, 초기 아날로그 1세대 휴대전화부터 ‘햅틱’을 포함한 3.5세대 휴대전화까지 세대별·테마별로 전시해놓은 것이 특징이다. 뿐만 아니라 상해임시정부 시절 김구 선생이 사용했다는 전화기와 미국 박물관에서 한정품으로 만든 것을 구매했다는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의 세계 최초 ‘액체 전화기’ 등 통신 관련 유물도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폰박물관을 열기 전 출판·언론인으로 활동하며 25년간 여러 생활사 물품을 수집했다는 이 관장. 한데 아무리 수집에 취미가 있다지만 오래된 희귀 제품과 전세계에 몇 대만 남은 한정 출시 제품은 그 가격만 해도 만만치 않을 터. 자비를 털어 폰박물관을 연 계기가 궁금하다.
“몇 년 전 집사람이 처음 사용하던 휴대전화를 분실해 같은 모델을 구하려고 몇 달 동안 여기저기 수소문했는데도 찾을 수가 없었어요. 2000년에 들어서면서 우리나라가 휴대전화 강국에 올랐는데 불과 몇 년 전 모델만 구하려 해도 쉽지 않다는 게 아쉬웠지요.” 이 관장의 설명이다. 통상 유물이라 하면 50년은 지나야 하지만 상대적으로 진화 속도가 빠른 휴대전화는 1년만 지나도 유물로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을 갖고 8년 전부터 전화기 수집을 시작했다고.
관람을 마치고 화가인 아내와 딸의 작품이 전시된 폰미술관을 둘러본 후 시원한 녹차 한 잔을 대접받았다. 서로 다른 시간과 세대를 아우르는 폰박물관을 돌아보니 문득 출발하면서 느꼈던 우리 가족 모습이 생각났다. 빅뱅을 좋아하는 신세대 아이들, 감성에 호소하는 노래를 좋아하는 남편과 나. 우리 가족도 어쩌면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조합일지 모른다.
장인의 숨결이 느껴지는 목아박물관
‘죽은 나무에 싹을 틔운다’는 뜻이 있는 목아(木芽) 박물관. 목조각 무형문화재 박찬수 선생의 전문 사립 박물관으로, 목조각 작품을 위주로 방대한 불교 관련 조형물을 전시하고 있다. 열두 살 때 집 근처 목공예 공방에서 일하기 시작해 50년간 장인의 길을 걷고 있는 박 관장은 “조각을 통해 또 다른 생명을 부여받는 나무는 죽어도 살아 있는 것”이라며 “불쏘시개로 쓰이는 나무든, 대들보로 쓰이는 나무든 그 쓰임새가 모두 다르다. 이런 면에서 볼 때 나무의 일생은 사람의 일생과 닮았다”며 인생의 연륜을 전한다.
박물관의 야외 전시장은 조각 공원을 방불케 한다. 오후의 햇살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넓은 정원과 우뚝한 석물들, 단군을 모신 한얼울늘집, 부처님을 중심으로 500 나한이 모셔졌다는 큰말씀의집 등 전통 건축물이 있다.
박 관장과 그의 제자들 작품이 주를 이루는 실내 전시관 3층에는 불, 보살상과 나한상, 12신상 조각품이 있는데 아이들은 특히 12신상의 해학적인 표현을 재미있어하며 자신의 띠에 맞는 조각품을 찾아보기도 했다.
손재주가 없는 우리 부부와 달리 만들기를 좋아하고 손끝이 야무져 유전학적 돌연변이(?)를 믿게 하는 작은딸에게 큰딸이 말한다. “이곳 박물관 관장님은 조각할 때 망치 대신 목탁을 사용하신다더라. 신기하지? 너도 나중에 너만의 방법으로 멋진 작품 하나 만들어서 유명해져.” 녀석, 제법 언니다운 면모를 보여준다.
목조각 도구와 불교 유물이 있는 2층 전시관에는 박 관장이 대통령상을 수상한 작품 <법상>이 있다. 이는 통도사 대웅전 팔각형 법상을 그대로 재현했단다. “풍랑을 만나 죽은 700년 된 느티나무를 재료로 만든 작품이라 더욱 애착이 간다”고 말하는 박 관장에게서 작품의 바탕이 된 나무 한 그루 한 그루에 혼을 실어주고자 하는 장인의 정신을 느낄 수 있었다.
대왕 세종을 만나다
드라마 <대왕세종>을 즐겨 보는 남편이 선택한 마지막 나들이 장소는 세종대왕 영릉. ‘민족의 성군’이라 불린 세종대왕에게도 태평성대를 구가하기 위해 지도자로서 많은 번민과 보이지 않는 눈물이 있었으리라 혼잣말을 하는 남편은 어느새 세종대왕과 조우하는 듯했다.
정문을 들어서면 왼쪽에 자격루, 측우기, 혼천의, 앙부일구 등 각종 과학 기기를 복원해놓은 곳이 있는데 교과서에서만 보던 것들을 실제로 보니 신기하다며 아이들이 싱글벙글한다. 앞서 걸어가는 사람들의 그림자를 밟으며 조심스레 걸음을 옮기니 홍살문이 나온다. 걸음이 늦은 아이들을 뒤돌아보며 남편은 “능역의 입구에 서 있는 홍살문은 신성한 지역임을 알리는 표시”라고 말한다. 평소 역사에 관심이 많은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세세한 부분까지? 약간 의구심이 들었지만 드라마를 허투루 보지는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종대왕과 소헌왕후 심씨의 합장릉인 세종대왕 영릉은 능 앞에 있는 혼유석 두 개와 봉분 둘레에 둘러진 돌난간, 12개의 석주에 새겨진 12간지, 능의 중앙에 있는 팔각 장명등을 볼 때 조선 왕조의 능제를 가장 잘 나타낸 능이라고 한다.
능 밑에는 제사를 지내는 정자각과 제사 때 음식을 준비하던 수라간, 능을 지키는 관리가 살던 수복방이 있다. 궁궐의 그것처럼 화려하지는 않으나 중앙에 있는 문은 능 주변의 기운을 막힘 없이 통하게 하려는 듯 활짝 열려 있다.
한 시간 남짓 능을 둘러본 것으로 어찌 감히 세종대왕의 궤적을 좇을 수 있으련만 그래도 울울창창한 능 주변 소나무에 기대어 잠시라도 몇백 년 전 타임머신을 탔노라면 믿어질는지.
집으로 돌아오는 길, 어느덧 저녁 해가 붉다. 많이 걸어 일찍 시장기를 느낀 아이들이 배고프다고 아우성이다. 삼겹살을 먹자는 큰딸, 시원한 냉면이 먹고 싶다는 작은딸, 이열치열 삼계탕을 먹겠다는 남편, 모처럼 여주에 왔으니 쌀밥을 먹어야겠다고 고집 부리는 나. 저녁 메뉴 선정으로 차 안은 출발할 때보다 시끌벅적해졌지만 아, 어찌하리! 아우성까지 사랑스러운 그대들이 있기에 행복한 것을.
정주연 리포터 missingu9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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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왕세종>법상>
중학교 2학년 첫째가 원하는 곳은 열 살 둘째가 재미없어하고, 둘째가 좋아라 하는 곳은 첫째 녀석이 시들해하고, 아이들만 신나는 장소에 가면 부모들은 힘들고. 모처럼 찾아온 나들이, 가족 모두 즐거울 곳이 없을까 고민하던 차에 볼거리 많은 ‘여주’가 눈에 쏙 들어 왔다.
서울에서 그리 멀지 않으면서도 다양한 문화 유적지를 둘러볼 수 있는 여주 일대를 소개한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공존하는 폰박물관
어딘가를 향해 출발한다는 설렘은 하나였는데, 차에 오르자마자 우리 가족은 또 ‘따로 놀기’의 진수를 보여준다. 요즘 10대 인기 그룹 ‘빅뱅’의 노래에 푹 빠진 큰딸은 노래를 틀어달라고 하더니 알아듣지도 못할 노래를 연신 따라 부르고, 작은딸은 부스럭거리며 과자를 먹는다.
“아침 먹은 지 얼마나 됐다고 또 과자를 먹니”, “그 어려운 노래 가사 외울 시간에 영어 단어를 하나 더 외우지” 아이들에게 번갈아가며 잔소리한 엄마, 빅뱅보다는 박상민 노래가 좋으니 노래를 바꿔 틀자는 남편과 그 말에 일순 표정이 굳어지는 아이들을 보니 우리 가족에게도 세대 차이라는 선이 생긴 듯하다. 그렇게 티격태격하다 보니 어느덧 여주에 당도했고, 우리는 폰박물관이 있는 점동면 쪽으로 향했다.
지난 4월 개관한 폰박물관은 휴대전화와 통신 관련 유물 1천600여 점이 전시된 휴대전화 박물관이다. 마침 1988년 아날로그 방식의 휴대전화 서비스로 시작한 우리나라의 휴대전화 역사가 올해로 꼭 20년째, 폰박물관을 찾은 의미를 갖게 한다.
“휴대전화가 생활필수품이 된 지 오래지만 예전엔 자동차 한 대 가격과 맞먹을 정도로 비싸 극소수의 부유층만 사용했다”는 이병철 관장 (60)의 설명을 들은 아이들도 어느덧 흥미진진한 눈빛으로 박물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폰박물관에선 700그램이 넘는 무게 때문에 ‘망치폰’이라 불리는 세계 최초 휴대전화기를 볼 수 있다. 또 우리나라 최초의 휴대전화인 삼성전자의 ‘SH 100’을 비롯, 초기 아날로그 1세대 휴대전화부터 ‘햅틱’을 포함한 3.5세대 휴대전화까지 세대별·테마별로 전시해놓은 것이 특징이다. 뿐만 아니라 상해임시정부 시절 김구 선생이 사용했다는 전화기와 미국 박물관에서 한정품으로 만든 것을 구매했다는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의 세계 최초 ‘액체 전화기’ 등 통신 관련 유물도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폰박물관을 열기 전 출판·언론인으로 활동하며 25년간 여러 생활사 물품을 수집했다는 이 관장. 한데 아무리 수집에 취미가 있다지만 오래된 희귀 제품과 전세계에 몇 대만 남은 한정 출시 제품은 그 가격만 해도 만만치 않을 터. 자비를 털어 폰박물관을 연 계기가 궁금하다.
“몇 년 전 집사람이 처음 사용하던 휴대전화를 분실해 같은 모델을 구하려고 몇 달 동안 여기저기 수소문했는데도 찾을 수가 없었어요. 2000년에 들어서면서 우리나라가 휴대전화 강국에 올랐는데 불과 몇 년 전 모델만 구하려 해도 쉽지 않다는 게 아쉬웠지요.” 이 관장의 설명이다. 통상 유물이라 하면 50년은 지나야 하지만 상대적으로 진화 속도가 빠른 휴대전화는 1년만 지나도 유물로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을 갖고 8년 전부터 전화기 수집을 시작했다고.
관람을 마치고 화가인 아내와 딸의 작품이 전시된 폰미술관을 둘러본 후 시원한 녹차 한 잔을 대접받았다. 서로 다른 시간과 세대를 아우르는 폰박물관을 돌아보니 문득 출발하면서 느꼈던 우리 가족 모습이 생각났다. 빅뱅을 좋아하는 신세대 아이들, 감성에 호소하는 노래를 좋아하는 남편과 나. 우리 가족도 어쩌면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조합일지 모른다.
장인의 숨결이 느껴지는 목아박물관
‘죽은 나무에 싹을 틔운다’는 뜻이 있는 목아(木芽) 박물관. 목조각 무형문화재 박찬수 선생의 전문 사립 박물관으로, 목조각 작품을 위주로 방대한 불교 관련 조형물을 전시하고 있다. 열두 살 때 집 근처 목공예 공방에서 일하기 시작해 50년간 장인의 길을 걷고 있는 박 관장은 “조각을 통해 또 다른 생명을 부여받는 나무는 죽어도 살아 있는 것”이라며 “불쏘시개로 쓰이는 나무든, 대들보로 쓰이는 나무든 그 쓰임새가 모두 다르다. 이런 면에서 볼 때 나무의 일생은 사람의 일생과 닮았다”며 인생의 연륜을 전한다.
박물관의 야외 전시장은 조각 공원을 방불케 한다. 오후의 햇살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넓은 정원과 우뚝한 석물들, 단군을 모신 한얼울늘집, 부처님을 중심으로 500 나한이 모셔졌다는 큰말씀의집 등 전통 건축물이 있다.
박 관장과 그의 제자들 작품이 주를 이루는 실내 전시관 3층에는 불, 보살상과 나한상, 12신상 조각품이 있는데 아이들은 특히 12신상의 해학적인 표현을 재미있어하며 자신의 띠에 맞는 조각품을 찾아보기도 했다.
손재주가 없는 우리 부부와 달리 만들기를 좋아하고 손끝이 야무져 유전학적 돌연변이(?)를 믿게 하는 작은딸에게 큰딸이 말한다. “이곳 박물관 관장님은 조각할 때 망치 대신 목탁을 사용하신다더라. 신기하지? 너도 나중에 너만의 방법으로 멋진 작품 하나 만들어서 유명해져.” 녀석, 제법 언니다운 면모를 보여준다.
목조각 도구와 불교 유물이 있는 2층 전시관에는 박 관장이 대통령상을 수상한 작품 <법상>이 있다. 이는 통도사 대웅전 팔각형 법상을 그대로 재현했단다. “풍랑을 만나 죽은 700년 된 느티나무를 재료로 만든 작품이라 더욱 애착이 간다”고 말하는 박 관장에게서 작품의 바탕이 된 나무 한 그루 한 그루에 혼을 실어주고자 하는 장인의 정신을 느낄 수 있었다.
대왕 세종을 만나다
드라마 <대왕세종>을 즐겨 보는 남편이 선택한 마지막 나들이 장소는 세종대왕 영릉. ‘민족의 성군’이라 불린 세종대왕에게도 태평성대를 구가하기 위해 지도자로서 많은 번민과 보이지 않는 눈물이 있었으리라 혼잣말을 하는 남편은 어느새 세종대왕과 조우하는 듯했다.
정문을 들어서면 왼쪽에 자격루, 측우기, 혼천의, 앙부일구 등 각종 과학 기기를 복원해놓은 곳이 있는데 교과서에서만 보던 것들을 실제로 보니 신기하다며 아이들이 싱글벙글한다. 앞서 걸어가는 사람들의 그림자를 밟으며 조심스레 걸음을 옮기니 홍살문이 나온다. 걸음이 늦은 아이들을 뒤돌아보며 남편은 “능역의 입구에 서 있는 홍살문은 신성한 지역임을 알리는 표시”라고 말한다. 평소 역사에 관심이 많은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세세한 부분까지? 약간 의구심이 들었지만 드라마를 허투루 보지는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종대왕과 소헌왕후 심씨의 합장릉인 세종대왕 영릉은 능 앞에 있는 혼유석 두 개와 봉분 둘레에 둘러진 돌난간, 12개의 석주에 새겨진 12간지, 능의 중앙에 있는 팔각 장명등을 볼 때 조선 왕조의 능제를 가장 잘 나타낸 능이라고 한다.
능 밑에는 제사를 지내는 정자각과 제사 때 음식을 준비하던 수라간, 능을 지키는 관리가 살던 수복방이 있다. 궁궐의 그것처럼 화려하지는 않으나 중앙에 있는 문은 능 주변의 기운을 막힘 없이 통하게 하려는 듯 활짝 열려 있다.
한 시간 남짓 능을 둘러본 것으로 어찌 감히 세종대왕의 궤적을 좇을 수 있으련만 그래도 울울창창한 능 주변 소나무에 기대어 잠시라도 몇백 년 전 타임머신을 탔노라면 믿어질는지.
집으로 돌아오는 길, 어느덧 저녁 해가 붉다. 많이 걸어 일찍 시장기를 느낀 아이들이 배고프다고 아우성이다. 삼겹살을 먹자는 큰딸, 시원한 냉면이 먹고 싶다는 작은딸, 이열치열 삼계탕을 먹겠다는 남편, 모처럼 여주에 왔으니 쌀밥을 먹어야겠다고 고집 부리는 나. 저녁 메뉴 선정으로 차 안은 출발할 때보다 시끌벅적해졌지만 아, 어찌하리! 아우성까지 사랑스러운 그대들이 있기에 행복한 것을.
정주연 리포터 missingu9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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