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늦기 전에 돌아보아야 함을

지역내일 2008-08-16
네모이야기
더 늦기 전에 돌아보아야 함을 - 언젠가는(이상은. 2003)

내일신문의 기사 마감은 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이루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월요일에 사람이었던 리포터는 화, 수요일을 지나며 망가지기 시작해 목요일에는 완전 상거지에 이른다.
그날도 수요일이었으니 시계를 쏘아보며 마감 기사를 날리고 있었으리라. 갑자기 전화기가 울려댔다. 보아하니 모르는 번호. 어지간했으면 가볍게 무시하고 넘겼을 텐데 그날만큼은 덥석 전화를 받아들고 싶어졌다. 한동안의 침묵. 그리고 들려온 ‘오랜만이다’라는 음성. 수화기 너머에서 들린 목소리의 주인은 몇 년 만임에도 단번에 알아들을 수 있었던 오랜 친구 녀석이었다.
젊었을 때, 함께 보냈을 때는 가족들보다도 함께 한 시간이 더 많았다. 그래서 내가 어떻게 커왔는지, 적어도 결혼 전까지의 모습은 좌르륵 영화필름으로 간직하고 있을 녀석. 모르긴 몰라도 같이 사는 남편만큼 나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을 친구였다.
그런데 세월의 장난 때문인지, 나의 무심함 때문인지 매일 오가던 소식이 하루를 거르고, 일주일을 넘고, 한 달을 넘겼다, 그러다 어느덧 십년이 가까워 옴에도 그저 언젠가는 만나겠지, 조금 더 여유가 생기면 만나야지 미루어 왔었다.
그저 담담히, 어제 만나고 헤어졌던 것처럼 자분자분 이야기하는 녀석을 보니, “한동안 힘든 일이 있어 헤매다 보니 오랜 친구가 그립대”라는 말을 들으니 미안하기 그지없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못돼 먹은 버릇은 여지없어서 빨리 처리해 넘겨야 하는 마감기사가 자꾸 걸렸다. 그래서 서둘러 우리 올 여름에는 꼭 보자. 만나서 집처럼 드나들던 곳들 하나하나 다녀보자. 이모들에게 우리 자식들도 보여주자. 다짐에 다짐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제정신이 들고 보니 참, 이건 해도 해도 너무 심했다. 아무리 일이 바빴어도 오래도록 전화선을 붙들고 있었어야 했는데. 얄팍한 마음은 그마저도 재단을 해버렸으니 오죽 서운했을까.
아무래도 리포터는 아직 젊은가 보다. 그래서 아직 젊음을 모르고 사랑이 보이지 않나 보다. 하지만 이렇게 살아서야 젊었음을, 치열하게 사랑했음을 깨달을 때가 오기는 올까. 그리고 언젠가 우리가 다시 만날 그 날이 오기는 올까.
그러니 더 늦기 전에 돌아봐야겠다. 그저 앞만 바라보고 왔기에, 뒤돌아볼 줄 몰랐기에 놓쳤던 소중한 순간과 사람들을. 욕을 진탕 얻어먹는다 해도 그 자리에 있어만 준다면. 갑작스럽게 그리움이 몰려든다.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 하지만 이제 뒤돌아보니 우린 젊고 서로 사랑을 했구나(중략) 언젠가는 우리 다시 만나리. 어디로 가는지 아무도 모르지만, 언젠가는 우리 다시 만나리. 헤어진 모습 이대로” - 이상은 언젠가는 중 -
김나영 리포터 naymo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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