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쩡 쩌엉 쩡’ 북적대는 5일장 한복판에서 쇠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귀를 번쩍이게 하는 소리를 찾아간 곳은 언양시장에서 30년 넘게 전통 농기구들과 생활도구들을 만들고 있는 대장장이 박병오(65) 씨의 일터 ‘언양매일대장간’.
“벌써 이 일을 시작한 지 50년도 넘었네요.”
박 씨의 작업장 겸 가게인 ‘언양매일대장간’ 안에는 수천 점의 생산품들이 진열돼 있고 작업장 한쪽에는 시뻘건 불을 머금은 화덕이 쇳덩이를 기다리고 있다. 쇳덩이 하나를 화덕에 넣어 뻘겋게 달군 후 망치로 두들기고 또 다시 화덕에 넣었다 빼내어 물에 담금질하기를 반복하여 급기야 제 모습들을 드러낸 호미, 칼, 낫, 도끼, 쇠스랑, 괭이 등이 주인을 닮아 아주 암팡지다.
장날이 되면 시골 단골들은 낫이나 부엌칼을 가져와 갈아달란다. 박 씨는 스윽슥 숫돌에 날을 갈고 뭉뚱해진 톱날은 일일이 갈아 톱날을 세운다. 그러면서 조심스레 쓰라는 인사말에서 시골장터의 인심을 느끼게 한다.
“30년 넘게 한 자리에서 일을 하다 보니 고정 단골도 많았지만, 지금은 그 어른들이 시간이 지남에 세상을 떠나고, 또 농사일을 그만 두어 단골이 뚝 끊기는 경우도 있다”면서 박 씨는 씁쓰레 웃는다.
50년 넘게 이어온 외길 인생
대장장이의 생명은 열처리를 얼마나 잘 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한다. 화덕에서 달군 쇠는 섭씨 1300도에서 1400도 사이의 온도에서 녹는데 이 순간을 놓쳐버리면 쇠는 그냥 녹아버린다. 담금질과 열처리에 능숙해지기 위해서는 오랜 기간 동안 일을 하면서 익혀야 되는데 박 씨는 12세부터 쇠를 만졌으니 그 능숙함은 오죽하리오.
“농기구는 농민의 무기”라고 그는 표현한다. 따라서 “대장간은 무기 생산 공장이기에 무기를 제대로 만들지 않으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고 말한다. 사실 그동안 어려움도 많았지만 오랜 시간 동안 경험에서 지혜를 배우고 있다고. “일에 몰두하면 잡념이 없어지고 집중하지 않으면 다친다는 간단한 원리이지만요”하곤 너털웃음을 보여준다.
또한 박 씨는 대장간 일은 육체적으론 무척 힘이 드는 일이지만 우리 전통 생활도구를 보존하고 계승해 나가야 한다는 마음으로 계속 일을 하고 있다고 덧붙인다.
요즘에야 굳이 대장간을 찾지 않아도 싸고 편리한 농기구를 쉽게 구입할 수 있는 것이 사실이어서 사양화를 걷고 있는 대장간 일이지만, 박 씨만은 이 일을 먹고사는 일보다 전통문화를 되살린다는 사명감을 갖고 있다. 그래서 30년 전에 비해 10분의 1로 줄어든 대장간 일감이지만 그는 이 일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전통기술 보존은 직접 보고 만져보고 사용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야
하지만 박 씨는 “산업화의 물결에 농경문화도 기계화되면서 농기구 수요가 줄어들어 대장간들도 점차 그 모습이 사라지고 있어 마음이 아프다”고 안타까워한다. 현재 울산지역은 두어 군데, 우리나라 대장간 수가 약 10군데밖에 남지 않았다고 하니...
우리의 전통기술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우리 것을 직접 보고 접해볼 수 있는 기회가 많아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직접 보고 만져보고 사용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만 오래 기억하고 관심도 가질 수 있다고.
울산에서 언양으로 버스로 출퇴근하는 그다. 술을 먹어도 겁내지 않고 탈 수 있는 게 버스라면서 버스 안에서 보고 듣고 말하면서 삶의 의미를 깨닫는데, 망치질 하는 만큼이나 재미있다고 말하는 그다.
박 씨의 힘찬 망치질은 그의 건강한 미소와 의지가 있는 한 계속 되리라 본다.
이경희 리포터 lkh3759@hanmail.net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벌써 이 일을 시작한 지 50년도 넘었네요.”
박 씨의 작업장 겸 가게인 ‘언양매일대장간’ 안에는 수천 점의 생산품들이 진열돼 있고 작업장 한쪽에는 시뻘건 불을 머금은 화덕이 쇳덩이를 기다리고 있다. 쇳덩이 하나를 화덕에 넣어 뻘겋게 달군 후 망치로 두들기고 또 다시 화덕에 넣었다 빼내어 물에 담금질하기를 반복하여 급기야 제 모습들을 드러낸 호미, 칼, 낫, 도끼, 쇠스랑, 괭이 등이 주인을 닮아 아주 암팡지다.
장날이 되면 시골 단골들은 낫이나 부엌칼을 가져와 갈아달란다. 박 씨는 스윽슥 숫돌에 날을 갈고 뭉뚱해진 톱날은 일일이 갈아 톱날을 세운다. 그러면서 조심스레 쓰라는 인사말에서 시골장터의 인심을 느끼게 한다.
“30년 넘게 한 자리에서 일을 하다 보니 고정 단골도 많았지만, 지금은 그 어른들이 시간이 지남에 세상을 떠나고, 또 농사일을 그만 두어 단골이 뚝 끊기는 경우도 있다”면서 박 씨는 씁쓰레 웃는다.
50년 넘게 이어온 외길 인생
대장장이의 생명은 열처리를 얼마나 잘 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한다. 화덕에서 달군 쇠는 섭씨 1300도에서 1400도 사이의 온도에서 녹는데 이 순간을 놓쳐버리면 쇠는 그냥 녹아버린다. 담금질과 열처리에 능숙해지기 위해서는 오랜 기간 동안 일을 하면서 익혀야 되는데 박 씨는 12세부터 쇠를 만졌으니 그 능숙함은 오죽하리오.
“농기구는 농민의 무기”라고 그는 표현한다. 따라서 “대장간은 무기 생산 공장이기에 무기를 제대로 만들지 않으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고 말한다. 사실 그동안 어려움도 많았지만 오랜 시간 동안 경험에서 지혜를 배우고 있다고. “일에 몰두하면 잡념이 없어지고 집중하지 않으면 다친다는 간단한 원리이지만요”하곤 너털웃음을 보여준다.
또한 박 씨는 대장간 일은 육체적으론 무척 힘이 드는 일이지만 우리 전통 생활도구를 보존하고 계승해 나가야 한다는 마음으로 계속 일을 하고 있다고 덧붙인다.
요즘에야 굳이 대장간을 찾지 않아도 싸고 편리한 농기구를 쉽게 구입할 수 있는 것이 사실이어서 사양화를 걷고 있는 대장간 일이지만, 박 씨만은 이 일을 먹고사는 일보다 전통문화를 되살린다는 사명감을 갖고 있다. 그래서 30년 전에 비해 10분의 1로 줄어든 대장간 일감이지만 그는 이 일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전통기술 보존은 직접 보고 만져보고 사용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야
하지만 박 씨는 “산업화의 물결에 농경문화도 기계화되면서 농기구 수요가 줄어들어 대장간들도 점차 그 모습이 사라지고 있어 마음이 아프다”고 안타까워한다. 현재 울산지역은 두어 군데, 우리나라 대장간 수가 약 10군데밖에 남지 않았다고 하니...
우리의 전통기술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우리 것을 직접 보고 접해볼 수 있는 기회가 많아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직접 보고 만져보고 사용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만 오래 기억하고 관심도 가질 수 있다고.
울산에서 언양으로 버스로 출퇴근하는 그다. 술을 먹어도 겁내지 않고 탈 수 있는 게 버스라면서 버스 안에서 보고 듣고 말하면서 삶의 의미를 깨닫는데, 망치질 하는 만큼이나 재미있다고 말하는 그다.
박 씨의 힘찬 망치질은 그의 건강한 미소와 의지가 있는 한 계속 되리라 본다.
이경희 리포터 lkh375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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