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매각 문제점 투성(어깨)/건물·토지는 움켜쥔 채 설비만 처분

일부 기업들 비제조업 전환...미래성장 기반 붕괴 우려

지역내일 2001-05-11



정부의 공기업 및 재벌그룹들의 기업매각 방식이 국민경제 부담을 가중시키고 미래 성장의 잠재력을 약화시키는 등 문제점이 곳곳에서 불거지고 있다.
11일 재계 및 관련기관에 따르면 빚더미에 몰린 재벌그룹들이 경제성장과 직결되는 제조설비는 헐값에 처분하고 미래 비전이 없는 사옥 등 부동산은 움켜쥐고 있는데다 일부 기업은 공장매각대금을 금융산업 또는 재벌총수의 계열사 지배구조 강화 등에 투자를 강행하고 있다.
쌍용 현대 LG 한화 등 재벌그룹들은 그동안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단행하면서 최고 95%에 달하는 공장설비를 무차별 매각했으나 오히려 국민경제의 마이너스 요인이 되고 있는 건물 토지 등 매각건수는 극히 부진하다.
특히 일부 중견기업들은 공장을 매각한 뒤 파이낸스 금융업으로 아예 업종을 전환하면서 제조업을 포기하고 있다.
정작 문제는 헐값 매각과 매각방식이다. 밀어붙이기식 부채비율 200% 의무조항과 공기업 민영화의 시한부 구조조정으로 초읽기에 몰린 기업이나 정부가 기업매각에 덤핑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증시가 기력을 찾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부실기업의 자산이 외국인들에게 장기적 자산 또는 장부상 가치에 최저 25%에 팔려‘수익성’있는 富(부)가 대거 유출되고 있다. 재벌그룹 우량기업과 한국중공업 포항제철(정부 보유지분) 등이 자산가치에 비해 훨씬 낮게 급 매각됐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매각조건에도 문제점 투성이다. 일부 선금만을 지급하고 나머지 차액은 벌어서 갚는 형식으로 우량기업이 처분됐다. 때문에 차액을 낸 뒤 되파는 기업이 속출하고 있다. 외국자본은 제조업을 가급적 외면하고 유통 금융 서비스 등 투자보다 투기 쪽으로 흘려가고 있는 것도 문제다.
IMF 이후 기업매각은 불가피했지만 민영화란 명분아래 초우량공기업이 헐값에 팔아치워지고 재벌그룹 우량계열사들이 채권단의 반강제적인 매각 요청으로 핵심사업이 외국계 기업에게 무차별 덤핑가격 수준에 넘겨져 한국경제의 장기 성장기반이 붕괴되고 있는 것이다.
미래 경제성장의 바로미터인 핵심사업의 처분 열풍이 심각하다. 채권단이 사업성이 탁월한 기업에 대해 정상화 수준까지 참고 기다리는 것보다 당장 알짜기업 기업매각을 종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라그룹은 19개중 건설업 1개만 남겨둔 채 핵심사업인 공조 시멘트 만도기계 등 15개기업을 외국자본에 무더기로 정리했다. 쌍용그룹 역시 13개계열사중 정보통신 중공업 정유 등 핵심 9개를 처분하고 해운 정공 등 수익성이 빈약한 업종만 붙들고 연명하는 처지에 빠져들고 있다.
LG그룹은 미래 성장사업으로 꼽히는 LG니꼬동제련 LCD 하니웰 쉬플리 등 사업을 매각했다. 한화그룹도 에너지 기계 자동차부품 베어링 주력 핵심사업을 대부분 처분했다.
이들 기업은 겉으로 구조조정에 성공한 모범기업으로 비춰질지 모르나 기업성장모토를 사실상 상실한 것이다. 새로운 성장기반 사업을 모색해야 하나 기회포착은 버겁다.
또 특히 내수업종의 기업이 매각되면서 기존업체들이 시장을 송두리째 빼앗기고 있다. 브라운관 유리(시장점유율 90%), 제지(70%) 맥주(50%대), 광고(30%), 할인점(23%) 등 분야의 시장이 외국자본 기업에 넘겨지고 있다.
이를 두고 IMF(국제통화기금)은 며칠전 외환위기 이후 한국이 부실기업 자산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당장 유동성(현금흐름)위기를 모면했지만 다국적 M&A(기업인수합병)를 통한 경제회복에는 효과를 보지 못했다는 보고서로 꼬집었다.
막대한 공적자금이 투여된 부실기업 매각방도 한심하기 짝이 없다. 공적자금 12조원과 5조6000억원이 각각 투여된 대우차와 서울은행에 대한 매각추진이 그것이다. 제일은행의 풋백옵선(부실기업 인수시 부실보전 조건) 매각에 오류의 선례를 남긴 나머지 외국기업들이 부실기업 또는 금융회사를 인수할 때 이 제도를 고집하는 바람에 해외 인수업체들이 배짱을 부려 부실기업 매각 때마다 협상이 결렬되거나 외국기업에 질질 끌려 다니고 있다. 수십조원의 공적자금이 투여된 기업을 조건 없이 그냥 넘겨줄 것을 요구하는 사례도 허다하다는 것.
또 공적자금 2조원에 1조5000억원이 추가 지원될 대한생명과 4조 9000억원의 부채를 떠 안고 있는 한보철강도 매각방식을 마련하지 못한 채 수년 째 그대로 방치, 국민혈세가 낭비되고 있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정부는 위탁경영 ‘해외 매각’‘국내 매각’‘국민기업화’ 등 매각원칙도 마련하지 못한 채 갈팡질팡 허송 세월만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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