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칼럼="">벼슬길(宦路)이란 무엇인가
김성훈/중앙대학교 교수 산업경제학과
이번에도 많은 장·차관들이 물러나고 새로 임명되었다. 그 하위직인 직업관료들의 연쇄적인 승진과 자리 옮기기가 뒤따르고 있다. 관가가 술렁거리고 들뜨기 마련이다. 이 기회에 우리는 민주사회에 있어서 벼슬자리(官職)란 무엇인가를 새삼 물어 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벼슬자리에 나아가고 물러날 자세와 마음가짐을 묻는 것으로 시작해야 할 것 같다.
대저 관직이란 국민으로부터 위임된 공권력을 국리민복(國利民福)을 위해 대리 행사하는 자리이다. 관직은 어느 누구든 영원히 소유할 대상이 아니다. 임시 관리하는 자리에 불과하다. 그래서 벼슬 주인공은 반드시 바뀌는 법이다. 공직자의 마음가짐이 이 같아야 그 자신은 물론 나라가 평안하다. 바뀌더라도 놀라지 않고, 잃더라도 안타까와 하지 않아야 한다는 옛 성현들의 가르침이 새삼스럽다.
앉기는 쉬워도 물러나기는 어렵다
벼슬 그만두기를 벼슬 얻을 때처럼 스스럼없이 생각하고, 언제 그만두더라도 당황함이 없어야 한다는 뜻이다. 기왕 갈릴 자리인데 길고 짧음을 슬퍼한다면 그 아니 부끄러운 일인가.
벼슬자리를 마치 개인 소유의 물건인양 오래 붙잡고 있으려고 별의별 안간힘을 다하다가, 갈리게 되면 얼빠진 사람처럼 허둥지둥하거나 넋 나간 처자들처럼 누구를 원망한다면 그 아니 부끄러운가. 벼슬의 가치는 그 자리에 있으면서 무엇을 어떻게 이루었으며, 공인으로서 행동 가짐을 어떻게 처신했느냐에 달려있다. 그때 그 자리에서 자기에게 주어진 구실(책임과 역할)을 성심성의로 진충갈력(盡忠竭力) 했다면 그 아니 즐겁고 보람찬 일인가.
하물며 벼슬자리를 더럽히며 자기가 속한 조직의 명예를 떨어뜨려가면서까지 끝내 실책의 진구렁 속에서 헤어나지 못한다면 그 아니 불행한 일인가.
그래서 茶山 정약용은 “벼슬자리는 앉기는 쉬워도 물러 서기는 더 어렵다”고 실토한 바 있다. 불후의 명저, “목민심서” 해관(解官) 6조, “영광의 벼슬길의 결실(結實)”에서 그가 갈파한 가르침은 참으로 옷깃을 여미게 한다.
무릇 관리가 된 자는 그 벼슬자리에 나아갈 때부터 마음속으로 물러 설 때를 준비해야 한다. 진퇴가 분명할 때에야 비로소 투명하고 공평한 행동거지가 나오고 신뢰와 존경을 불러 모을 수 있다. 그런데도 대개의 벼슬 지망생들은 나아갈 줄만 알고 물러 설 줄은 모른다.
출세하고 높아지는 비법은 일찍부터 터득하지만, 국리민복을 위한 처방을 찾고 실행함에는 사뭇 더디고 주위와 상하를 너무 살핀다. 출세의 길과 국리민복의 길이 일치할 때는 젖먹던 힘과 온갖 지혜를 다 쏟지만, 두 길이 서로 엇갈릴 땐 서슴없이 국리민복 쪽을 버리고 출세의 길을 쫓는다. 이런 부류의 공직자가 들끓을수록 그 정부, 그 정권은 오래가지 못한다. 주무국장은 장관에게 떠넘기며, 장관은 총리나 대통령에게 책임과 핑계를 떠넘기는 풍토 하에선 되는 일이 있을 수 없다. 대충 이상이 다산이 목민심서에서 말하고자 하는 줄거리이다.
‘국민의 정부’ 들어서 명백한 실정(失政)으로 판명이 난 몇 가지 주요 개혁조치들에 대한 입안·집행과정을 추적해 보면, 대충 이와 같은 상황이 그 주된 배경을 이루고 있음을 본다. 하물며 가죽을 벗기는(改革) 고통을 감내해야 할 상황 하에서, 영리한 관료들은 은밀히 그 책임과 핑계를 좌우상하로 떠넘기고 복지부동(伏地不動)의 세월이 지나면 다시 살아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실제로 그 같은 상황판단이 딱 맞아떨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교묘한 말과 아첨하는 얼굴 빛(巧言令色)으로 그때그때 중요한 고비를 넘기기만 하면 된다는 처세술이 바로 그러하다.
정권은 유한하고 관료는 영원한가
그래서 “정권은 유한하고 관료는 영원하다”는 속삭임이 소리 없이 관료사회에 퍼지고 있다. IMF 위기라는 모처럼 만의 개혁호기를 맞아 당초의 의도(意圖)와 객관(客觀)이 일치하지 않고, 대통령만 노심초사 바쁘고 애달파 하는 우리나라의 현 정치·경제· 사회·교육·문화 풍토이고 보면 그 뒤안에는 이 같은 관료들의 자기 몸 사리기가 둥지를 틀고 있기 때문이다.
명색이 일개 부서의 책임자로 임명된 자가 예하의 관료들을 제대로 장악하지 못하고, 그 시점 그 자리에 주어진 자기 책무를 올바로 수행하지 못하는 것은 그의 전문성, 청렴성, 헌신성이 부족한 데도 기인하지만, 무엇보다도 丁茶山이 일찍이 갈파한 “벼슬자리에 나아갈 때 미리 물러 설 때를 생각”하는 준비와 각오가 부족한 것이 큰 원인이다. 이쯤해서 무릇 높이된 자는 “무엇이 됐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했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새삼 되새겨야 할 때이다.
김성훈/중앙대학교 교수 산업경제학과신문로>
김성훈/중앙대학교 교수 산업경제학과
이번에도 많은 장·차관들이 물러나고 새로 임명되었다. 그 하위직인 직업관료들의 연쇄적인 승진과 자리 옮기기가 뒤따르고 있다. 관가가 술렁거리고 들뜨기 마련이다. 이 기회에 우리는 민주사회에 있어서 벼슬자리(官職)란 무엇인가를 새삼 물어 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벼슬자리에 나아가고 물러날 자세와 마음가짐을 묻는 것으로 시작해야 할 것 같다.
대저 관직이란 국민으로부터 위임된 공권력을 국리민복(國利民福)을 위해 대리 행사하는 자리이다. 관직은 어느 누구든 영원히 소유할 대상이 아니다. 임시 관리하는 자리에 불과하다. 그래서 벼슬 주인공은 반드시 바뀌는 법이다. 공직자의 마음가짐이 이 같아야 그 자신은 물론 나라가 평안하다. 바뀌더라도 놀라지 않고, 잃더라도 안타까와 하지 않아야 한다는 옛 성현들의 가르침이 새삼스럽다.
앉기는 쉬워도 물러나기는 어렵다
벼슬 그만두기를 벼슬 얻을 때처럼 스스럼없이 생각하고, 언제 그만두더라도 당황함이 없어야 한다는 뜻이다. 기왕 갈릴 자리인데 길고 짧음을 슬퍼한다면 그 아니 부끄러운 일인가.
벼슬자리를 마치 개인 소유의 물건인양 오래 붙잡고 있으려고 별의별 안간힘을 다하다가, 갈리게 되면 얼빠진 사람처럼 허둥지둥하거나 넋 나간 처자들처럼 누구를 원망한다면 그 아니 부끄러운가. 벼슬의 가치는 그 자리에 있으면서 무엇을 어떻게 이루었으며, 공인으로서 행동 가짐을 어떻게 처신했느냐에 달려있다. 그때 그 자리에서 자기에게 주어진 구실(책임과 역할)을 성심성의로 진충갈력(盡忠竭力) 했다면 그 아니 즐겁고 보람찬 일인가.
하물며 벼슬자리를 더럽히며 자기가 속한 조직의 명예를 떨어뜨려가면서까지 끝내 실책의 진구렁 속에서 헤어나지 못한다면 그 아니 불행한 일인가.
그래서 茶山 정약용은 “벼슬자리는 앉기는 쉬워도 물러 서기는 더 어렵다”고 실토한 바 있다. 불후의 명저, “목민심서” 해관(解官) 6조, “영광의 벼슬길의 결실(結實)”에서 그가 갈파한 가르침은 참으로 옷깃을 여미게 한다.
무릇 관리가 된 자는 그 벼슬자리에 나아갈 때부터 마음속으로 물러 설 때를 준비해야 한다. 진퇴가 분명할 때에야 비로소 투명하고 공평한 행동거지가 나오고 신뢰와 존경을 불러 모을 수 있다. 그런데도 대개의 벼슬 지망생들은 나아갈 줄만 알고 물러 설 줄은 모른다.
출세하고 높아지는 비법은 일찍부터 터득하지만, 국리민복을 위한 처방을 찾고 실행함에는 사뭇 더디고 주위와 상하를 너무 살핀다. 출세의 길과 국리민복의 길이 일치할 때는 젖먹던 힘과 온갖 지혜를 다 쏟지만, 두 길이 서로 엇갈릴 땐 서슴없이 국리민복 쪽을 버리고 출세의 길을 쫓는다. 이런 부류의 공직자가 들끓을수록 그 정부, 그 정권은 오래가지 못한다. 주무국장은 장관에게 떠넘기며, 장관은 총리나 대통령에게 책임과 핑계를 떠넘기는 풍토 하에선 되는 일이 있을 수 없다. 대충 이상이 다산이 목민심서에서 말하고자 하는 줄거리이다.
‘국민의 정부’ 들어서 명백한 실정(失政)으로 판명이 난 몇 가지 주요 개혁조치들에 대한 입안·집행과정을 추적해 보면, 대충 이와 같은 상황이 그 주된 배경을 이루고 있음을 본다. 하물며 가죽을 벗기는(改革) 고통을 감내해야 할 상황 하에서, 영리한 관료들은 은밀히 그 책임과 핑계를 좌우상하로 떠넘기고 복지부동(伏地不動)의 세월이 지나면 다시 살아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실제로 그 같은 상황판단이 딱 맞아떨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교묘한 말과 아첨하는 얼굴 빛(巧言令色)으로 그때그때 중요한 고비를 넘기기만 하면 된다는 처세술이 바로 그러하다.
정권은 유한하고 관료는 영원한가
그래서 “정권은 유한하고 관료는 영원하다”는 속삭임이 소리 없이 관료사회에 퍼지고 있다. IMF 위기라는 모처럼 만의 개혁호기를 맞아 당초의 의도(意圖)와 객관(客觀)이 일치하지 않고, 대통령만 노심초사 바쁘고 애달파 하는 우리나라의 현 정치·경제· 사회·교육·문화 풍토이고 보면 그 뒤안에는 이 같은 관료들의 자기 몸 사리기가 둥지를 틀고 있기 때문이다.
명색이 일개 부서의 책임자로 임명된 자가 예하의 관료들을 제대로 장악하지 못하고, 그 시점 그 자리에 주어진 자기 책무를 올바로 수행하지 못하는 것은 그의 전문성, 청렴성, 헌신성이 부족한 데도 기인하지만, 무엇보다도 丁茶山이 일찍이 갈파한 “벼슬자리에 나아갈 때 미리 물러 설 때를 생각”하는 준비와 각오가 부족한 것이 큰 원인이다. 이쯤해서 무릇 높이된 자는 “무엇이 됐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했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새삼 되새겨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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