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금 정·관계 로비의혹은 2년전 X파일 사건과 닮은 꼴
그룹 승계와 연관 … 이종왕 법무실장 “근거없거나 왜곡”
삼성그룹 법무팀장을 지낸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로 시작된 삼성그룹 비자금 사건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시민단체의 고발로 사건은 검찰로 넘어갔다. 검찰이 수사를 통해 밝혀내야 할 사안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차명계좌를 통한 비자금 조성여부와 에버랜드전환사채 발행 사건 조작 및 축소 의혹, ‘떡값’으로 명명되는 광범위한 로비의혹 등 어느 하나 가볍게 여길 수 없는 내용이다.
사안의 중대성 때문인지 삼성측은 이례적으로 김 변호사의 사생활과 관련된 내용까지 상세하게 공개하며 반박하고 있다. 김 변호사의 평소 언행에 문제가 있었고, 폭로 내용 역시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다.
삼성그룹은 10일 이종왕 삼성그룹 법무실장이 이번 사태의 책임을 지고 사임의사를 밝혔다고 전했다.
이 실장은 삼성그룹 임직원들에게 보내는 이메일을 통해 “이번 일은 전적으로 김용철 변호사 개인의 잘못이며, 김 변호사가 주장하는 것은 거의 대부분 근거 없거나 자기가 알지 못하는 것을 과장 왜곡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김 변호사는 “제대로 수사해서 나를 처벌하게 되면 모든 실체가 드러나게 될 것”이라며 배수진을 치고 있다.
◆98년 삼성생명 지분변동 주목 = 김 변호사는 삼성그룹에서 자신도 모르는 4개의 차명계좌에 주식과 현금 등을 통해 50억원 가량의 비자금을 조성·관리했다고 폭로했다.
김 변호사를 대리해 기자회견을 한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은 이같은 계좌가 삼성그룹 전·현직 임원들을 통해 조성되고 있는 수조원대 비자금의 실체라고 주장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과 참여연대는 고발장에서 “김 변호사 명의의 신한증권 계좌에 입고된 주식은, 그 주식의 규모 및 비자금 관리 경위 등을 고려할 때 피고발인 이건희 회장의 소유 주식으로 추정된다”면서 “그렇다면 피고발인 이 회장은 임원 자신의 지분을 타인명의의 계좌에 입고한 채 이를 제대로 공시하지 않은 것이어서 증권거래법을 위반한 행위에 해당 한다”고 주장했다.
삼성측은 “말도 안 되는 주장”이라고 일축하고 있다. 삼성측은 공개 반박문을 통해 “이 계좌는 회사와는 관계가 없는 특정개인의 재산으로, 개인재산을 계좌에 입금해 삼성전자 등 주식에 장기 투자했고, 이후 주가가 상승해 총 매각대금이 50억원에 이르렀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회사와 관계없는 특정 개인이 바로 삼성 구조본 재무팀 임원이라는 점은 의문을 증폭시키고 있다.
그룹 임원이 김용철 변호사도 접근하기 힘든 김 변호사 명의의 보안계좌를 만들어 사적인 재테크를 했다는 설명을 납득하기란 쉽지않아 보인다.
그런데 차명계좌를 통한 주식분산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1998년 말 국내 최대보험사인 삼성생명 지분에 흥미로운 변화가 생겼다. 1998년 9월 이건희 회장의 삼성생명 지분은 10%에 불과했다. 이것이 1999년 6월에는 26%로 급증했다.
삼성에버랜드의 지분도 크게 달라졌다. 98년 삼성에버랜드의 삼성생명 지분은 2.25%에 불과했지만 99년 6월에는 20.67%로 늘어났다. 삼성에버랜드 최대주주는 이재용 현 삼성전자 전무로 25.1%를 보유하고 있다.
거래가격 역시 흥미롭다. 당시 언론보도와 참여연대 등에 따르면 이건희 회장과 에버랜드는 삼성생명 주식을 주당 9000원에 매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건희 회장은 이 주식을 6개월 뒤 삼성차 부채 문제 해결을 위해 내놓으면서 한 주당 70만원으로 평가했다. 9000원짜리 주식이 1년도 안 되는 사이에 70만원으로 변신한 것이다.
관심을 끈 대목은 비상장사이긴 하지만 ‘금싸라기’ 같은 삼성생명 주식을 과연 누가 팔았냐는 것이다.
참여연대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삼성생명의 주식을 분산 보유하고 있던 삼성생명 전직 임원들이 내놓은 것으로 파악됐다. 많게는 2% 정도를 갖고 있던 전직 임원들이 물량을 내놓았고, 이를 이건희 회장이 16%,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가 최대주주인 에버랜드가 18.42% 취득한 것으로 조사됐다. 주식의 실제 주인이 삼성그룹 전직 임원들이 아닌 삼성그룹 오너가였을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 것도 이 때문이다.
당시 삼성생명의 지분 변화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건희 회장은 싸게 취득한 삼성생명 지분으로 삼성차 부채문제를 해결하는 데 사용, 천문학적인 사재를 출연하는 기업인의 모습을 보여줬다.
또 이 전무는 삼성에버랜드를 통해 삼성생명에 대한 영향력까지 획득하게 되면서 경영권을 확보하고 삼성그룹 후계자의 가능성을 높이게 됐다.
실제 누구의 소유였는지는 논란이 계속되고 있지만, 임원들 명의로 분산돼 있던 주식이 가장 중요한 시기에 가장 큰 위력을 발휘한 셈이다.
◆문제의 출발은 ‘승계’ = 시민단체는 고발장 첫 항목으로 삼성그룹 지배권 승계를 위한 불법행위와 검찰수사에 대비한 사건은폐를 적시하고 있다.
김용철 변호사가 직접 증언한 대목은 1999년 삼성 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 발행이 회사자금조달이 목적이 아닌 지배권 승계를 위한 것이었으며, 이건희 회장과 삼성그룹 구조본 등 핵심관계자들은 이로 인해 회사에 손해를 끼치게 된다는 것을 사전에 알았다는 주장이다.
또 에버랜드 전환사채 사건에 대비해서는 모의훈련까지 했다고 폭로했다.
시민단체들은 삼성그룹의 이같은 불법적인 지배권 승계 시도가 한두 번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1996년 삼성에버랜드와 서울통신기술 전환사채(CB) 발행, 1997년 삼성전자 전환사채 발행사건, 1999년 삼성 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 2001년 3월말 제일기획 등 9개 계열사가 이 전무가 보유하고 있던 (주)e삼성, (주)시큐아이닷컴 등의 주식을 매입해 준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덧붙였다 .
모든 것이 이건희 회장으로부터 이재용 전무로의 경영권 승계를 추진하면서 발생한 일이라는 주장이다.
이 과정에서 자주 등장하는 것이 비상장사 주식거래와 전환사채(CB), 신주인수권부사채(BW) 헐값 발행 등이다.
비상장사 주식거래는 삼성생명 사례가 대표적이다.
또 주식으로 바꿀 수 있는 전환사채(CB)와 신주를 인수할 수 있는 권리인 신주인수권부사채(BW) 헐값 발행은 간단한 이사회 결정으로 막대한 지분을 쉽게 특정인에게 몰아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편법상속에 자주 활용돼 왔다.
특히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발행 사건을 담당한 서울지검 박용주 검사의 2003년 공소장에는 이 과정이 상세하게 소개돼 있다.
공소장에 따르면 정부가 신종금융상품인 전환사채 등을 이용한 변칙증여에 대한 과세제도 개정을 추진한다는 것을 사전에 알게 된 중앙개발(현 삼성에버랜드) 허태학 사장이 법이 개정·발표되기 전에 지배지분을 이재용 등에게 넘겨주기로 마음먹고, 의결정족수가 안되는 8명이 참석한 이사회에서 전환사채 발행을 결정하고, 전환가액도 1주당 실질가치인 8만5000원보다 현저하게 낮은 7700원에 정했다고 밝히고 있다.
1999년 7월 참여연대는 기자회견을 통해 “재벌일가의 비상장기업 주식, CB, BW거래를 통한 편법적 재산증식과 증여를 차단하기 위해 상장차익에 대한 과세제도를 도입할 것을 촉구한다”고 주장했다.
이 문제는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뒤에도 이어져 재벌개혁의 일환으로 시행된 ‘5 +3 원칙’에도 포함됐다.
결국 비상장주식 상장시세 차익에 대한 과세 등 변칙적인 상속증여 방지안이 마련돼 99년 8월부터 시행되고 있다.
하지만 이때는 이미 이재용 전무로의 경영권 승계 작업이 상당부분 마무리된 뒤다.
◆광범위한 로비 의혹 밝혀질까 = 이종왕 삼성그룹 법무실장이 사의를 표명하면서 삼성그룹 관계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는 김용철 변호사에 대한 공격적인 내용이 상당부분 포함돼 있다.
특히 조성된 비자금을 통한 검찰 등에 대한 로비의혹에 대해 이 실장은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스스로 20년간 검사로 일했다고 전제한 이 실장은 “여러분 중 어느 누구라도 떡값 갖다 주라는 지시 받은 적 있나. 삼성이 검사들에게 떡값을 돌리라고 지시했다는 김 변호사의 주장은 근거없는 주장”이라고 일축했다.
이 실장은 이어 “말없이 직분에 충실한 검사들 가슴에 큰 멍이 들었을 것이다. 검사를 비롯해 국가기관에 종사하는 공직자 분들께 송구스럽다. 민망하고 미안하다. 그 미안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덜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같은 이 실장의 로비의혹 부인에도 불구하고,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2005년 불거졌던 X파일 사건에서 등장한 녹취록에는 1997년 당시 이학수 당시 구조본 실장 등이 로비대상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명단을 확인하는 과정이 상세하게 소개돼 있다.
이를 보도했던 MBC 이상호 기자는 최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김 전 법무팀장의 진술이 사실이라면 제가 가지고 있던 질문이 풀리는 셈”이라면서 “(삼성그룹) 구조본 차원에서 법조인들을 대상으로 한 리스트는 물론이고 ‘전 사회영역에 걸쳐서 작성돼 있었다’고 하는 그 리스트가 사실로 확인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검찰의 수사를 통해 떡값 리스트의 진위가 가려질 전망이다.
◆한국 국민들, 삼성 자랑스럽지만 우려도 있다 = 삼성비자금 문제는 이미 국내 한 기업의 문제를 넘어섰다.
주요 외신들도 사태의 추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뉴욕타임스와 로이터통신 등 세계 주요 외신들은 지난 6일 삼성비자금 문제를 일제히 소개하면서 “삼성그룹은 한국 산업화의 동력 중 하나가 되어 왔지만, 한국을 ‘삼성공화국’으로 만들려 한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고 설명했다.
또 7일자 AP통신 등도 삼성비자금 문제를 언급하면서 “한국인들은 삼성을 자랑스러워하지만 최근 수년간 반복되는 스캔들로 인해 삼성의 투명성 부족에 대해 우려하게 됐다”고 소개했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 인터넷판은 10일 “한국에서 부패의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최근 잇따라 불거진 노무현 대통령 측근들의 비리와 삼성의 비자금 의혹 등 한국사회를 흔들고 있는 스캔들을 소개하면서 한국사회의 퇴행을 꼬집었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경제개혁연대 소장)는 삼성공화국 논란이 한창이던 2005년 7월 삼성 관련 토론회에서 기조발제를 통해 삼성그룹의 경제적 사회적 지배력을 분석해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김 교수는 “삼성은 이미 스스로 필요에 따라 게임의 룰마저 바꿀 수 있는 권력자로 변모했다”면서 “이재용 전무를 총수로 만들기 위해서는 불법도 적법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1%의 가신그룹부터 생각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삼성에 위기가 닥쳐온다면 그것은 내부의 위기일 것”이라면서 “스스로의 내부문제 즉 후진적인 기업지배구조부터 개선하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그룹 승계와 연관 … 이종왕 법무실장 “근거없거나 왜곡”
삼성그룹 법무팀장을 지낸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로 시작된 삼성그룹 비자금 사건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시민단체의 고발로 사건은 검찰로 넘어갔다. 검찰이 수사를 통해 밝혀내야 할 사안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차명계좌를 통한 비자금 조성여부와 에버랜드전환사채 발행 사건 조작 및 축소 의혹, ‘떡값’으로 명명되는 광범위한 로비의혹 등 어느 하나 가볍게 여길 수 없는 내용이다.
사안의 중대성 때문인지 삼성측은 이례적으로 김 변호사의 사생활과 관련된 내용까지 상세하게 공개하며 반박하고 있다. 김 변호사의 평소 언행에 문제가 있었고, 폭로 내용 역시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다.
삼성그룹은 10일 이종왕 삼성그룹 법무실장이 이번 사태의 책임을 지고 사임의사를 밝혔다고 전했다.
이 실장은 삼성그룹 임직원들에게 보내는 이메일을 통해 “이번 일은 전적으로 김용철 변호사 개인의 잘못이며, 김 변호사가 주장하는 것은 거의 대부분 근거 없거나 자기가 알지 못하는 것을 과장 왜곡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김 변호사는 “제대로 수사해서 나를 처벌하게 되면 모든 실체가 드러나게 될 것”이라며 배수진을 치고 있다.
◆98년 삼성생명 지분변동 주목 = 김 변호사는 삼성그룹에서 자신도 모르는 4개의 차명계좌에 주식과 현금 등을 통해 50억원 가량의 비자금을 조성·관리했다고 폭로했다.
김 변호사를 대리해 기자회견을 한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은 이같은 계좌가 삼성그룹 전·현직 임원들을 통해 조성되고 있는 수조원대 비자금의 실체라고 주장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과 참여연대는 고발장에서 “김 변호사 명의의 신한증권 계좌에 입고된 주식은, 그 주식의 규모 및 비자금 관리 경위 등을 고려할 때 피고발인 이건희 회장의 소유 주식으로 추정된다”면서 “그렇다면 피고발인 이 회장은 임원 자신의 지분을 타인명의의 계좌에 입고한 채 이를 제대로 공시하지 않은 것이어서 증권거래법을 위반한 행위에 해당 한다”고 주장했다.
삼성측은 “말도 안 되는 주장”이라고 일축하고 있다. 삼성측은 공개 반박문을 통해 “이 계좌는 회사와는 관계가 없는 특정개인의 재산으로, 개인재산을 계좌에 입금해 삼성전자 등 주식에 장기 투자했고, 이후 주가가 상승해 총 매각대금이 50억원에 이르렀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회사와 관계없는 특정 개인이 바로 삼성 구조본 재무팀 임원이라는 점은 의문을 증폭시키고 있다.
그룹 임원이 김용철 변호사도 접근하기 힘든 김 변호사 명의의 보안계좌를 만들어 사적인 재테크를 했다는 설명을 납득하기란 쉽지않아 보인다.
그런데 차명계좌를 통한 주식분산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1998년 말 국내 최대보험사인 삼성생명 지분에 흥미로운 변화가 생겼다. 1998년 9월 이건희 회장의 삼성생명 지분은 10%에 불과했다. 이것이 1999년 6월에는 26%로 급증했다.
삼성에버랜드의 지분도 크게 달라졌다. 98년 삼성에버랜드의 삼성생명 지분은 2.25%에 불과했지만 99년 6월에는 20.67%로 늘어났다. 삼성에버랜드 최대주주는 이재용 현 삼성전자 전무로 25.1%를 보유하고 있다.
거래가격 역시 흥미롭다. 당시 언론보도와 참여연대 등에 따르면 이건희 회장과 에버랜드는 삼성생명 주식을 주당 9000원에 매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건희 회장은 이 주식을 6개월 뒤 삼성차 부채 문제 해결을 위해 내놓으면서 한 주당 70만원으로 평가했다. 9000원짜리 주식이 1년도 안 되는 사이에 70만원으로 변신한 것이다.
관심을 끈 대목은 비상장사이긴 하지만 ‘금싸라기’ 같은 삼성생명 주식을 과연 누가 팔았냐는 것이다.
참여연대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삼성생명의 주식을 분산 보유하고 있던 삼성생명 전직 임원들이 내놓은 것으로 파악됐다. 많게는 2% 정도를 갖고 있던 전직 임원들이 물량을 내놓았고, 이를 이건희 회장이 16%,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가 최대주주인 에버랜드가 18.42% 취득한 것으로 조사됐다. 주식의 실제 주인이 삼성그룹 전직 임원들이 아닌 삼성그룹 오너가였을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 것도 이 때문이다.
당시 삼성생명의 지분 변화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건희 회장은 싸게 취득한 삼성생명 지분으로 삼성차 부채문제를 해결하는 데 사용, 천문학적인 사재를 출연하는 기업인의 모습을 보여줬다.
또 이 전무는 삼성에버랜드를 통해 삼성생명에 대한 영향력까지 획득하게 되면서 경영권을 확보하고 삼성그룹 후계자의 가능성을 높이게 됐다.
실제 누구의 소유였는지는 논란이 계속되고 있지만, 임원들 명의로 분산돼 있던 주식이 가장 중요한 시기에 가장 큰 위력을 발휘한 셈이다.
◆문제의 출발은 ‘승계’ = 시민단체는 고발장 첫 항목으로 삼성그룹 지배권 승계를 위한 불법행위와 검찰수사에 대비한 사건은폐를 적시하고 있다.
김용철 변호사가 직접 증언한 대목은 1999년 삼성 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 발행이 회사자금조달이 목적이 아닌 지배권 승계를 위한 것이었으며, 이건희 회장과 삼성그룹 구조본 등 핵심관계자들은 이로 인해 회사에 손해를 끼치게 된다는 것을 사전에 알았다는 주장이다.
또 에버랜드 전환사채 사건에 대비해서는 모의훈련까지 했다고 폭로했다.
시민단체들은 삼성그룹의 이같은 불법적인 지배권 승계 시도가 한두 번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1996년 삼성에버랜드와 서울통신기술 전환사채(CB) 발행, 1997년 삼성전자 전환사채 발행사건, 1999년 삼성 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 2001년 3월말 제일기획 등 9개 계열사가 이 전무가 보유하고 있던 (주)e삼성, (주)시큐아이닷컴 등의 주식을 매입해 준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덧붙였다 .
모든 것이 이건희 회장으로부터 이재용 전무로의 경영권 승계를 추진하면서 발생한 일이라는 주장이다.
이 과정에서 자주 등장하는 것이 비상장사 주식거래와 전환사채(CB), 신주인수권부사채(BW) 헐값 발행 등이다.
비상장사 주식거래는 삼성생명 사례가 대표적이다.
또 주식으로 바꿀 수 있는 전환사채(CB)와 신주를 인수할 수 있는 권리인 신주인수권부사채(BW) 헐값 발행은 간단한 이사회 결정으로 막대한 지분을 쉽게 특정인에게 몰아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편법상속에 자주 활용돼 왔다.
특히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발행 사건을 담당한 서울지검 박용주 검사의 2003년 공소장에는 이 과정이 상세하게 소개돼 있다.
공소장에 따르면 정부가 신종금융상품인 전환사채 등을 이용한 변칙증여에 대한 과세제도 개정을 추진한다는 것을 사전에 알게 된 중앙개발(현 삼성에버랜드) 허태학 사장이 법이 개정·발표되기 전에 지배지분을 이재용 등에게 넘겨주기로 마음먹고, 의결정족수가 안되는 8명이 참석한 이사회에서 전환사채 발행을 결정하고, 전환가액도 1주당 실질가치인 8만5000원보다 현저하게 낮은 7700원에 정했다고 밝히고 있다.
1999년 7월 참여연대는 기자회견을 통해 “재벌일가의 비상장기업 주식, CB, BW거래를 통한 편법적 재산증식과 증여를 차단하기 위해 상장차익에 대한 과세제도를 도입할 것을 촉구한다”고 주장했다.
이 문제는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뒤에도 이어져 재벌개혁의 일환으로 시행된 ‘5 +3 원칙’에도 포함됐다.
결국 비상장주식 상장시세 차익에 대한 과세 등 변칙적인 상속증여 방지안이 마련돼 99년 8월부터 시행되고 있다.
하지만 이때는 이미 이재용 전무로의 경영권 승계 작업이 상당부분 마무리된 뒤다.
◆광범위한 로비 의혹 밝혀질까 = 이종왕 삼성그룹 법무실장이 사의를 표명하면서 삼성그룹 관계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는 김용철 변호사에 대한 공격적인 내용이 상당부분 포함돼 있다.
특히 조성된 비자금을 통한 검찰 등에 대한 로비의혹에 대해 이 실장은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스스로 20년간 검사로 일했다고 전제한 이 실장은 “여러분 중 어느 누구라도 떡값 갖다 주라는 지시 받은 적 있나. 삼성이 검사들에게 떡값을 돌리라고 지시했다는 김 변호사의 주장은 근거없는 주장”이라고 일축했다.
이 실장은 이어 “말없이 직분에 충실한 검사들 가슴에 큰 멍이 들었을 것이다. 검사를 비롯해 국가기관에 종사하는 공직자 분들께 송구스럽다. 민망하고 미안하다. 그 미안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덜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같은 이 실장의 로비의혹 부인에도 불구하고,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2005년 불거졌던 X파일 사건에서 등장한 녹취록에는 1997년 당시 이학수 당시 구조본 실장 등이 로비대상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명단을 확인하는 과정이 상세하게 소개돼 있다.
이를 보도했던 MBC 이상호 기자는 최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김 전 법무팀장의 진술이 사실이라면 제가 가지고 있던 질문이 풀리는 셈”이라면서 “(삼성그룹) 구조본 차원에서 법조인들을 대상으로 한 리스트는 물론이고 ‘전 사회영역에 걸쳐서 작성돼 있었다’고 하는 그 리스트가 사실로 확인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검찰의 수사를 통해 떡값 리스트의 진위가 가려질 전망이다.
◆한국 국민들, 삼성 자랑스럽지만 우려도 있다 = 삼성비자금 문제는 이미 국내 한 기업의 문제를 넘어섰다.
주요 외신들도 사태의 추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뉴욕타임스와 로이터통신 등 세계 주요 외신들은 지난 6일 삼성비자금 문제를 일제히 소개하면서 “삼성그룹은 한국 산업화의 동력 중 하나가 되어 왔지만, 한국을 ‘삼성공화국’으로 만들려 한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고 설명했다.
또 7일자 AP통신 등도 삼성비자금 문제를 언급하면서 “한국인들은 삼성을 자랑스러워하지만 최근 수년간 반복되는 스캔들로 인해 삼성의 투명성 부족에 대해 우려하게 됐다”고 소개했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 인터넷판은 10일 “한국에서 부패의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최근 잇따라 불거진 노무현 대통령 측근들의 비리와 삼성의 비자금 의혹 등 한국사회를 흔들고 있는 스캔들을 소개하면서 한국사회의 퇴행을 꼬집었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경제개혁연대 소장)는 삼성공화국 논란이 한창이던 2005년 7월 삼성 관련 토론회에서 기조발제를 통해 삼성그룹의 경제적 사회적 지배력을 분석해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김 교수는 “삼성은 이미 스스로 필요에 따라 게임의 룰마저 바꿀 수 있는 권력자로 변모했다”면서 “이재용 전무를 총수로 만들기 위해서는 불법도 적법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1%의 가신그룹부터 생각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삼성에 위기가 닥쳐온다면 그것은 내부의 위기일 것”이라면서 “스스로의 내부문제 즉 후진적인 기업지배구조부터 개선하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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