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원증권 대구중앙지점(지점장 김호진)은 전직원이 발로 뛰며 고객을 찾아 가거나 기업체를 직접 방
문해 영업하는‘아웃도어세일(Out Door Sale)’에 익숙해 있다. 변화하는 경제상황에 맞춰 적절하게 재
테크를 하는 다른 지역과는 달리 대구지역은 보수성향이 강해 공격적인 투자자가 적을 뿐 아니라 초
단기 매매(Day Trade)비율도 낮아 자금의 이동이 활발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동원증권 대구중앙지점은 적절한 시기에 기본에 충실한 아웃도어세일을 통해 3년만에 동원증권 전
체 65개 지점 중 약정 4위, 대구 지역 1위에 오르는 급성장을 이룩했다.
지난 97년 말 IMF 구제금융이 시작되면서 대구중앙지점은 점포폐쇄 위기의 문턱까지 가는 생사의 갈
림길에 서 있었다. 바닥을 맴도는 시황과 모든 고객들이 객장을 떠나는 최악의 사태를 맞은 것이다.
이런 상황이 계속 이어지던 98년 초 김호진 지점장은 대구중앙지점으로 발령 받았다. 당시 37세의 나
이로 동원증권 내 최연소 지점장 그룹에 속했던 그는 ‘위기가 곧 기회’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전직
원에게 용기를 불어넣기 시작했다. 그때 시작한 것이‘아웃도어세일’이었다.
주식시장이 최악의 침체로 치달을 때 상대적으로 자금을 유치할 수 있었던 것은‘수익증권’판매였
다. 주가지수가 300선에서 허덕이고 있던 이때 수익증원 20%가 넘는 초고금리 수준이었다.
수익증권의 전력운영에 반신반의하던 직원들은 김 지점장이 직접 기업과 고객을 방문하며 이뤄가는
성과를 보고 성공에 대한 확신을 가졌다.
전직원이 합심해 수익증권 운영에 나섰다. 남자 직원들은 신발이 닳도록 발품을 팔았고, 여직원들은
금융상품정보 등 고객을 위해 준비할 수 있는 모든 정보를 준비하며 측면에서 지원했다.
IMF 구제금융이 시작된 후 1년 만인 98년 말 대구중앙지점의 수익증권 유치금액은 1000억원을 돌파하
는 경이적인 기록을 달성했다. 서울을 제외한 어느 지역에서도 올리기 힘든 엄청난 액수였다.
99년부터 주식시장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이때 대구중앙지점 직원들은 ‘기본으로 돌아가자(Back
to the Basic)’라는 새로운 캐치프레이즈를 세우고 새로운 마음으로 고객들을 대했다. 전 고객들에게
이메일과 우편으로 편지를 보냈다. 증시분석자료를 보내고, 유망주에 대한 최신 가이드 정보를 제공
한 것이 고객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이다.
“단돈 1원이라도 고객수익증대가 최우선”이라고 말하는 김 지점장은 고객행복을 위한 노력은 공부
하는 자세에서 나타난다고 한다. 때문에 늘 공부하는 지점분위기를 만들며 직원들에게 필요한 서적
을 지원해 정보마인드 향상에 진력하고 있다.
대구 중앙지점은 매매수수료가 저렴한 사이버 거래가 전체 매매거래의 80%에 달한다는 점을 중시, 앞
으로 객장을 사이버공간으로 바꾸고, 주식현황 전광판도 없앨 계획이다.
객장을 빠른 서비스 공간으로 제공하고 운영경비를 줄여 고객들에게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할 때
‘롱런’하는 지점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053-422-4879>
대구 전득렬 리포터 jdr@naeil.com 053-422-4879>
문해 영업하는‘아웃도어세일(Out Door Sale)’에 익숙해 있다. 변화하는 경제상황에 맞춰 적절하게 재
테크를 하는 다른 지역과는 달리 대구지역은 보수성향이 강해 공격적인 투자자가 적을 뿐 아니라 초
단기 매매(Day Trade)비율도 낮아 자금의 이동이 활발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동원증권 대구중앙지점은 적절한 시기에 기본에 충실한 아웃도어세일을 통해 3년만에 동원증권 전
체 65개 지점 중 약정 4위, 대구 지역 1위에 오르는 급성장을 이룩했다.
지난 97년 말 IMF 구제금융이 시작되면서 대구중앙지점은 점포폐쇄 위기의 문턱까지 가는 생사의 갈
림길에 서 있었다. 바닥을 맴도는 시황과 모든 고객들이 객장을 떠나는 최악의 사태를 맞은 것이다.
이런 상황이 계속 이어지던 98년 초 김호진 지점장은 대구중앙지점으로 발령 받았다. 당시 37세의 나
이로 동원증권 내 최연소 지점장 그룹에 속했던 그는 ‘위기가 곧 기회’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전직
원에게 용기를 불어넣기 시작했다. 그때 시작한 것이‘아웃도어세일’이었다.
주식시장이 최악의 침체로 치달을 때 상대적으로 자금을 유치할 수 있었던 것은‘수익증권’판매였
다. 주가지수가 300선에서 허덕이고 있던 이때 수익증원 20%가 넘는 초고금리 수준이었다.
수익증권의 전력운영에 반신반의하던 직원들은 김 지점장이 직접 기업과 고객을 방문하며 이뤄가는
성과를 보고 성공에 대한 확신을 가졌다.
전직원이 합심해 수익증권 운영에 나섰다. 남자 직원들은 신발이 닳도록 발품을 팔았고, 여직원들은
금융상품정보 등 고객을 위해 준비할 수 있는 모든 정보를 준비하며 측면에서 지원했다.
IMF 구제금융이 시작된 후 1년 만인 98년 말 대구중앙지점의 수익증권 유치금액은 1000억원을 돌파하
는 경이적인 기록을 달성했다. 서울을 제외한 어느 지역에서도 올리기 힘든 엄청난 액수였다.
99년부터 주식시장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이때 대구중앙지점 직원들은 ‘기본으로 돌아가자(Back
to the Basic)’라는 새로운 캐치프레이즈를 세우고 새로운 마음으로 고객들을 대했다. 전 고객들에게
이메일과 우편으로 편지를 보냈다. 증시분석자료를 보내고, 유망주에 대한 최신 가이드 정보를 제공
한 것이 고객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이다.
“단돈 1원이라도 고객수익증대가 최우선”이라고 말하는 김 지점장은 고객행복을 위한 노력은 공부
하는 자세에서 나타난다고 한다. 때문에 늘 공부하는 지점분위기를 만들며 직원들에게 필요한 서적
을 지원해 정보마인드 향상에 진력하고 있다.
대구 중앙지점은 매매수수료가 저렴한 사이버 거래가 전체 매매거래의 80%에 달한다는 점을 중시, 앞
으로 객장을 사이버공간으로 바꾸고, 주식현황 전광판도 없앨 계획이다.
객장을 빠른 서비스 공간으로 제공하고 운영경비를 줄여 고객들에게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할 때
‘롱런’하는 지점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053-422-48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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