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칼럼>금융주도경제의 불안정성과 금산분리(유철규 2007.08.24)

지역내일 2007-08-24
금융주도경제의 불안정성과 금산분리

대선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가리워져 있기는 하지만, 현재 한국경제는 전국민의 미래 삶을 건 대도박의 초입에 들어서고 있다. 다시 말해 금융산업내 장벽을 필두로 하여 금융에 관한 규제를 통째로 해체하는 금융빅뱅이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한국을 자산운용업과 같은 금융산업 중심의 경제구조로 재편하겠다는 의도를 내세워 만들어진 ‘금융투자업과 자본시장에 관한 법률(자산시장통합법)’은 하나의 결정적인 계기로 기록될 것이다. 이번 자산시장통합법의 제정과정에서, 최우선적으로 금융시스템의 안정성을 지켜나가야 할 한국은행마저 증권사에 은행의 지급결제기능을 허용하는 것에 동의했다는 사실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이제 한국의 정책당국 내에는 한국경제를 유래없이 급속하게 세계금융시장으로 편입시키는데 따른 위험과 불안정을 차분히 검토하고 대책을 세울 수 있는 기관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정책당국이 재계와 글로벌 금융기관과 의기투합하여 한국경제를 영국과 미국정도에 예외적으로 성립되어 있는 영미식 금융자산주도경제로 전환시키는데 다걸기(올인 all-in)하는 모습이다.
금융주도경제란 아직 학계의 논쟁이 끊이지 않는 개념이지만, 겉모습만 본다면 주식시장을 중심으로 통합된 금융시장이 가계나 개인의 경제적 행동 뿐 아니라 기업 및 국가 부문까지 규제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예를 들면 주식시장의 신호에 따라 정부 행정의 방향과 규모, 기업의 투자방향과 크기가 결정될 뿐 아니라 재테크에 매달린 개인들의 소비패턴과 생활 패턴이 이에 민감하게 규정받는다. 금융시장의 기관투자가와 큰손들이 마땅치 않게 생각하는 정책은 재원조달을 위해 추가적인 비용을 치루어야 하거나 실패하게 된다. 사회적 부를 기업(자본)에게 이전시키는 법인세 인하는 열렬히 환영받지만 저소득층의 빈곤해소를 위한 재원 조달은 점점 더 쉽지 않게 된다. 노후의 생활이 금융상품의 수익률에 달린 유권자들은 주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모든 형태의 정책에 대해 반대하게 되고 기관투자가나 경영권을 가진 대주주의 견해에 부지불식간에 동조할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정치적으로 보면 적립금을 자본시장에서 운용하도록 되어 있는 퇴직 연금제나 연기금의 주식투자는 사회내에 거대한 보수층을 형성시키는 효과를 가져 온다. 올해 들어 펀드 가입은 논외로 하더라도 개인 직접투자자의 주식계좌수가 작년 말에 비해 3배이상 늘어 1000만을 넘었다는 통계나 올 상반기에만 20-30대 청년층 신규 주식계좌 개설 수가 작년에 비해 33.5% 늘어났다는 보도들이 향후 재벌과 다국적 금융자본의 입지를 강화시키는 급격한 정치적 보수화를 예고하고 있다고 보는 것은 기우일까.
그러나 불행인지 다행인지 최근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매개로 중국 등 몇몇 예외를 제외한 전세계 주식시장의 동반 급락과 변동성의 급증 현상이 나타남으로써, 금융주도 경제의 국민경제적 위험성을 부각시켜 주었다. 다수의 정책 당국자들과 금융관련 전문가들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규모가 극히 작기 때문에 현재의 급락은 심리적인 것일 뿐 근본적인 문제는 없다고 진단하고 있다. 이러한 견해는 적절하지 않다고 볼 수 있는데, 오히려 부실 규모가 작은데도 이러한 소동이 난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번 파동을 일으킨 환매중단으로 유명해진 BNP파리바의 3개 펀드는 이 은행이 운영하는 전체 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0.5% 수준으로 말 그대로 미미한 규모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현 국제금융의 파생상품 시장구조는 일국의 특정 산업 부실을 전세계의 문제로 확산시켰고 그것도 거대하게 증폭시켰다. 국제금융시장의 중심축을 담당하고 있는 미국경제는 막대한 소비로 세계시장을 받치고 그로 인한 적자는 해외로부터의 자본 수입으로 보전하고 있는데, 자본수입에 따른 지불 부담과 자본투자 수익률의 확보 부담이 누적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불안정한 상태에 있다. 이번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보다 몇배 몇십배 큰 충격의 가능성은 항상 존재하는 것이며, 이에 대한 대응책이 부실한 정책 올인은 이제라도 재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금융빅뱅을 위한 정책 분위기 조성이 진행되는 것에 맞추어 재계는 주요 경제단체와 영향력이 미치는 언론을 총동원하다시피 하여 금산분리 원칙의 완화나 철폐를 주장하고 있다. 금산분리란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이 서로 일정부분 이상의 지분을 소유하는 것을 막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 취지는 재벌이 은행을 소유, 지배하는 것을 억제하려는 것이다. 관련해서 재계와 일부 정치권은 전임 금융감독원장의 최대 치적의 하나로 금산분리 폐지를 공론의 장으로 끌어 들인 것이라고 평가하기까지 할 정도로 열심이다. 물론 전임 감독원장은 목전에 닥친 우리은행의 민영화나 론스타가 떠난 외환은행의 경영권 처리문제를 고심하면서 국적자본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해외자본과 달리 국적자본이라면 마땅히 받아들여야 할 최소한의 사회적 규제나 사회적 책임조차 어떻게 해서든 벗어나려고만 했던 이들조차 이 문제를 두고 새삼스레 국적자본 운운하는 것은 낯간지러운 일이지 싶다.
금산분리 완화 문제는 이미 저질러 놓은 한미 FTA와 자산시장통합법이 초래할 부작용과 국민삶의 불안문제를 먼저 다스린 이후에야 조심스레 논의해 볼 수 있는 문제일 것이다.
유철규, 성공회대학교, 경제학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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