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폭력 고통 극복·자립의 꿈 키워 … “딸 민아와 밝게 살아나갈거예요”
국제결혼 소개업체나 주변사람의 말을 믿고 결혼했지만 홀로서기를 감행해야 하는 여성결혼이민자들이 있다. 한국에 온 이후 남편의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특히 이런 가정에서 2세가 태어나는 경우 여성 결혼이민자들은 생계와 육아를 모두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 몰리게 된다. 하지만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녀와 함께 한국에 뿌리를 내리는 여성들이 있다. 한국사회는 이들에게 무엇을 해야 하며 이들은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홀로서기를 감행한 결혼이민자들과 그들을 돕는 지원센터를 찾아 의견을 들어봤다.
필리핀 출신의 메리 제인 라우론(30)씨는 지난 2002년 일곱 살 연상의 한국인 남편 김 모씨와 결혼했다.
행복한 결혼생활을 꿈꿨지만 신혼시절부터 꿈이 깨지기 시작했다. 남편은 일도 하지 않고 매일 술만 마셨다. 라우론씨는 당시를 회상하며 눈물을 흘렸다.
“한국 남자들 다정하고 일 열심히 한다는 소리 듣고 왔는데 남편은 정반대였다. 돈 없어도 괜찮다. 집 없어도 괜찮다. 그러나 때리면 안 되잖아.”
임신을 하고 딸 민아를 낳은 후에도 남편의 폭력은 계속 됐다. 라우론씨는 젖먹이 민아를 데리고 도망쳤다.
달리 갈 곳이 없어 지인으로부터 어린이집(현 성북구결혼이민자가족지원센터 베들레헴 어린이집)을 소개 받아 급하게 발길을 옮겼다. 그는 “나 같은 사람을 받아 주는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고맙고 행복했다”고 말했다.
◆딸과 대화하고 싶어 한국어 공부 시작 = 그는 현재 법적 이혼을 하지 않았지만 다섯 살 딸의 교육과 보호를 위해 남편과 따로 지내고 있다. 한국 생활이 고단할 때도 있지만 주변사람들과 도우며 지내다보니 즐거운 일도 많아져다.
“딸 민아에게 밥도 주고, 한국어도 가르쳐주고, 현장 체험이나 뮤지컬, 연극도 보러가고, 병원도 데려간다. 혼자 키웠으면 엄두도 내지 못 할 일들이다. 수녀님과 선생님들이 내 아이처럼 잘 보살펴주고 있어 아이 걱정 없이 일을 할 수 있어 좋다.”
그런데 라우론씨가 딸과 지내면서 가장 어려운 점은 ‘언어’ 문제였다. 어린이집이 생긴 2003년부터 이곳에서 생활한 민아는 한국어를 빠르게 배워갔지만 엄마 라우론씨는 그렇지 못 했다.
“처음엔 잠이 오지 않을 정도로 걱정이 많았다. 말이 통하지 않아 다른 사람을 통해 의사전달을 하고, 몸짓이나 사전 등을 이용했다. 내 배 아파서 난 자식과 말이 통하지 않아 내 사랑을 표현하지 못 하는 게 속상했다.”
결국 딸과 대화하기 위해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다. 의욕은 넘쳤지만 한국어 공부는 결코 쉽지 않았다.
“처음에는 재미없었다. 그냥 의무적으로 했다. 그리고 그땐 하던 일도 힘들고 남편 문제 때문에 머리가 아팠다.”
하지만 조금씩 실력이 늘면서 딸과 대화하는 일이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라우론씨는 “지금은 민아와 이야기를 하는게 너무 즐겁고 시간만 있으면 한국어 책을 편다”고 말했다. 최근에 민아에게 영어를 가르치면서 엄마와 딸의 관계도 좋아졌다. 한국어와 영어를 모두 할 수 있다는 자부심을 심어주면서 민아의 성격도 밝아졌다.
◆필리핀에 돌아가지 않는 이유 = 한국에 처음 올때는 행복한 주부로 사는 것이 꿈이었지만 이제 라우론씨의 희망은 조금 달라졌다. 딸이 한국사회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엄마로서의 역할을 다하는 것, 그리고 직업인으로서 실력을 키우는 것이다.
그는 “딸과 함께 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싶은데 한국 집 값이 너무 비싸다”며 “영어를 가르치며 생계비를 벌고 있는데, 앞으로 안정된 직장을 찾아 돈을 벌어 꼭 작은 집이라도 마련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자신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주변 시선을 무색케하는 말로 인터뷰를 마쳤다.
“필리핀으로 안 돌아갈 거다. 한국생활이 힘들어도 이곳이 우리 민아가 태어난 나라이고, 이젠 내 고향이다.”
전예현 기자 홍부용 리포터 newslove@naeil.com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국제결혼 소개업체나 주변사람의 말을 믿고 결혼했지만 홀로서기를 감행해야 하는 여성결혼이민자들이 있다. 한국에 온 이후 남편의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특히 이런 가정에서 2세가 태어나는 경우 여성 결혼이민자들은 생계와 육아를 모두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 몰리게 된다. 하지만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녀와 함께 한국에 뿌리를 내리는 여성들이 있다. 한국사회는 이들에게 무엇을 해야 하며 이들은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홀로서기를 감행한 결혼이민자들과 그들을 돕는 지원센터를 찾아 의견을 들어봤다.
필리핀 출신의 메리 제인 라우론(30)씨는 지난 2002년 일곱 살 연상의 한국인 남편 김 모씨와 결혼했다.
행복한 결혼생활을 꿈꿨지만 신혼시절부터 꿈이 깨지기 시작했다. 남편은 일도 하지 않고 매일 술만 마셨다. 라우론씨는 당시를 회상하며 눈물을 흘렸다.
“한국 남자들 다정하고 일 열심히 한다는 소리 듣고 왔는데 남편은 정반대였다. 돈 없어도 괜찮다. 집 없어도 괜찮다. 그러나 때리면 안 되잖아.”
임신을 하고 딸 민아를 낳은 후에도 남편의 폭력은 계속 됐다. 라우론씨는 젖먹이 민아를 데리고 도망쳤다.
달리 갈 곳이 없어 지인으로부터 어린이집(현 성북구결혼이민자가족지원센터 베들레헴 어린이집)을 소개 받아 급하게 발길을 옮겼다. 그는 “나 같은 사람을 받아 주는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고맙고 행복했다”고 말했다.
◆딸과 대화하고 싶어 한국어 공부 시작 = 그는 현재 법적 이혼을 하지 않았지만 다섯 살 딸의 교육과 보호를 위해 남편과 따로 지내고 있다. 한국 생활이 고단할 때도 있지만 주변사람들과 도우며 지내다보니 즐거운 일도 많아져다.
“딸 민아에게 밥도 주고, 한국어도 가르쳐주고, 현장 체험이나 뮤지컬, 연극도 보러가고, 병원도 데려간다. 혼자 키웠으면 엄두도 내지 못 할 일들이다. 수녀님과 선생님들이 내 아이처럼 잘 보살펴주고 있어 아이 걱정 없이 일을 할 수 있어 좋다.”
그런데 라우론씨가 딸과 지내면서 가장 어려운 점은 ‘언어’ 문제였다. 어린이집이 생긴 2003년부터 이곳에서 생활한 민아는 한국어를 빠르게 배워갔지만 엄마 라우론씨는 그렇지 못 했다.
“처음엔 잠이 오지 않을 정도로 걱정이 많았다. 말이 통하지 않아 다른 사람을 통해 의사전달을 하고, 몸짓이나 사전 등을 이용했다. 내 배 아파서 난 자식과 말이 통하지 않아 내 사랑을 표현하지 못 하는 게 속상했다.”
결국 딸과 대화하기 위해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다. 의욕은 넘쳤지만 한국어 공부는 결코 쉽지 않았다.
“처음에는 재미없었다. 그냥 의무적으로 했다. 그리고 그땐 하던 일도 힘들고 남편 문제 때문에 머리가 아팠다.”
하지만 조금씩 실력이 늘면서 딸과 대화하는 일이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라우론씨는 “지금은 민아와 이야기를 하는게 너무 즐겁고 시간만 있으면 한국어 책을 편다”고 말했다. 최근에 민아에게 영어를 가르치면서 엄마와 딸의 관계도 좋아졌다. 한국어와 영어를 모두 할 수 있다는 자부심을 심어주면서 민아의 성격도 밝아졌다.
◆필리핀에 돌아가지 않는 이유 = 한국에 처음 올때는 행복한 주부로 사는 것이 꿈이었지만 이제 라우론씨의 희망은 조금 달라졌다. 딸이 한국사회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엄마로서의 역할을 다하는 것, 그리고 직업인으로서 실력을 키우는 것이다.
그는 “딸과 함께 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싶은데 한국 집 값이 너무 비싸다”며 “영어를 가르치며 생계비를 벌고 있는데, 앞으로 안정된 직장을 찾아 돈을 벌어 꼭 작은 집이라도 마련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자신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주변 시선을 무색케하는 말로 인터뷰를 마쳤다.
“필리핀으로 안 돌아갈 거다. 한국생활이 힘들어도 이곳이 우리 민아가 태어난 나라이고, 이젠 내 고향이다.”
전예현 기자 홍부용 리포터 newslove@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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